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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원리 알려준 재즈음악영화 ‘위플래쉬’

2015-05-09 08:59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조우석 문화평론가
영화가 끝나고 스크롤이 올라가는 걸 보며 객석을 막 빠져나오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꼭 미친 사람마냥 “캬호!”하는 소리를 여러 번 내질렀다. 그런데도 우리 일행을 애써 쳐다보는 이가 없었던 것은 다른 관객들도 똑같은 느낌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좋은 작품을 보며 나눴던 짜릿한 즐거움을 떠올리면 지금도 흐뭇하다. 화제의 음악영화 ‘위플래쉬’ 얘기인데, 얼마 전 개봉일에 딱 맞춰 친구들 여섯 명이 대거 출동했다. 추억의 충무로 대한극장이었다.
사진계 어른 강운구 선생이 그날 우리 팀의 대장이고, 개업의에 재즈평론가, 출판사 대표 그리고 개업의, 아나운서 등이 두루 섞여있었다. 20대와 70대가 섞이고 남녀 구별이 없던 우리는 영화관람 뒤 치맥 파티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순전히 영화 탓이다.

재즈뮤지션 두 명의 광기와 음악에 대한 집념 얘기가 관객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는 그 작품은 아카데미상 5개 부문 노미네이션이 됐고, 3관왕을 석권했으니 품질보증은 기본이다.
“재즈를 사람들은 쉽게 생각하잖아요? 술과 마약에 절었던 트럼펫터 쳇 베이커 탓인지 재즈는 흐느적거리는 음악이라는 편견을 이 영화는 제대로 깨줍니다. 미친 듯 연습하고 경쟁을 이겨내야 그 바닥에서 살아남는다는 진리를 보여주죠. 재즈 뮤지션에겐 이 작품은 공포영화라니까요.”

당초 영화 얘길 전해준 것은 시사회를 챙겨봤던 재즈평론가 황덕호였다. 특히 마지막 10분은 영화사에 남을 위대한 엔딩이라는 말도 그가 귀띔해줬다. 진중한 성격의 황덕호 발언을 의심한 이는 없었다. 실제로 그 말은 이후 거의 모든 신문의 영화 리뷰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했다.
우린 개봉일만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그날 출동했던 것이다. 스토리는 이렇다. 최고의 재즈 드러머가 되는 게 꿈인 미 명문음대 신입생 앤드류는 우연치 않게도 최고의 실력자이자 최악의 폭군인 플렛처 교수에게 발탁된다.

   
▲ 영화 위플래쉬 한장면.
그의 밴드에 들어간 그는 스승의 폭언과 학대 속에 지독한 좌절과 최고의 성취를 함께 맛본다. 일테면 드러머 자리 하나에만 엔드류를 포함한 세 사람인데, 이 셋은 변덕쟁이 스승의 눈에 들기 위해 피 튀기는 경쟁에 몰입해야 했다. 그건 고난의 행군을 넘어 가히 지옥이었다.

플렛처 교수의 ‘사람을 죽이는’ 가혹한 교육방식은 천재를 갈망하는 앤드류를 거의 광기의 직전으로 몰아넣을 정도다. (한국 같으면 플렛처 교수는 당장 고소고발 당했고, 나쁜 스승으로 매도당했다.) 그런 스승과 제자 사이엔 갈등이 높아지면서 급기야 사고가 잇따르는데….

여기까지다. 재즈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 본래 클래식 매니아이었던 70대의 강운구 선생을 10년 전 재즈에 입문하도록 유도한 것이 본래 필자인 나였지만, 그 얘길 길게 할 겨를도 없다.
또 황덕호야말로 국내에서 재즈음악에 대한 이해가 가장 풍부한 사람이지만, 영화를 보는 눈은 건강한 상식을 가진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다. 맞다. 영화를 본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건 재즈가 아니라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얘기다.

