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아 일명 ‘펠로시 패싱’ 논란으로 남았다. 외신들은 “윤 대통령이 미국 권력서열 3위인 펠로시 하원의원 대표단과의 회담을 건너 뛴 유일한 아시아 지도자였다”고 비판했다. 국내 여론도 8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따르면, 응답자 60.3%가 ‘국익에 부합하지 않은 것으로 부적절했다’고 응답했다.
윤 대통령의 ‘펠로시 패싱’을 보면서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치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담이 끝나자마자 골프를 치러 워싱턴을 비운 일이 떠올랐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휴가를 떠난 상황에서 한때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미 국가안보보좌관 사이에 연락마저 닿지 않았다고 한다. 자칫 공동성명이 취소될 수 있다는 초조한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이 해프닝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성명에서 ‘free trade’(자유무역) 단어를 삭제하라고 지시해 백악관 참모들의 회의가 길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대 우방국이자 동맹국 정상이 아직 워싱턴에 남아 있는데도 회담을 마치자마자 휴가길에 올랐던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그의 ‘불쾌한 악수’만큼이나 무례함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은 것은 아마추어리즘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재택휴가를 보내느라 서울에 있었는데, 펠로시 의장 방한 기간 연극을 관람하고 연극인들과 회식한 사진을 공개해 논란을 더욱 키웠다. 특히 대통령실에서 “국익 차원”이라는 해명을 내놓으면서 미국측에서 “모욕”이라는 지적도 불렀다.
김진표 국회의장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동언론 발표를 통해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2.8.4./사진=공동취재사진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앞둔 가운데 대만을 거쳐 방한한 펠로시 의장을 윤 대통령이 안 만난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대통령실의 해명은 “한미동맹 정상화”를 외쳐온 윤석열정부의 정체성과 맞지 않다. 결국 ‘펠로시 패싱’에서 나타난 일련의 행동과 해명만으로도 국민들 사이에선 ‘무정부 상태’를 실감하게 된다는 평가가 나왔고, 이런 여론이 대통령 지지율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대통령제이지만 외교안보정책에서 의회에 초당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많이 부여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한국이 필요할 때 목소리를 높여줬던 인물로,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주한미군을 감축할 수 없도록 국방수권법에 주한미군을 2만 8500명 아래로 줄일 수 없도록 명문화한 일을 주도하기도 했다.
펠로시 의장은 한국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을 직접 만났고, 윤 대통령과는 40분간 전화통화만 했다. 하지만 그녀가 도쿄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아시아 순방 결과에 한국정부는 없었다. 펠로시 의장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일본에서 정상들과 교류한 사실을 소개한 뒤 “한국에 우리군인 2만8000명을 만나러 갔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40분 통화는 패싱 당한 것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