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주요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했지만, 은행권 예금금리는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며 연 3% 초중반대로 추락했다. 사실상 기준금리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데, 은행권이 경쟁적으로 예금금리를 인상하던 시기와 크게 대비된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긴축종료 시그널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은행(금융)채 금리가 하락한 까닭이라며, 추가 금리 하락도 예상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며 연 3% 초중반대로 추락했다./사진=김상문 기자
13일 금융권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 등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판매 중인 정기예금 상품의 금리는 연 3.37~3.80%에 형성돼 있다. 최고우대금리를 합산한 값으로, 예금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낮거나 소폭 높은 실정이다. 금통위는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2월에 이어 연 3.50%로 동결했다.
인터넷은행에서도 금리인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당장 토스뱅크는 이날부터 핵심 상품인 '토스뱅크 통장'(수시입출금통장)과 '모임통장' 금리를 각각 연 0.2%p 인하했다. 이에 수시입출금통장 금리는 5000만원까지 연 2.2%에서 연 2.0%로, 5000만원 초과분에는 연 3.8%에서 연 3.6%로 각각 조정됐다. 모임통장은 연 2.2%에서 연 2.0%로 조정됐다.
다만 토뱅 측은 금리인하 배경에 대해 "수신(예금) 포트폴리오 강화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최근 '먼저 이자 받는 예금' '키워봐요 적금'을 출시한 데 이어 전날 '굴비적금'을 선보였다"며 "수신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면서 자연스레 상품금리를 조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굴비적금은 '짠테크족'을 겨냥한 6개월 만기 적금상품으로 최대 연 5%의 이자를 제공한다.
특히 토스뱅크 통장(5000만원 초과분에 연 3.6% 제공)이 연 3.5%를 제공하는 먼저 이자 받는 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기예금 금리가 수시입출금 금리보다 높아야 하는 만큼, 상품 간 금리균형을 맞추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다.
토뱅에 앞서 경쟁사인 케이뱅크도 수시입출금통장 역할을 하는 '플러스박스' 금리를 인하한 바 있다. 케뱅은 지난해 12월 이 상품 금리를 연 3.0%까지 올렸다가 2월부터 연 2.7%로 유지 중이다. 카카오뱅크의 '세이프박스'는 연 2.60%를 제공하고 있다.
이 외 한때 연 4%대를 호가하던 지방은행 정기예금 상품들도 최근 연 3% 중후반대로 내려왔다.
은행권의 예금금리 인하는 자금조달 수단인 은행채 금리가 꾸준히 하향 조정되는 까닭이다. 대외적으로 미국이 긴축을 종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우리나라도 하반기께 금리인하를 기대하는 시각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긴축종료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긴축종료가 될 수 있겠다는 분위기는 이미 형성됐다"며 "이창용 한은 총재가 '절대 금리인하는 없을 것'이라고 발언했지만, 말이라는 건 언제나 바뀔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금리격차가 꽤 큰 만큼 연내 금리 인하가 안 될 가능성도 있지만, 이 정도 차이(1.50%p, 미국 금리는 연 5.0%)에도 금리가 동결되는 점을 고려하면 한은이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추후 물가가 안정되고, 금리인하 여력이 생기면 한은도 입장을 선회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 은행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은행채 금리는 연중 최고치를 찍었던 지난해 4사분기 대비 크게 하락한 상황이다.
이날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 12일 은행채(무보증) 1년물 평균금리는 연 3.554%로 이달 3일 연 3.603% 대비 약 0.049%포인트(p) 하락했다. 4~5%대를 호가하던 지난해 4사분기와 견주면 상당한 하락세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던 11월14일 연 5.017%에 견주면 약 1.463%p나 차이난다.
업계는 특별한 대내외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예금금리는 자연스레 하락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 관계자는 "금리가 더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시그널 때문에 대출금리가 하락하고 있고, 자연스레 예금금리도 하락하고 있다"며 "수요와 공급에 의해 적정 예금금리를 가령 연 2.5%로 책정하더라도 가입할 고객들이 나올 것이다"고 설명했다.
시장금리가 추가 인하할 것을 우려한 안정적 투자성향의 잠재 고객들이 뒤늦게라도 예금에 가입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번 금통위에서 긴축·물가 관련 발언이 있었지만, 이 총재가 금리를 유지하다가 침체에 따라 조금 내릴 수 있겠다는 뉘앙스로 말하긴 했다"며 "(금리를) 더 올리지 못하고 상단은 막혀있는 상황이라면, 은행들이 자연스레 하락으로 방향을 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동안의 예금금리가 '비이성적'이었던 만큼, 기준금리보다 높은 예금금리도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 관계자는 "예금금리가 한때 5%를 넘었던 적이 있었는데 비정상적으로 높았고 결코 정상적이지 않았다. 당국의 압박이 있었고, 시장금리(은행채)가 너무 높은 탓이었다"며 "기준금리보다 예금금리가 높아야 한다는 인식은 꽤 최근이다. 지난 초저금리 시대를 생각해보면 기준금리보다 은행 예금금리가 높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금) 중도 상환 가능성이 극히 낮은 기관 등 장기투자자와 달리 개인고객은 갑자기 예금을 해지할 가능성이 있다"며 "은행으로선 리스크비용을 고려해 예금금리를 기준금리보다 낮게 잡는 게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의 예금금리 인하 여파에 '역머니무브' 현상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지난달 정기예금 잔액은 805조 3384억원으로 전달 대비 약 10조 3622억원 줄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예금잔액 변화는) 좀 더 확인해야 한다"면서도 "실제 예금이 많이 빠지고 있긴 하다. 최근 주식시장이 활황이니 예금금리 3%보다 투자로 수익을 얻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