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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횡령 사고, 제도 갖춘다고 사라질까…해외사례 보니

2023-08-15 11:05 | 류준현 기자 | jhryu@mediapen.com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지난해 우리은행에 이어 최근 BNK경남은행에서 은행원의 대규모 현금 유용사태가 발생하며,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강력한 내부통제를 요구하고 있다. 

당국은 재발 방지의 일환으로 장기 근속자의 보직이동 및 순환근무 등의 대안을 내놓는 한편, 임직원 제재 등의 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횡령사고는 개인의 일탈이 근본적인 문제인 만큼, 원천 차단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난해 우리은행에 이어 최근 BNK경남은행에서 은행원의 대규모 현금 유용사태가 발생하며,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강력한 내부통제를 요구하고 있다./사진=김상문 기자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당국은 내부통제 강화의 일환으로 은행권에 특정 부서 장기 근무자에 대한 순환 배치 등 인사·조직개편을 주문하고 있다. 해당 분야에 정통한 실무자가 장기 근속할 경우 은행 내부정보나 허점 등을 파악해 악용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일각에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대규모 횡령사태가 발생한 우리은행과 경남은행 사태는 한 직원의 계획된 범죄로 빚어진 사고였다. 다만 지난해 우리은행 사태를 계기로 당국이 은행권에 철저한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했었던 만큼, 경남은행을 향한 비판은 더욱 거세지는 모습이다. 사건 피의자는 PF관련 자금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차례 횡령했는데 피해규모만 562억원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장기 근속자 방치와 시스템 미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고로 보고 있다. 문제가 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은 특수분야에 속해 전문성을 갖춘 장기 근속자를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출점검과 승인 심사를 홀로 처리하도록 방치한 게 너무 큰 패착이었다는 설명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고인 물이 썩은 물이 될 수 있는 업무가 있고, 아무리 단기근속자라도 시스템이 미비해 횡령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경남은행의 경우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됐고, 경력 5년 미만의 행원도 할 수 있었던 통제시스템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이어 "은행원은 기본적으로 돈을 다루기 때문에 대출승인을 올리는 사람과 승인을 허가하는 사람 모두 책임을 지는 식으로 복수체크를 하는 게 원칙이다"며 "시중은행의 경우 지급요청서를 받으면 관련 부서에 수차례 교차검토를 거쳐 자금 집행이 이뤄지는 시스템인 반면, 경남은행은 한 사람이 지급요청서를 받으면 직결로 승인 처리한 게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시중은행은 '프론트(front)-미들(middle)-백(back)' 체제로 각각의 부서에서 스텝적으로 대출 문제를 검증하고 있다"며 "경남은행은 대출 심사와 집행을 한 사람이 했는데 은행이 이를 방치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프론트는 대출 영업과 심사를, 미들은 서류 모니터링을, 백은 자금 집행 및 대출실행 후 상환여부 등을 집중 점검한다. 

그럼에도 업계는 횡령사고가 쉽사리 잡히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통제시스템 고도화에도 불구 특수 대출분야의 인력교체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또 천문학적 자금을 유용한 것 대비 개인에 대한 범죄형량이 크지 않은 점도 범죄 유혹에 빠지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 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도 두 은행의 사례와 비슷한 은행원의 횡령 사고가 발생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싱가포르 현지 매체인 더스트레이츠타임즈(THE STRAITS TIMES)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여신운영전문가로 활약한 한 은행원이 113만달러(한화 약 11억 1554만원) 규모의 자금을 횡령해 검찰에 송치됐다. 

수기장부를 위조하고 고객이 희망하는 규모 이상으로 자금을 빼내 개인 유용한 혐의였다. 그는 도박중독과 빚부담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빼돌린 자금 상당액을 도박에 탕진했다가 내부감사에서 적발됐다. 환수금은 6만 2258싱가포르달러(약 6146만원)에 불과했다. 이 혐의로 검찰은 징역 7년 5개월을 구형했다. 

사례는 다소 다르지만 인도네시아에서도 행원이 자금을 유용하고 문서를 조작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야후뉴스 싱가포르판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해당 피의자는 지난해 1월 자사 은행 자금 62만 8000싱가포르달러(약 6억 2000만원)를 횡령하고 장부서류 등을 조작했다가 인도네시아 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받았다.

범행 당시 그는 인도네시아 네가라은행의 지점 관리자였는데, 8만 3000싱가포르달러(약 8194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빚을 빚으로 돌려막기 위해 또다른 대부업자에게 2만 5000싱가포르달러(약 2468만원)의 대출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스캠사기에 당했다. 

이 대부업자는 대출을 내어주기 위한 관리비 개념으로 자금을 요구했는데, 행원은 이를 지불했음에도 대출을 받지 못했다. 스캠사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은행원은 총 25번의 대출을 일으켜 가짜 대부업자에게 송금했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재무제표 등 사문서를 위조했다가 내부감사에서 적발됐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아도 지나친 통제가 개인의 자율성에 기인한 영업을 못하도록 건드릴 수 있어 자율적으로 맡겨야 하는 부분이 있다"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범죄자보다 경영진 책임론을 들먹이는 건 다소 과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순환근무를 하더라도 언젠가 하던 업무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고, 사고는 재발할 수 있다고 본다"며 "당국이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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