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국토교통부가 김제공항 계획안을 폐기하고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에 추진력을 더하고 있다. 새만금 공항은 막대한 사업비가 들어가는 반면, 예비 타당성 조사가 면제돼 운영을 맡은 한국공항공사의 부담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토교통부가 항공정책위원회에 제출한 '김제공항 개발 기본 계획 변경·폐지(안)'./자료=독자 제공
9일 본지가 입수한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 자료에 따르면 당국은 항공정책위원회에 김제공항 개발 기본 계획 변경·폐지(안)을 제출했다.
당초 국토부는 2001년 7월 3일자 건설교통부·2003년 6월 30일자 항공안전본부 고시에 따라 전라북도권의 21세기 항공 수요에 대비하고, 국토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항공 교통 소외 지역인 전주 등 주요 도시 중심 지역에 신공항을 개발하고자 했다.
계획대로라면 전북 김제시 공덕면·백산면 일대에 1999년 착공해 2007년 완공될 예정이었던 김제공항 사업비는 총 1474억 원이었다. 하지만 김제시에서 추진한 마을 간 연결 도로 공사가 진행되자 서울지방항공청은 공항 실시 계획 변경을 변경했고, 해당 부지 중 일부를 2020년 5월 22일자로 매각했다고 공고했다. 157만3495㎡였던 공항 부지 면적도 156만171㎡로 소폭 줄었다.
이어 국토부가 올해 6월 새만금 국제공항 개발 사업 기본 계획을 고시함에 따라 김제공항 중장기 개발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국토부 항공산업과 관계자는 "김제공항 계획을 취소했지만 '기본계획 변경·폐지(안)'을 작성한 건 최종 사업 계획 면적을 맞춰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새만금 국제공항 입지도./사진=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 제공
새만금 공항 사업은 문재인 정권이 예타 면제 대상으로 선정했고, 윤석열 대통령 역시 조기 착공을 약속했다. 뒤이어 국토부가 '새만금 국제공항 개발 사업' 기본 계획을 고시하고 김제공항 폐기안을 제출해 전북권 신공항 건립 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국토부는 올해 안으로 새만금 공항 설계에 착수하고 2024년부터 착공에 돌입한다. 이와 관련, 총 사업비 8077억 원을 투입해 △활주로(2500m) △여객 터미널(1만5010㎡) △화물 터미널(750㎡) △주차장 △항행 안전 시설 등을 건설한다는 입장이다. 2028년 완공이 목표인 새만금 공항은 2029년 200명 가량 탑승이 가능한 여객기 5대가 주기 할 수 있는 국제공항으로 개항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일본·중국·동남아로의 국제선 운항이 가능한 새만금 공항의 연간 여객 수요는 개항 30년차인 2058년 기준 105만 명, 화물 수요는 8000톤에 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국토부의 이 같은 장밋빛 전망에도 항공업계 내 다수의 전문가들은 새만금 공항에 대해 회의적이다. 성공 조건을 맞추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어서다.
인천국제공항 전경./사진=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관문 공항이 인천국제공항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또한 김포국제공항과 김해국제공항의 경우에도 수요가 충분한데, 이 세 공항은 인구가 집중된 서울·경기 등 수도권과 부산·경남 등 배후 도시를 두고 있어서다.
전북 지역에서 3시간이면 전세계 155개 도시들을 연결하는 인천공항이 있고, 같은 호남권에는 무안공항이 있다. 광주·전남 지역 사회는 새만금 공항이 지어지면 무안공항의 위상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반면 전북의 인구는 지난해 6월 기준 179만 명으로, 499만6000명에 달하는 대구·경북보다도 적다. 특히 새만금 공항이 지어질 김제·군산시 등 배후 도시의 인구의 총합은 40만 명 수준에 불과하다.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들이 없더라도 환승객과 화물 환적 수요가 많을 경우에도 공항 성공 방정식은 성립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 전 세계 260개 도시를 이어주는 두바이 국제공항에는 150여 개의 항공사가 취항해 성업 중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국제공항 역시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해 각국 대도시들과 연결해주는 허브 역할을 해내고 있다.
또한 주변 지역에 관광 자원 등 소위 '볼거리'가 있어야 공항이 성공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 항공권을 구입하는 경우는 비행기 탑승 자체를 즐겨서가 아니기 때문에 항공 수요는 본원적이지 않고 파생적 수요라는 주장과도 궤를 같이 한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괌이나 세부, 라스베이거스, 제주도와 같은 여행지의 공항이 흥행할 수 있는 건 훌륭한 관광 상품이 존재하는 것에 기인한다"며 "동진강 하구를 방조제로 막아 만드는 새만금 간척지에 공항을 지어봐야 파리만 날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천국제공항에 여객기들이 주기돼 있다./사진=연합뉴스
아울러 항공사들 역시 새만금 공항에 취항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03년 완공된 경북 울진공항에는 취항을 희망한 국내외 항공사들이 단 한 곳도 없어 현재는 한국항공대학교·한국항공직업전문학교(한항전)이 국토부를 대신해 비행훈련원으로 위탁 운영 중이다. 2007년 11월 개항한 무안공항도 한때 수요가 없어 인근 주민들이 수확한 고추를 활주로에서 말리는 진풍경이 포착되기도 했다.
국토부는 새만금 공항 운영 주체로 한국공항공사를 선정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한국공항공사는 2020년 2598억 원, 2021년 2782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지난달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적자 탈출 시점을 언제로 보느냐"고 질의했고, 윤형중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2025년 경 가능할 듯 하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공항공사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거철마다 등판하는 '공항 정치학'은 '비용의 사회화'를 초래하고, 그에 대한 책임은 그 누구도 지지 않는다"며 "인천·김포·김해·제주 외 나머지 11개 공항들이 전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 주도의 후진국형 공항 건설은 재고할 때가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민간 기업으로부터의 공항 건설 재원 조달과 준공 후 일정 기간 동안 사업 시행자에게 소유권을 인정해주고, 만료 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귀속토록 하는 BOT(Build-Operate-Transfer) 방식은 글로벌 공항 산업계의 트렌드"라며 "국영 항공사들이 민영화 됐듯이, 이제는 공항이 그 순서를 따를 때가 찾아왔다"고 부연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