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
▲ 영화 어벤져스에 출연한 한국 배우 수현. |
이에 더해 특별 전시중인 나전칠기 장인 몽휴 김걸(金杰) 선생의 작품전은 한국이란 동방의 작은 나라 전통문화 차원을 초월하는 세계적인 전통지식과 미학, 초현대적인 콘텐츠 창조의 위엄을 보여주고 있다. 김걸 작가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복원 프로젝트에 초청받아 참여했던 그 실력 그 감각 그대로 예스러운 고요한 아침의 나라 나전칠기를 서양 독수리 휘장, 이집트와 인도 풍 호랑이 문양, 조선조에는 없던 모던한 의자와 테이블 세트로까지 확장해 보였다. 장롱이나 함 장식 한가지로 굳었던 전통 문화를 승격시켜냈다.
전 세계를 석권한 브랜드 가구 이케아도 울고 갈 모던함과 고귀함으로 억눌려왔던 한국과 아시아 사람들 생활사 혼과 멋을 끌어올린 힘. 바로 여기에 서울 로케이션, 서울 프리미엄 전략의 실마리가 드리워 있음에도 영화판에서는 결코 알아채지 못했다.
이렇게 서울을 탕진해버린 아쉬움은 ‘어벤저스’ 속편을 감상하고 나서 더 많이 아리고 깊어졌다. 영화 하이라이트를 맡아준 동유럽 도시 소코비아라는 가상 국가 장면에서 랜드마크로 나온 산꼭대기 수도원 모양 건물과 유럽풍 올드타운과 뉴욕, 시드니는 응당 지켜야할 인류의 역사로 부각되어 있다. 그에 비하면 영화 도중에 불쑥 나오는 서울 풍경은 어느 한낱 기술과 개발, 발전에 미친 현대적 대도시 모양새와 같았다.
그보다는 ‘로다주’라 불리는 ‘어벤저스’ 핵심 캐릭터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잠깐이라도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에서 한식 상차림 즐기는 먹방 한 장면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냥 작설차 한 잔이라도 제대로 끽다하는 편이 강남대로 탄천 주차장 냅다 부셔대는 촬영보다 더 나았을 테지 싶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한국 배우 수현과 함께 한국가구박물관이 자랑하는 궁채(창경궁 한 채를 이전했다고 함) 안방에서 개다리소반 한 상 받아 김치 들고 국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클립이 더 나았을지 모른다.
한국 고가구 소반 하나와 김치 국밥과 한옥 온돌방 정도만으로도 39억 원이나 준다는 로케이션 유치 효과는 상쇄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어느새 사양 산업으로 가는 할리우드 퇴행적 액션 영화 하나 살려주는 아사이적 가치, 한국의 품격이라는 신의 한 수가 되어 동서양 합작 혁신 스타일이 되었음직하다.
이런 걸 모르고, 홍상수 감독 영화 제목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벤저스’ 속편과 덜컥 손을 잡은 한국의 공익 근무 담당자 분들은 이제라도 한나절쯤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을 다녀오길 권한다. 반성문이든 뭐든 기록할 노트 한 권씩 들고서. 한국의 하드웨어나 결국 우중충하게 나온 대기오염 황사 미세먼지 끼인 서울 하늘보다 진짜 맑고 향기로운 전통지식과 지혜라는 소프트웨어로서 문화콘텐츠를 더 강하게 내세우질 못했는지를 뼈저리게 되짚어봐야 한다.
‘어벤저스’ 속편을 보고 아쉬운 마음에 예를 든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은 공공 기관이 아니다. 참 아름다운 사설 박물관이어서 눈여겨볼 점이 더 많다. 고가구 수집가로서 평생을 헌신해온 정미숙 관장 스토리다. 이미 명품브랜드 샤넬, 구찌, 구겐하임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MoMA) 관계자들이 찾아와 무릎 치고 예찬했고 2014년 시진핑 중국 주석 내외 방문 때 진가를 널리 알렸던 명소를 가꾼 정미숙 관장은 고 정일형 · 이태영 박사의 막내 따님이시다. 아버지는 정치인이자 학자였고 평생을 항일운동과 반독재투쟁에 헌신하고 현실정치에도 참여해 8선 의원을 지냈다. 어머니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여권 신장에 매진했던 이태영 선생이다. 정대철 전 의원이 정미숙 관장의 친오빠다.
정미숙 관장은 어머니 이태영의 별명이 ‘소’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중앙일보 인터뷰, 2014.8.9.). 항상 쉬지 않고 일했던 어머니를 그렇게 기억했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늘 뜨거웠다고 돌아봤다. “지나고 보니 저도 어느새 엄마를 닮은 것 같네요”라는 회고 속에 한국의 소중한 뿌리가 자나라고 있었다.
우리 대부분이 잊어버렸던 한국 프리미엄, 서울 이니셔티브를 살려내고 지켜온 한국가구박물관과 명가의 명인에게 문화의 길을 묻고 다녀야 할 때가 되었다. 할리우드가 아니라 그 이상을 대하더라도 우리 안방 한국 서울에서는 꼭 이렇게 알리고 표현하겠노라는 자신감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꼭 필요하다. 디지털 강국, 최첨단 도시도 좋지만 이태영 선생 따님 한 분이 보듬어 온 개다리소반 풍류 아우라 한 점만도 못한 문화 소구력, 컬처 임팩트에 기댄 막연한 배팅 하나에 39억 원 지급한다는 뉴스는 너무 씁쓸하다.
우리 문화부, 영진위, 서울시, 경기도 담당관들은 이제라도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을 찾아 개다리소반이나 오동나무 선비 책함 앞에서 잠시 묵상해보길 바란다. 반드시 예약해서 방문하는 예의범절 잊지 말고 정말 조용히 찾아가 오로지 한국의 내면 소프트웨어 콘텐츠를 와락 깨닫길 바란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