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지난 수십 년간 1∼2월생은 3월 1일 이후 태어난 아이들보다 한 해 빨리 초등학교에 들어가도록 했다. 하지만 2009∼2010학년도에 걸쳐 취학 기준일이 1월 1일로 바뀌었다. 그 결과 1월부터 12월까지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들이 동시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됐고, '빠른 OO년생'이라는 말도 젊은 층에서는 사어가 됐다.
당시 취학 기준일을 바꾸는 과정에서는 별 다른 논란이 없었고, 오히려 교육부가 정책 정비를 잘했다며 호평 일색이었다.
반면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최근 내놨던 초등학교 입학 연령 만 5세 하향안은 발표 직후 비판의 십자포화를 맞았고, 결국 '폐기' 방침까지 언급했다. 학부모들과 전문가들은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 반원초등학교 전경.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사진=반원초등학교 홈페이지 캡처
3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2006년 규제 개혁 장관 회의를 개최해 초등학교 취학 기준일을 기존 3월 1일에서 1월 1일로 변경하는 안을 의결했다. 그 이전까지는 3월부터 다음 해 2월 말까지 출생한 아동이 함께 입학했는데, 같은 해에 출생한 아동이 모두 같은 학년으로 입학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1∼2월생은 동급생과 태어난 연도가 달라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을 받거나, 발달이 늦어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민원이 꾸준히 제기된 탓이라는 게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실제로 2006학년도의 경우 1월생의 41.6%, 2월생의 58.6%가 취학을 미뤘다. 이에 정부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 2009학년도에 새 제도를 적용했다. 2009학년도에는 2002년 3월∼12월생이, 2010학년도에는 2003년 1∼12월생이 입학하게 하되 5세 조기 취학 또는 취학 유예 절차를 간소화해 학부모 선택권을 존중했다.
따라서 교육 현장에서나 수요자들의 반발 또는 큰 혼란은 없었고, 오히려 이 제도를 환영하는 학부모들이 대다수였다는 게 교육계의 전언이다.
반면 최근 교육부가 공개한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 조정안에 대해서는 교육과 관련된 각계에서 큰 반발을 샀다. 타 부처 공무원들조차 이 같이 곳곳에서 일관되게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정책은 흔치 않다며 정책 추진 배경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궁지에 몰리게 됐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2일 학부모단체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국민이 정말 원하지 않는다면 정책은 폐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사실상 물러서는 모습도 보였다.
올해 대국민 설문조사, 2024년 시범 실시, 2025학년도 시행이라는 구체적 로드맵을 내놨던 나흘 전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학부모들은 정책 과도기에 취학할 아동들의 입시·취업 경쟁이 격해지고, 일부 아동의 학교 적응이 어려워질 것을 걱정해 즉각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여론 수렴 △교육 과정 개정 △교원 수급 △학교 시설 환경 △돌봄 교실 등 정비할 부분이 많은데 대안도 없이 당장 2년여 후인 2025학년도부터 적용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지적한다. 전문가들 역시 초등학교 입학 기준을 조정한다는 점은 같지만 '사회적 합의' 차원에서 최근 교육부의 태도에 큰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1∼2월생의 조기 입학을 없앤 것은 자녀가 전년도 출생아들과 함께 학교에 다녀야 하는 학부모들의 끊임 없는 민원을 반영한 것이었다. '빠른 OO년생'들이 사회에 진출해 타인과의 호칭을 정리해야 하는 등 속칭 '개족보'로 인해 불편을 겪어야 했던 사회적 비용도 고려한 것이다.
쉽게 말해 사회적 요구에 제도가 응답한 셈이다.
이에 비해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 조정은 주로 정치권에서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그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교육계나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수요가 없던 정책이다. 결국 생애 전반에 걸쳐 자녀가 새 제도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큰 학부모들이 크게 반발하고, 유아교육·보육계와 초등교육계 등 이해 관계자들도 한목소리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2007년 학제 개편 정책 연구를 진행한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진은 보고서를 통해 "(만) 5세 취학제 도입에 있어 아동 발달과 경제적 비용 이상으로 중요한 건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이해 관계 집단의 호응 혹은 반발"이라며 "학제 개편 등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큰 경우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전제하지 않고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