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우 기자 |
“내 이쁜 딸을 죽이다니 하늘이 무너지고 억장이 무너져 살 수가 없다. 어린 아이를 미국으로 보내고 십년이란 긴 세월을 피눈물로 살았는데 몇 번 보지도 못한 내 딸 공부만 하다가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 한마디 못하고 하늘나라에 갔다. 어찌할꼬? 불쌍한 내 딸….
눈이 펑펑 오는 날에도 내 딸 학비를 벌기 위해 깊은 산에 올라 호미로 칡을 캐 즙을 만들어 팔고 멧돼지가 나와도 산나물을 뜯어 시장에 팔아 내 딸 학비를 보냈건만 몸이 다 썩고 그 이쁜 눈이 다 썩어 엄마도 보지 못하고. 누가 제발 내 딸 좀 살려주세요.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너무 보고 싶어요.
어제는 27번째 우리 딸 생일. 미역국도 먹여야 하는데. 어미 가슴이 찢어지고 너무 아파요.”
지난 5월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시멘트 암매장 살인사건’의 피해자 故김선정 씨의 어머니가 쓴 글이다. 지난 7월 24일은 세상을 떠난 선정 씨의 생일이었다.
범인은 선정 씨의 남자친구인 이 모씨였다. 상습적으로 선정 씨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이 씨는 결국 5월 2일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시체를 여행용 가방에 넣어 충북 제천 야산에 시멘트 암매장 했다. 그리고 선정 씨의 말투를 흉내 내며 그녀의 가족들과 문자 메시지를 교환했다. 점점 상황이 불리해지자 한 차례 자살 시도를 한 뒤 자수했다. ‘데이트 폭력남’이었던 이 씨는 자신의 범행에 대해 “우발적 살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가해자 인권, 어디까지 보호될 수 있나
직접 만나본 선정 씨 유족들은 비단 가족을 잃은 슬픔에만 고통 받고 있는 게 아니었다. 가해자보다 오히려 홀대 받고 있는 피해자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말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역사회에서 겪고 있는 불편함이나 온라인 기사에 달리는 악성댓글은 유족들의 가슴을 두 번 세 번 무너뜨리고 있다.
가해자 이 씨는 ‘인권보호’라는 명분 안에서 오히려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 범인이 잡혔고 처벌을 받는다 해서 피해자들의 상처가 전부 아무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의 인권이 피해자의 인권을 앞서고 있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나오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 1999년 5월 대구 효목동 골목에서 황산테러를 당해 49일 만에 세상을 떠난 김태완(사망 당시 6세)군 사건의 경우엔 그나마 범인이 잡히지도 않았다. 2014년 7월 공소시효 15년에 도달한 이 사건은 2015년 용의자 A씨에 대한 ‘불기소 처분 부당 항고’마저 기각되면서 미제로 종결되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
1999년 5월 대구 효목동 골목에서 황산테러를 당해 49일 만에 세상을 떠난 김태완(사망 당시 6세)군 사건의 경우엔 그나마 범인이 잡히지도 않았다. 2014년 7월 공소시효 15년에 도달한 이 사건은 2015년 용의자 A씨에 대한 ‘불기소 처분 부당 항고’마저 기각되면서 미제로 종결되었다. 반발 여론이 일자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은 현재 25년인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기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지난 24일 국회통과 됐다.
사형제 ‘실질적’ 폐지, 공소시효도 폐지… 결과는?
대한민국은 1997년 12월 이후 단 한 건의 사형집행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나라다. 현실적으로는 사형제가 사라진 상태가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추진된 살인사건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는 한국 여론의 감수성이 ‘사형은 과할지 몰라도 벌은 반드시 줘야 한다’는 것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압도적인 여론에 가려져 있지만 공소시효 폐지의 부정적 측면을 조심스럽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구미제 사건이 늘어날 뿐’이라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2010~2014년간 공소시효가 만료된 살인사건은 연평균 3.2건이었다.
이 사건들이 이제는 수사기관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다른 사건에 집중할 여력이 부족해진다는 우려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하지만 적어도 ‘여전히 처벌 받을 여지가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두는 건 분노한 여론을 진정시키는 데에는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복수심은 바람직한 감정이 아니지만 묵살해버릴 감정도 아니다. 복수심은 이해되고 인정받고, 실제의 복수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소돼야 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어제까지의 세계”)
태완이법은 정의의 실현을 보고 싶어 하는 한국인들의 요구에 어디까지 호응할 수 있을까. 주사위는 던져졌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