▲ 조우석 논설위원 |
뭐가 문제인가? 청문회가 민주화 굿판으로 변질된 것은 지난 2개 월 언론의 일방적인 보도에 우선 책임이 있다. 청문회 지각 개최는 순전히 무능, 무책임 국회 때문인데, 그걸 지적하는 보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청문회 지각 개최는 국회 탓” 지적하는 언론 없나?
확실히 무능 국회와 좌편향 언론은 한통속인데, 오죽했으면 양승태 대법원장이 청문회 조속 개최를 촉구하는 친서를 국회에 보냈을까? 그는 한 명의 대법관이 결원되면 대법원의 헌법적 기능에 장애가 발생한다고 친서에서 하소연을 했다. 그런데도 왜 국회는 팔짱만 끼고 있을까?
박 후보자가 거의 30년 전 초임 검사 시절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팀에 참여했는데, 그때 축소 수사에 책임있다는 혐의 아래 야당이 청문회 자체를 보이코트한 탓이다. 야당의 묻지마 민주화 타령에, 여당은 거의 무대책으로 끌려갔다.
이 와중에 여론재판이 요란하게 진행됐다. 좌파매체는 2개월 동안 박 후보자에 대한 마녀사냥에 몰두한 결과 그를 ‘나쁜 사람’낙인을 찍는데 성공했다. 덩치만 클 뿐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제대로 옹호하지 못하는 조중동 등 기회주의적 주류언론은 대응을 포기한 채 ‘멍 때리기’를 반복했다.
그 결과 청문회 시작 전 박 후보자는 1980년대 민주화 세력을 탄압했던 나쁜 사람으로 주홍글씨가 찍혔다. 요란한 여론몰이가 달아오를 때 쯤 시민단체의 협공이 개시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박 후보자에 대한 임명제청 철회를 요구하고, 박 후보자에겐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노골적인 압박이다.
28년 전의 일, 그것도 혐의만을 가지고 왜 이런 난리에 소동을 부리는 게 좌파들이다. 이런 악다구니 끝에 열리는 청문회는 안 봐도 뻔하다. 자질 검증이야 온데 간 데 없고, 요란한‘민주화 쇼’만 시끄러울 것이다.
고문경관 5명 포함된 15명의 거물급 증인· 참고인
야당과 좌파의 목표는 자명하다. 악다구니 속에 옛 상처를 건드리고, 부도덕한 이들이 권력을 잡고 있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반복해서 심어주는 일이다. 어느 대통령의 말대로 대한민국은 정의가 실패해왔다는 고정관념을 키워주는 것인데, 이통에 사회는 소모적 논쟁과 내출혈을 반복할 것이다.
▲ 야당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 박종철 사건과 관련해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아직도 민주화굿판으로 재미를 보려는 것이다. 국민들은 민주화타령의 소모적 논쟁에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의원들이 박 후보에 대해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
당시 서울지검 검사였던 그는 박 후보자와 함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2차 수사팀에 참여했다. 여기에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단장을 지냈던 정형근 전 의원이 나온다. 야당은 그가 고문경관 추가 폭로를 막으려 했다는 쪽으로 몰아세울 것이다.
여기에 고문경관 폭로에 앞장섰던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이 참고인 자격으로 가세할 것이고, 당시 부검의(醫)등도 참고인으로 나올 것이다. 요란한 공세와 망신 주기 속에 그 시대의 아픔에 대한 성찰은 실종될 게 뻔한데, 대한민국 정말 답이 없다.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대법원이 당시 고문치사 사건에 참여했던 나쁜 검사를 대법관으로 중용하려니까 말썽이 생기는 건 아닐까?” 그건 아니다. 박 후보자는 당시 막내 검사 처지였다. 그런 그에게 수사축소 혐의를 두는 건 괜한 정치적 시비일뿐이다. 그의 의연한 대처, 용기있는 방어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실은 우리 관심은 청문회 자체를 넘어선다. 벌써 30년 전 종결된 사안을 다시 들춰내 민주화 푸닥거리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닐까? 박종철-이한열의 숭고한 희생으로 87년 체제가 만들어진 게 현실인데, 저들은 언제까지 기회만 되면 과거사 문제를 붙잡고 날밤을 새려하는가? 그걸 묻고 싶다.
국민은 지금 ‘민주화 피로현상’을 느끼는 중
천문학적 금액의 민주화 보상급도 이미 지급됐고, 수많은 과거사 관련 재판의 재심(再審) 속에 이해 당사자들의 명예도 되찾지 않았던가? 이런 와중에 ‘재심 장사’로 엄청난 돈을 챙겼던 민변 소속 변호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라는 걸 이제 우리 모두는 안다.
냉정하게 말해 대다수 국민들은 ‘민주화 피로현상’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결정적인 질문을 던질 때가 지금이다. “민주화는 과연 100% 진리이자, 정치사회적 선(善)인가? 이젠 그 따위 정치적 미신을 걷어치울 때도 된 게 아닐까?”됐다. 사실 민주화는 한국사회의 뒷덜미를 잡고 있다.
60~80년대 8% 이상의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한국경제가 왜 지금 3% 저성장에 목매는 것도 과잉 민주화 탓이다. 우리는 지금 87년 헌법에 올라간 평등주의와 경제민주화 때문에 비효율의 덫에 결려있다. 왜 그걸 정확하게 지적하는 용기있는 이가 없는가?
정말 걱정은 따로 있다. 민주화는 빛만큼 그늘이 함께 있는데, 그늘 중의 그늘이 바로 좌파세력의 개입이다. 민주화 물결에 좌파혁명세력이 끼어들었다는 걸 80년대부터 경고했던 이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양동안 명예교수이지만, 좌경화를 걱정했던 사람은 민주화세력 안에도 있었다.
그게 인권변호사로 유명했고, <전태일 평전>을 썼던 고(故) 조영래 변호사라는 걸 사람들이 알기나 할까? 1990년 폐암으로 사망하기 직전 몇 해 동안 그의 걱정은 민주화가 순수성을 잃은 채 좌파이념에 물드는 현상이었다.
그건 그의 유고집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1991년)에 그런 그의 육성으로 등장한다. 그런 걱정을 원로 언론인 남시욱 전 동아일보 기자 등에게 귀띔하곤 했다는 게 진실이다. 간혹 그걸 생각한다. 지금 그가 살아있다면 민주화 굿판으로 날 새는 한국사회에 뭐라고 할까? /조우석 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