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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구글·네이버·유투브…조중동이 사는 법은?

2015-04-07 11:32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오늘 4월 7일 신문의 날에 뉴스의 팔자와 명운을 생각한다.
요즈음이 흔한 말로 딱 역대급 보릿고개이기 때문이다. 신문의 날 큰 잔치를 벌여야 할 한국신문협회와 업계 분위기도 영 시원찮다. 꼭 밤손님 같이 찾아온 정부의 방송광고총량제 땜에 주 수입원인 광고 물량을 지상파 TV쪽으로 내주게 생겼다며 한숨 바람이다.

“소양강댐 물줄기를 지상파 TV 논으로만 몰아주면 우리 신문 쪽 논농사는 어떡하나...”는 거센 항의가 잇따랐지만 기어이 안방극장 TV쪽 논에만 물줄기를 흠뻑 대줄 판이다. 이에 노쇠한 신문 산업은 논두렁에 삽 들고 나와 격분하고 있어 곧장 농촌 활극이라도 벌어질 양상이지만 사실은 위아래 마을 싸움질할 상황도 못된다. 당장 물꼬를 텄지만 방송 산업도 황폐하기 짝이 없다.

상수원 수위가 계속 낮아지고 이미 변두리부터 쩍쩍 갈라지고 있는 판이다. 혹독한 가뭄과 물 부족은 미디어 산업 전체를 나날이 말라비틀어지게 한다. 미디어 기후변화가 가져온 뉴스 보릿고개 타파부터 맨 먼저 손을 쓰지 않으면 끝장이다.

첫 번째 선택할 일은 저비용 체질개선이다. 뉴스 비즈니스가 지금 저성장 저소비 저고용 저활력으로 새 판이 짜인 뉴 노멀(새로운 정상) 한 복판을 지나고 있어서다. 종이 신문을 안 본다는 그런 불경기 수준을 지나 이젠 “과연 신문이 필요한가?”, “뉴스를 왜 구입해야 하지?”라는 지독한 반소비 심리 문지방까지 들어 차 있다.

언론사가 아무리 설득하고 마케팅해도 네이버 뉴스박스, 구글 뉴스, 페이스북 뉴스가 몰아치고 쏟아내는 공짜 소식이라는 꽃다발과 맞설 수 없다. 페이브북만 하더라도 전 세계 사용자 7억5000만명이 매일 한 번 이상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관심사와 이동경로, 사회적 관계를 자발적으로 공유하는 앱이자 초강력 신흥 뉴스 미디어로 커버렸다. 한국인도 세 명 중 한 명이 매일 이렇게 뉴스를 포함하고 뉴스와 버무린 개인정보를 노출하고 교환한다. 아주 게으른 뉴스 독자까지 포함한 전체 가입자 기준으로는 총 14억 명에 달하는 인류의 갖은 정보 더미를 페이스북이 쥐고 있다고 한다. 가히 전 지구적 표준 커뮤니케이션이 되었다.

한국이 낳은 독보적 포털 네이버마저 모바일 광고, 메신저, 관심사, 콘텐츠 유통, 뉴스 유통, 쇼핑, iOT(사물인터넷) 등 모든 영역에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어느 뉴스 발신자 하나가 이목을 끌고 주목을 받고 수익까지 챙긴다고 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 되고 말았다.

   
▲ 네이버 뉴스박스, 구글 뉴스, 페이스북 뉴스가 쏟아지고 있는 시대에 지금처럼 A신문도 종합이고 B신문도 종합이고 C경제지도 사실상 종합경제지이고, D지방신문도 당연히 전국 종합이고 E 방송 채널도 종합편성인 시장 상황에 종이신문들이 미디어 보릿고개를 이겨낼 재간은 없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더구나 뉴 노멀 시기 독자들은 그깟 밥 굶고, 뉴스 굶어도 좋다는 신인류로 점차 돌연변이하고 있다. 어차피 취업도 어렵고 벌어도 얼마 못 버는 저소득 달관 세대가 점차 늘다보니 자기 돈으로 밥 먹기보다는 회사에서 본가에서 해결하고자 한다. 자기 돈으로 뉴스 소비하기 보다는 페이스북에서 구글에서 유투브에서 간접 체험하는 쪽으로 확실히 변모하고 있다. 아껴서 스마트폰을 사면 샀지 뉴스나 책 콘텐츠에 돈을 내진 않겠다는 투다.

해서 이런 뉴 노멀 시대 차가운 반응과 외면이 부추긴 보릿고개에 그냥 맞부딪쳐서는 답이 안 나온다. 저소비에는 저비용으로 가야 한다. 종이 신문부터 가만히 앉아서 삭감당하기 전해 먼저 손을 써야 한다. 지면 축소나 발행 부수 감축과 같은 자연사 수순이 아닌 혁신적 아이디어를 모집해야 한다.

예컨대 전국별, 지역별로 한 가지 브랜드로만 종이 신문을 통합해 모으는 포털 형식 발행도 가능하다. 중앙지라 치면 조선 동아 중앙 한겨레 등 이른바 종합지를 한 가지 일간지 상품으로 묶어 내놓는 MD(상품개발)를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집집마다 사무실마다 한 가지 브랜드 통합 신문만 배달된다는 무한 상상이다.
조중동 한겨레 등이 물론 각각 편집국과 기자들은 여전히 건재하지만 배달되는 통합 종이 신문에서는 1면을 공동 편집하는 식이다. 공통 기사 “세월호 인양 추진키로...” 라면 서로 중첩될 필요 없이 1면 헤드라인으로 같이 가고, 나머지 기사들은 특종 하는 단독기사들을 배합하면 된다. 지면 하나에 공통 기사도 있고
진보 쪽 보수 쪽 취향도 혼재하는 혼성주의 방식이 되는 거다.

