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제2의 국정농단 사태를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탄생했다. 삼성의 윤리 의식이 부족해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는 전제에서다. 그러나 국정농단은 엄밀히 말해 정치인과 기업인의 불평등한 관계에서 불거진 문제다. 때문에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기업인이 없다는 현실을 전제한 후 이 사건을 바라보면 해법은 간단하다. 기업을 향한 정치권의 권력 남용을 막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애석했다. 여러 과정 끝에 준감위는 출범했고, 준감위가 있었다면 국정농단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는 사실이 됐다. 동시에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그 어떤 권력도 ‘공식적으로는’ 삼성에 함부로 후원을 요구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준감위 역시 ‘2022 연간 보고서’를 통해 “준법경영을 훼손하는 외압을 막아주는 방파제가 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준감위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이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는 데는 부담이 따른다. 준감위의 위상이 너무나 드높아서다. 실제로 삼성의 전국경제인연합회 재가입 문제를 놓고 세간의 관심은 온통 준감위에 쏠렸다. 준감위의 의견에 따라 삼성은 물론 SK, 현대차그룹, LG의 결정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랬었다. 준감위의 역할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의미다.
다만 막중한 역할과 달리 ‘전경련 재가입 결정은 삼성의 경영진과 이사진이 하되 정경 유착 발생 시 즉각 탈퇴하라’는 준감위의 의견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결정은 네가 하되, 문제 시 탈퇴하라’는 건 중대한 의견이라기 보단 훈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 말라고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재가입을 권고하기엔 여러모로 부담이 되니 그랬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비쳐져 비겁해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 결정으로 준감위가 손해 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만에 하나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발생할 경우 결정은 삼성이 했으니 그 책임은 삼성이 떠안을 수밖에 없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면 그건 그저 본전이다. “‘준감위의 검토를 거쳤나요?’라는 말이 삼성 안에서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준감위의 자체 평가는 사실이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는 의미다.
준감위의 최대 성과로 ‘이재용 회장의 4세 경영 포기’를 꼽은 점도 경솔했다. 상속 포기를 높게 평가한다는 것은 상속을 나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인데, 자식이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이 세상 대다수의 부모는 자신이 가진 좋은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재용 회장의 경우 그것이 삼성의 주식으로 존재할 뿐인데 그걸 왜 나쁜 것으로 규정하는가.
물론 이 회장은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삼성이라는 무게를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을 수 있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이 회장이기에, 이를 대물림하기보다 자신의 대에서 그 고리를 끊고 싶었을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준감위의 평가는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닌, 사람을 소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눠 가진 자는 무조건 나쁘고, 그것을 상속하는 건 더 나쁘다는 전제 하에 내린 평가였을 가능성이 크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을 해결 과제라고 한 것 역시 오만하다. 지배구조에 딱 떨어지는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주사의 형태든, 순환 출자의 형태든 성과를 잘 내는 구조가 좋은 지배구조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마치 좋은 지배구조가 어디엔가 존재하는 양 그것을 찾아 헤매는데 시간을 낭비한다. 그것도 기업을 일궈보지 않은 이들이 모여 하고 있으니 신기한 풍경이다. 그들이 정답을 찾을 수 있을까?
준감위의 역할은 그들의 말대로 ‘외압’을 막아주는 데서 그쳐야 한다. 그들이 ‘감히’ 4세 경영 포기를 높게 평가하고, 그간의 삼성이 범죄의 온상인 양 이야기하는 것은 선을 넘는 것이다. 삼성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 평가는 ‘불매’라는 형태로 소비자들이 내리는 것이지 준법감시위원회 위원들의 논의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시장의 힘이고, 삼성은 그 힘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은 대한민국에서 그런 존재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