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ICSID 소송 제기 가능성도
[미디어펜=조항일 기자]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는 공격 수위를 점차 높여가면서 이들의 최종 목표가 삼성전자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9일 금융업계 및 법조계 등에 따르면 엘리엇은 이날 양사의 합병에 반대하며 이를 막기 위해 삼성물산과 이사진들에 대한 주주총회결의금지 등 가처분소송을 서울지방지법에 제기했다.
▲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9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막기 위한 법적 절차에 착수한 가운데 이들의 '노림수'가 삼성전자가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됐다./사진=연합뉴스 |
주총결의금지는 이사진과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를 막는 조치로 엘리엇은 법원에 제기한 가처분소송을 통해 삼성물산 주총에서 제일모직의 합병을 결정되지 않도록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은 이날 발표에서 이번 주총결의금지 가처분 소송 제기에 대해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을 무산시키기 위한 주도권 확보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우호세력을 규합하고 다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시간끌기’로 분석하고 있다.
엘리엇은 지난 4일 경영참여 목적으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했다고 공시했다. 그러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5% 이상 지분 보유 투자자의 자본시장 냉각규정에 따라 주주명부 폐쇄일(11일)까지 추가 지분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엘리엇이 꺼내 든 최후의 무기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절차 돌입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M&A업계 관계자들은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을 수정하기 위해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 독소조항을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ISD 독소조항은 투자자가 특정국가의 법령이나 정부 정책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다.
엘리엇이 ISD를 삼성에 대한 새로운 공격무기로 내세운다면 합병비율 산정기준 자체를 문제로 삼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주총결의금지 가처분소송 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엘리엇은 ISD 소송을 제기하고 추후 자사 소재지인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엘리엇이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에서의 경영권 분쟁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재계 등에 따르면 엘리엇이 삼성전자 지분을 일정 부분 취득한 후 다른 외국인과 연계해 배당확대, 이사진 교체 등 초강수로 삼성을 압박해 삼성전자 경영권 분쟁을 노리는 포석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삼성전자의 주가가 상승곡선을 그리며 삼성전자 지분 4.1%를 소유한 삼성물산의 위상이 올라가 삼성물산 내 3대 주주 중 하나인 엘리엇의 입지가 견고해지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노림수라는 것이다.
한편 삼성도 엘리엇의 공세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은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과 윤주화 제일모직 사장 등 두 계열사 수장을 필두로 한 하병대응팀을 지난 8일 가동했다.
삼성그룹은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과 윤주화 제일모직 사장 등 두 계열사 수장을 필두로 한 합병대응팀을 각각 가동했다고 8일 밝혔다. 최 사장은 지난주 홍콩으로 날아가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을 접촉하고 전날 귀국했다.
삼성 측은 “합병 결의를 위한 주총을 앞두고 삼성물산의 대주주 중 하나인 국민연금(9.79%)을 포함한 투자자들과의 소통을 확대해 합병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