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유엔총회 계기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 간 예고됐던 첫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 여부를 놓고 진통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회담 개최 시각으로 알려진 21일(현지시간)을 12시간여 앞둔 현 시점까지도 정부는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0일 저녁 현지 브리핑에서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한 질문에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알려드릴 부분이 있으면 바로 알려드리도록 하겠다”고만 답했다.
이는 대통령실 관계자가 지난 15일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서로가 이번에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흔쾌히 합의가 됐다”고 밝힌 것과 완전히 달라진 기류이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도 한국시간으로 20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유엔총회 계기 한일 정상회담은 현재 양국간 조율 중에 있다”며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나중에 결정된 것이 있게 되면 적절한 시기에 알려드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우리정부의 태도가 달라진 과정에 기시다 총리가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한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힌 사실이 있다. 아사히신문은 21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지난 15일 대통령실의 한일 정상회담 개최 발표에 기시다 총리가 불쾌감을 드러내며 ‘만나지 말자’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15일 당시에도 일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총리의 뉴욕 방문의 구체적인 일정이 전혀 결정되지 않았다”며 한국 발표를 부정한 바 있다. 이어 일본 외무성은 한국측에 “(양국의) 신뢰관계에 관련된 것으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발표는 삼가길 바란다”며 항의한 사실도 전해졌다.
일본정부의 반응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일본기업 국내자산 매각 여부를 결정하는 최종판결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29%까지 급격하게 떨어진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런 가운데 한일 외교당국간 활발히 논의해온 징용배상 해법도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것으로 보인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네번째, 지난 8월 캄보디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계기 회담 이후 한달만에 다시 만났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맨 왼쪽)가 29일(현지시간) 마드리드 이페마 컨벤션센터에서 아시아태평양 4개국 정상, 옌슨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기념촬영을 마친 뒤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2022.6.29./사진=연합뉴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이번 회담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개최됐다”면서 “박진 장관이 우리나라 외교장관 최초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서 경청한 내용과 지난 네차례에 걸쳐서 이뤄진 민관협의회에서 청취한 국내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구체적으로 일본측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임 대변인은 이어 “정부는 일본측에 성의 있는 호응을 촉구했다”며 “이에 대해 일본측도 진지한 태도를 보이면서 우리측과 계속 심도 있게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다.
또한 임 대변인은 “강제징용이라는 양국간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일본측이 우리 의견에 대해 경청하고 더욱 진지해진 것을 감지했다”고 덧붙였지만 이번에도 한일 간 최종 해결 방안을 놓고 협의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박 장관이 이번 회담에서 어떤 방안을 전달한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특정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상황은 아니고, 시한을 정해놓은 것도 없다. 긴밀히 협의하는 연속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다만 앞서 민관협의회에서 제기된 기존 재단을 활용한 대위변제 방안은 협의된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이 하야시 외무상에게 재단과 민간기업 등을 주체로 한 배상 방안을 설명했다는 전언이 있다. 하지만 회담 이후 일본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하야시 외상은 일본측의 일관된 입장을 전했다”라고 밝혀 배상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이처럼 4년여만에 추진되는 한일 정상회담이 양측의 신경전으로 난기류를 겪고 있는 만큼 뉴욕에서 양국 정상이 만나더라도 정식회담이 아니라 풀어사이드(약식회담)로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징용 해법 마련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가 보수층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정부가 방안으로 삼고 있는 재단을 활용한 대위변제 역시 지금과 같은 일본의 소극적인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령 차후 우리측의 재단에 일본기업이 참여하더라도 배상이 아니라 기부 등 명목으로 그칠 경우 피해자측의 반발이 예상된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