당연히 부정과 반발이 예상된다. 어느 신문 누구 기자 콘텐츠를 부각시키냐고? 각사 인터넷 기시가 나가고 네이버, 구글 등 뉴스 포털을 통해서도 밤새 기사가 송고되니 필요하면 조회수 등 빅 데이터도 활용하면 된다. 누구 말마따나 필요하면 여론조사라도 해서 통합 종이 신문 공동 편집 문제를 해소하면 된다. 경제지나 스포츠지는 또 그들대로 통합 브랜드를 만들어 한 개 브랜드로만 발행하면 된다.

그리하면 적어도 소비자 기준으로 본다면 종합지 통합 브랜드 신문 하나 또는 경제지 통합 브랜드 신문 하나만으로 포괄적 뉴스 소비를 충족시킬 수 있다. 부산이나 광주라면 또 그 지역 통합브랜드 신문을 더 붙이거나 아예 ‘종합지 + 지역 통합 브랜드 종이 신문’도 가능하다.

생산자인 언론사 기준으로 봐도 인쇄, 지대, 배달 유통 등 고비용 구조를 일거에 대폭 다이어트 할 수 있다. 지국들도 배달 망 통합해 나쁠 게 없다. 독자와 부수가 더 늘어날 수 있고 돈이 되는 광고 전단지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으니까.

이런 만화 같은 상상을 꿈이라도 꾸어보기 위해선 뉴스 생산자들이 종합지, 종합경제지, 전국지, 중앙지 등에 홀린 백과사전식 자기도취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경영까지 죄다 깔고 앉아 호가호위하는 구체제를 빨리 벗어 던져야 산다. 앞서 말한 통합 브랜드로서 단일 종이 신문이 있다면 그런 뉴스 상품에 종합 정보를 쿨하게 일임하고 개별 언론사들은 그야말로 개별 캐릭터 브랜드를 찾아 특화해야 옳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라면 정치 통일 쪽에 점차 특화하면서 문화나 스포츠 쪽은 더 많이 빼도 괜찮다. 중앙일보는 산업과 국제면 쪽으로 더 가고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은 경제면과 사회면에 더 많이 집중하는 것과 같은 전체적인 역할 분담이 살길이다. 이를테면 서울시 도봉구 어느 대학생 독자가 아침에 받아든 통합 브랜드로서 신문에서 관심 깊게 읽은 ‘청년 창업’ 기사가 중앙일보 기사였다면 나중에 학교 다녀와서 밤에 조인스 닷컴 사이트에 들어가 더 깊고 풍부한 심층 취재 콘텐츠를 웹진, 웹툰, 기자 블로그, 동영상 미니 다큐 등을 통해 논문 정독하듯이 볼 수 있도록 연결 시켜주자는 얘기다.

중앙일보는 jtbc도 있지 않은가. 이런 연결과 관계 확장으로 뉴스 콘텐츠가 활용될 수 있다면 어린이에 특화한 매체, 주부에 올인하는 매체, 중년남성에 골몰하는 벗으로서 매체 등이 다양하고도 힘 있게 서식할 수 있다.

지금처럼 A신문도 종합이고 B신문도 종합이고 C경제지도 사실상 종합경제지이고, D지방신문도 당연히 전국 종합이고 E 방송 채널도 종합편성인 시장 상황에 폭 안겨서는 뉴 노멀 시기 미디어 보릿고개를 이겨낼 재간이 없다.

이런 통합과 특화 노력은 디지털 유통으로도 곧장 이어져야 한다. 네이버라는 종합 포털 인터넷과 모바일 안에 셋방살이하는 이런 신세로는 노상 입에 풀칠만 할 뿐이다. 디지털 세상에서도 저비용 고품질 고성능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할 뉴스 통합 플랫폼을 내놓아야 한다. 오직 뉴스로만 모이고 뉴스만 보고 뉴스에 집중할 수 있는 브랜드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지역과 경계를 넘어 모든 독자도 제작과 편집에 참여할 수 있는 뉴스 비즈니스의 오픈 프라이머리가 필요하다. 지난 2월 뉴욕시 폭설 현장을 담은 독자 사진을 과감하게 종이 신문 1면에 올렸던 뉴욕타임스처럼 이 뉴스 통합플랫폼도 오픈 시스템을 준수해야 한다. 전문 편집자와 기자들은 SNS 등을 통해 던져주는 독자들 아마추어 콘텐츠들을 검증, 검수하고 덧붙이거나 재창조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뉴스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

앞서 펼쳐본 뉴 뉴스, 즉 새로운 뉴스 전달 방식과 확 바뀌는 제작과 편집 시스템 아이디어들은 모두 비정상 일 수 있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애브노멀(abnormal)로서 뉘앙스가 썩 좋지 않은 비정상일 순 없다. 미디어 뉴 노멀 시기 새 정상 (new normal)으로서 기존 정상(old normal)과 구분되는 멋진 도전이자 창조적 파괴로서 비정상이 되었으면 한다.

이런 식으로 신문사를 비롯한 언론사 뉴스 생산자들이 창조적 도전을 감행한다면 분명 지독한 저소비에 허덕이는 보릿고개를 벗어나 제 2, 제 3의 전성기로 부흥하는 미디어 르네상사가 가능하다고 믿고 싶다.

오늘도 수십 종 신문이 따로 따로 고비용 구조로 나와 제대로 독자들 손에 쥐어져보지도 못하는 아침 풍경을 목도하면서 뭔가 비정상이지만 새 정상이고 초월적 정상, 즉 슈퍼 노멀(super normal)을 상상해보게 되는 2015년 제 59회 신문의 날이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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