무릇 스승이란, 그리고 선배란 제자, 후배를 최고의 프로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걸 위해 낮은 차원에 머물고 있는 제자, 후배를 때론 묵사발을 내야 되며 그 가혹한 과정을 이겨내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제자는, 후배는 평범함을 넘어 베스트가 되고, 끝내 위대한 성취에 도달한다. 그래서 플렛처는 제자를 이렇게 닦아세운다.
“영어로 된 제일 몹쓸 말이 뭔 줄 알아? 바로 굿 잡!(good job! 그만하면 됐어)이란 거야. 이 말 때문에 오늘날 재즈가 죽어가고 있는 거야.”

이 영화 명대사로 이게 꼽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 영화는 동시에 우정을 말하고 있다. 좋은 작품은 풍부한 해석이 가능하며, 그래서 다의적(多意的)인데, 내 눈으론 앤드류와 플래처의 사이는 지상 최고 우정의 무대를 연출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진정 아름다웠다.

수 틀리면 연주 중 관객들 보는 앞에서 우당탕쿵쾅 몸싸움을 벌일 수가 있다.(영화 마지막 실제로 한 판 제대로 붙는다) 공유하는 꿈이 있고, 그걸 구현하기 위한 열정이 꿈틀거리기에 우정은 끝내 기적을 낳는다.
이 작품의 마지막 10분의 기적이란 것도 스승과 제자가 위대한 무대를 꾸미며 극적으로 하나가 되는 장면을 말한다. 그래서 전율, 그 말이 딱 맞는 소리다. 그게 전부인가? 아니다. 이제 나만의 속생각도 털어놓고 싶다. 과연 ‘위플래쉬’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인가?

   
▲ 영화 위플래쉬 한 장면.
그건 아니다. 저예산 영화로 놀라운 성공을 거둔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는 경쟁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빼어난 통찰을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무게는 시장경제를 말하는 교과서 그 이상이다.
무슨 얘기지? 누구나 무한경쟁의 폐해를 말하고, 그게 정글 자본주의 탓이라고 냉소를 하는 게 유행이다. 그래서 승자 독식 사회를 저주하고, 사회양극화와 3포 세대의 앞날을 짐짓 걱정도 한다. 그게 짧은 생각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위력적인 작품이 ‘위플래쉬’가 아닐까? 즉 경쟁이란 인간사회의 기본원리다. 실제로 이 작품은 한 학교에 1군과 2군 밴드가 나뉘어 있고, 각 파트는 주전과 후보가 사투를 벌이는 걸 잔인할 정도로 보여준다.

이게 무얼 말해줄까? 음악이란, 문화예술이란 게 달콤하고 흐느적거리는 보헤미안 정서의 반영일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유치찬란한 신파로 굴러떨어질 뿐인데, 이건 사회 모든 부문에 적용 가능하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현대의 다양한 불행을 ‘그놈의 경쟁’ 탓으로 돌리지만, 그것이야말로 섣부른 저주다. 경쟁을 제거한다면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 자체가 사라지니까 말이다. 지난해 자유경제원에서 <경쟁은 아름답다>(북앤피플 펴냄)는 책이 나왔지만, 그 책 제목이 딱 맞는 소리가 아닐까?

역설이지만, 경쟁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참고로 1940년대 LA다저스 야구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던 악한(惡漢), 리오 듀로셔 감독의 명언이 이랬단다.“사람만 좋으면 그 친구는 그냥 꼴찌이거든.” 당신이 꼴찌를 원하는가?

요즘 한국사회에는 꼴찌이면서도 사람도 안 좋은 부류가 너무 많아진 건 아닐까? 그러면서 세상 탓만하는 건 아닐까? 일부 못난 이들이 세상을 향해 욕하고, 화를 낸다고 우리까지 그 하품 나는 행위를 흉내 낼 필요는 없다. 젊은이라면 더욱 그렇다. 책임있는 사회 중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사족=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슬며시 걱정했다. 흥행에 성공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변이다. 3월 개봉했던 ‘위플래쉬’가 순식간에 150만 명 관객수를 돌파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한 달만에 누적 관객수 150만 고지를 돌파했다. 그리고 다양성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8위에 등극했다. 폭발적인 입소문과 함께 드디어 상반기 최고 이슈작이다. 당장 관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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