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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우의 day by day] 사자의 추억, 화가 밥 로스 사망 20주년

2015-07-04 16:16 | 이원우 차장 | wonwoops@mediapen.com
   
▲ 이원우 기자

2015년 7월 4일은 미국 화가 밥 로스(Robert Norman "Bob" Ross, 1942-1995)의 사망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5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악성 림프종으로 사망한 그는 90년대 중반에 학창시절을 보낸 많은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좋은 아저씨’로 기억되고 있다. EBS에서 방영된 ‘그림을 그립시다’ 덕분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밥 로스는 그림 그리는 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인 것처럼 쓱싹쓱싹 붓질 몇 번을 하고는 마법처럼 멋진 풍경화 한 폭을 완성해내곤 했다. 그리곤 꼭 덧붙였던 한 마디 - “참 쉽죠?” (That's easy.)

의외의 사실은 한국의 수많은 초딩과 중딩들이 이 프로그램을 봤을 무렵 밥 로스는 이미 사망했다는 점이다. 90년대 어린이들의 마음에 새겨진 기억은 사자(死者)와의 추억인 셈. 이런 소식이 당시 학생들에게 전해졌다면 ‘빨간 마스크’ 이상의 공포 신드롬이 조성됐을 법도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동심파괴(童心破壞)는 발생하지 않았다.

허허실실 웃고 있는 털보 아저씨 느낌이지만 사실 밥 로스는 공군 부사관으로 20년을 복무한 베테랑 군인이었다. 풍경화의 달인이 된 비결도 알래스카 기지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면서 그곳의 풍경을 주로 그렸기 때문이다.

   
▲ 5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악성 림프종으로 사망한 그는 90년대 중반에 학창시절을 보낸 많은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좋은 아저씨’로 기억되고 있다. EBS에서 방영된 ‘그림을 그립시다’ 덕분이다. /사진=밥 로스 공식 홈페이지

부업삼아 했던 활동이다 보니 시간이 촉박한 중에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게 오히려 밥 로스의 ‘대박’이 됐다. 보통의 유화 제작방식과 달리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덧칠을 시도한 궁여지책이 ‘Wet on Wet’ 기법으로 주목받게 된 것. 잘 되는 사람은 뭘 해도 잘 된다는 인생의 실전적 교훈(?)을 우리는 이 남자의 인생에서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밥 로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린다. 어린이들에게야 피리 부는 아저씨 이후 이렇게 매력적인 아저씨가 없었을 정도이지만, 정통(正統)을 중시하는 예술가 세계에서 밥 로스는 이종(異種)으로 취급 받는다.

그림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게 비판의 주된 요지였지만 그는 자신의 출연료를 방송사에 전액 기부했을 정도로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나머지 수입은 책과 비디오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물론 그 금액이 결코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나 액수의 많고 적음으로 예술의 깊이를 측정할 수는 없는 일. 자신의 대변을 잘라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예술가 행세를 할 수 있는 세상에 ‘그림’ 그 자체의 매력을 대중에 알린 밥 로스의 성취를 누가 적다 할 것인가.

다만 꿈에서 그를 만난다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어요”라고 대답해 주고 싶긴 하다(That's not that easy). 인품 좋아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술고래였던 것으로 전해지는 밥 로스 아저씨의 이른 죽음이 새삼 안타깝게 느껴지는, 2015년 7월 4일은 그런 날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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