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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50년 주담대' 홍보하더니 지금와서 은행탓"…대출자 '멘붕'

2023-08-18 11:36 | 류준현 기자 | jhryu@mediapen.com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최장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가계부채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은행권을 압박하고 나섰다. 은행들이 제대로된 담보나 대출자의 생애주기별 소득분석 없이 대출을 무분별하게 내어줘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취지를 무색하게 할 뿐더러, 가계부채 폭증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은행권은 50년 만기 주담대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금융위원회에서 기획됐고 은행들이 발맞춰 상품을 내놓은 만큼, 은행권을 가계부채 증가의 주범으로 몰고가는 건 잘못됐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최장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가계부채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은행권을 압박하고 나섰다./사진=김상문 기자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가계부채 급증의 주요 요인으로 '최장 50년 만기 주담대'를 지목하며, 은행권을 압박하고 있다. 은행이 대출자에게 주담대를 내어줄 때 현행 DSR 규제와 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적용하고 있는데, 만기를 늘려줌으로써 DSR 규제가 잘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만기가 짧으면 원리금 부담이 커져 대출을 일으키지 못했을 대출자가 만기 연장 효과로 무리하게 대출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만기 50년 주담대는 한국주택금융공사가 특례보금자리론으로 최초 내놓은 이후 올해 1월 Sh수협은행, 6월 DGB대구은행, 7월 주요 시중은행들이 대거 합류했다. 

특례보금자리론은 미래 소득을 고려해 '만 34세 이하'만 받을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는데, 민간 은행에서는 이와 무관하게 받을 수 있다. 또 주택가격 9억원 이하의 물건에만 대출을 신청할 수 있는 특례보금자리론과 달리 시중은행 주담대는 주택가격 및 소득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더욱이 정부는 생애최초 주택 구매자에게 LTV 상한을 지역·주택가격·소득과 무관하게 80%까지 완화한 상태다. 대출자가 DSR규제만 충족한다면, 서울 등 수도권에서 내 집 마련이 한층 수월해진 셈이다. 

문제는 일부 은행에서 소득수준이 불분명하거나 중장년층에게도 만기 50년의 주담대를 내어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이 가계부채의 질을 악화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실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한 지 한 달만에 대출잔액은 1조 2000억원을 넘어섰다. 

이에 당국은 특례보금자리론과 동일하게 50년 만기 주담대를 '만 34세 이하'만 받을 수 있도록 검토하고 있다. DSR 규제 본연의 취지에 걸맞게 은행들의 대출상품을 개편해야 한다는 속내다. 

전날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 주재로 열린 '내부통제·가계대출관리 강화를 위한 은행장 간담회'에서도 이 부원장은 "향후 금리상승 기대 약화, 자산가격 상승 기대감 등이 확산될 경우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며 "일선 영업현장에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 현행 대출규제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거나 우회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관리할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또 "대출 취급시 차주 소득심사, 담보가치 평가 등 필요한 여신심사절차가 관련 내규에 따라 적정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전체 가계대출 및 특정 차주군에 대한 대출 증가 규모·속도가 해당 은행의 여신정책, 리스크관리 정책, 자본관리 계획 등에 부합하는 범위 이내에서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가계부채 급증의 주요 원인을 '50년 주담대'로 보고 그 주범을 '은행권'으로 내모는 형국인데, 업계는 정부의 '정책실패'라고 꼬집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당선 직후 LTV를 기존 20~40%에서 70~80%로 완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주택이라는 충분한 담보가 있는데도 과하게 대출을 틀어막는 게 시장논리상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막기 위해 DSR 규제는 유지했는데, 이 규제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계층이 부유층에 국한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청년의 미래소득을 반영해 만기를 최장 50년까지 늘리고 대출한도가 늘어나게 설계했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정부가 DSR규제 우회책을 내놓은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취약계층 및 청년층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 정부가 DSR 규제를 완화한 것인데, 객관적인 가계대출 관리 차원에서 규제 취지와 부합하지 않은 까닭이다. 

당시 일부 은행들은 DSR 규제를 우회 완화하는 상품을 내놓았다가, 가계부채 증가로 당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 그런 일이 이번에 일어난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사실상 정책의 실패라 볼 수 있다. 은행이 처음 40년 주담대를 내놓은 것도 당국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었다"며 "정부가 DSR을 건드리면 공격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보니 부동산을 활성화하면서 DSR 규제를 충족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했고, 그 결과물이 구두개입을 통한 만기 40·50년 상품 출시였다"고 비판했다. 

또 불투명한 소득을 비롯해 중장년층에게 50년 주담대를 내줬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당국에서 50년 주담대를 출시할 때 가이드라인으로 만 34세 이하만 가능하도록 설정했어야 했는데 그런 게 없었다"며 "당국의 실패를 은행에 떠넘겨 의도적으로 피하려고만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당국의 미래소득 반영에 대한 평가기준도 모호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미래소득을 어떻게 촘촘히 반영할 지 잘 모르겠다"며 "당장 대출자가 갑자기 실직해 소득이 없어지는 이런 변수를 어떻게 예측하나. 미래소득을 손질한다는 건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출자들은 금융당국의 50년 만기 주담대 손질 예고에 분주한 모습이다. 고금리로 주택가격 거품이 어느정도 꺼지면서 주택매수를 저울질할 수 있게 됐는데, 갑자기 정부가 대출을 틀어막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에 뒤늦게 내집마련에 합류하려는 대출자들이 시중은행의 50년 만기 주담대 금리비교에 나서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기준 5대 시중은행의 50년 만기 주담대 고정(혼합)형 금리는 연 3.96~6.26%로 집계됐다. 5대 은행 중에서는 농협은행의 금리 하단이 연 3.96%로 가장 낮았다. 이어 국민 연 4.05%, 우리 연 4.15%, 신한 연 4.73%, 하나 연 4.76% 순이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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