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11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의 중소기업대출비율을 50%로 일원화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 대출비율이 45%에서 50%로 강화되고, 지방은행은 60%에서 50%로 완화된다. 지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7월 관련 대출비율이 지정된 후 약 26년만이다.
지방은행권은 이번 대출비율 조정으로 '대출 건전성 개선' 및 '가계대출 영업 강화' 등을 기대할 수 있게 돼 반기는 분위기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11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의 중소기업대출비율을 50%로 일원화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 대출비율이 45%에서 50%로 강화되고, 지방은행은 60%에서 50%로 완화된다./사진=김상문 기자
17일 은행권에 따르면 오는 7월 1일부터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의 중소기업대출비율이 50%로 일원화된다. 중소기업대출비율제도는 신용도와 담보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은행자금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난 1964년 도입됐다.
금융기관 여신운용규정에 따르면 은행의 원화자금대출 증가액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중소기업에 대출하도록 하고 있는데, 1997년 7월부터 지방은행 60%, 시중은행 45%를 '쿼터'로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이 이 쿼터를 충족하기 위해 대출을 늘리는 과정에서 연체율이 높아지고, 대손충당금도 그만큼 더 쌓아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지방은행들은 오래 전부터 '대출비율 완화'를 요구했다.
은행들이 60%를 충족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취약한 중소기업들까지 대출 부담을 떠안은 까닭이다. 대출비율 차등 적용이 시중은행은 우량하고 안전한 주택담보대출 및 대기업대출 등에, 지방은행은 지역 중소기업대출에만 각각 집중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에 지방은행권에서는 무리하게 신규 대출을 늘리기 보다 타행 '대출 갈아타기(대환)'를 비율에 반영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묵살됐다.
규제 불충족에 따른 대가는 가혹하다. 실제 지방은행권은 60%의 대출비율을 채우지 못하면 미달금액의 50%까지 한은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가 차감된다. 한은의 금융중개지원대출은 중소기업 대출을 저리에 내어주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은행이 시장에서 매입하는 채권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금융당국은 대출리스크에 따른 자본충당금 등 건전성 규제를 시중은행과 동일한 잣대로 적용했다. 최근 고금리 문제로 은행권 연체율이 높아지는 가운데, 대손충당금 적립규모가 급증하자 지방은행권에서 볼멘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방은행권 사이에서 이 제도를 '역차별'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신규 원화대출로 100억원을 공급한다면 중소기업에 45억원, 나머지 55억원을 가계대출 및 대기업대출로 내어주면 돼 가장 안전한 대출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며 "부실우려가 낮기에 충당금을 덜 쌓아도 되다 보니 이익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방은행은 신규 대출로 100억원을 공급한다면 60억원을 중소기업대출로 내어줘야 하는데, 주담대나 대기업대출 대비 부실날 확률이 높고, 상대적으로 충당금을 더 많이 쌓아야 한다"며 "코로나19와 같은 비정상적 상황이 오면 부실날 가능성을 더 높게 책정해야 하고, 여기에 스트레스테스트 등을 통한 완충자본도 더 많이 쌓아야 해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대출비율 60%를 충족하지 못하면, 한은 차입금 등이 줄어드는 페널티 및 제재가 있다"며 "가계대출을 늘리기 위해 억지로 기업대출을 늘릴 수 없는 노릇이다. 페널티가 없게 되면 무리한 대출영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무관심으로 일관한 역차별 문제, 26년간 '공회전'
대출 역차별 문제는 지난 26년간 해결되지 못했는데 업계에서는 두 가지 배경을 꼽고 있다. 우선 지방은행 설립 배경이다. 정부는 과거 '1도 1은행' 원칙에 따라 10개의 지방은행 설립을 허가했는데, 지방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많은 대출을 내어주라는 취지였다. 취지를 배제하면 지방은행과 시중은행의 역할이 동일해, 설립 무용론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IMF 당시 지역 중소기업 도산 문제 등으로 인해 지방은행들에게 자금공급 파이프 역할을 좀 더 확실히 하라는 측면에서 비율규제를 적용했다"며 "공공성 측면에서 지방은행이 지역기업에게 자금공급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것은 맞는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지방금융에 대한 무관심이 꼽힌다. 한 관계자는 "당국이나 한은이나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서울에 모여 있다 보니, 지방소멸이 국가적 이슈라 하더라도 크게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며 "그동안 지방은행이 은행연합회에 의견을 제시해도 (인터넷은행 3사를 포함해) 시중은행이 가장 많은 의석 수를 차지하다보니 관련 이슈를 '때되면 나오는 지방은행 과제'로 보는 인식이 강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금융노조를 비롯 야당 의원들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면서, 이번에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가계대출 확대 및 건전성 개선 기대
지방은행권은 대출의무비율 개선으로 중소기업대출에 쏠려있는 대출 포트폴리오를 좀 더 안전한 가계대출 등으로 메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최근 자산건전성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만큼 리스크 부담을 덜었다는 설명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이번에 대출비율이 50%로 줄어들면 지방은행들도 상대적으로 더 안전한 대출(주담대 등 가계대출 및 대기업대출)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10%의 격차를 이용해) 저리의 (한은 중개대출) 자금을 지역 중소기업에게 공급할 수 있어 금리인하 효과와 무역금융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규제 완화로 가계대출 캐파(수용력, capacity)가 늘어나게 된 만큼, 주담대 외 햇살론뱅크 등 중저신용자 대출도 좀 더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며 "상대적으로 위험한 대출을 억지로 늘리지 않아도 되는 만큼, 건전성 개선도 기대된다"고 전했다.
"취약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축소 없을 것"
대출비율 완화로 지역 취약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대출이 축소될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대출 고객이 지역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들로 구성된 만큼, 대출의무비율이 줄어도 관련 대출을 급격하게 줄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지방은행 주 고객층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인 만큼, 의도적으로 대출을 줄이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경기 등에 따라 자체적으로 대출구조를 조절할 수 있는 버퍼(buffer)가 좀 더 생겼기 때문에 아무래도 숨통을 트이게 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중은행에서 거절된 고객들이 지방은행으로 오는 편이고, 지방은행도 대출 공급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며 "재무구조가 개선된 기업들은 대부분 시중은행으로 옮겨가고, 그 빈 자리를 또 다른 중소기업들이 메워왔다. 규제 완화가 지방은행의 오랜 숙원이긴 했지만, 본연의 역할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제도가 개선되더라도 지방은행의 역할이 있는 만큼, 비율을 확 줄이진 못할 것이다"며 "오히려 페널티가 사라진 만큼, (한은 자금을 이용하는데) 차입 부담이 줄어들어 무역금융 등을 저리로 공급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