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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노릇·갑질·경영진 면담"…사면초가 은행권

2023-11-03 13:47 | 류준현 기자 | jhryu@mediapen.com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은행권 이자장사에 대해 "은행의 종 노릇" "갑질" "독과점" 등 원색적인 비난을 표한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최근 원내 회의에서 "예금금리 경쟁이 대출금리 인상을 부추긴다"며 필요시 경영진을 면담하겠다고 압박했다. 

윤 대통령과 이 원장의 '원투 펀치'에 은행권에서는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은행을 '죄인'인 마냥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서울 마포 소재 한 북카페에서 열린 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우리나라 은행들은 갑질을 많이 한다"며 "강하게 밀어붙여 은행의 독과점 형태는 그냥 방치해선 절대 안된다"고 말했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김상문 기자



3일 은행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은행 때리기' 발언 이후 은행들은 한껏 격앙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서울 마포 소재 한 북카페에서 열린 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우리나라 은행들은 갑질을 많이 한다"며 "강하게 밀어붙여 은행의 독과점 형태는 그냥 방치해선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진국 은행들은 고객에 서비스를 잘 하고 다양한 대출 상품도 안내하는 등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는데, 우리나라 은행들은 일종의 독과점"이라며 "우리나라 은행의 이런 독과점 시스템을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자꾸 경쟁이 되게 만들고 이런 일이 없게 만들어야 된다"고 말했다.

또 "기업 대출에 비해 가계 대출이나 소상공인 대출이 더 부도율이 적고 대출 채권이 안정적이데, 도대체 이런 자세로 영업을 해가지고 되겠느냐"며 "강하게 우리가 밀어붙여야 된다. 은행의 독과점 행태는 정부가 그냥 방치해선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발언에 발맞춰 이 원장도 경고탄을 날렸다. 이 원장은 지난 2일 본원에서 열린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금융권의 수신경쟁 심화가 대출금리 추가 상승으로 이어져 소상공인·자영업자 이자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금융권 전반의 수신금리 추이 및 자금흐름 동향과 자산 증가율 등 과당경쟁 관련 지표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경영진 면담 등을 통해 건전한 경영을 유도하라"고 당부했다.

은행들은 지난해 9월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 신청' 사태로 채권시장이 경색되면서, 자금조달의 수단으로 고금리 특판예금을 쏟아냈다. 당시 판매한 예금들이 올 4분기 대거 만기를 맞이하는데, 은행들은 자금이탈을 막기 위해 다시금 예금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권의 예금금리 인상은 대출금리 인상을 부추길 수 있어 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5대 은행 독과점 논란, 엇갈리는 반응

대통령의 "갑질" "독과점" 발언에 대해서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실제 독점력을 행사하고 있는 은행들은 정해져 있기에 독점적이라고 봐야 한다"며 "(은행들이) 독점적인 행태를 상당히 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감독 당국에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그동안 역대 정권들의 요구에 발맞춰 영업했던 만큼 독과점 논란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예전부터 '국가 기간산업'으로 키웠고, 라이선스도 정부가 쥐고 있다. 독과점 체계를 만든 건 여야 할 것 없이 '정부' 아니었느냐"며 "IMF 위기 이후 신한의 조흥은행 인수, 하나의 외환은행 인수 모두 시장이 아닌 정부 주도로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은행들이 자유 경쟁해야 하는데 지금 은행업은 서민 경제와 직결된다는 이유로 여러 간섭을 많이 받고 있다"며 "정부가 적절하게 계속 개입을 했기 때문에 자유경쟁시장에서 나올 수 없는 대출금리가 산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기준금리(5.25~5.50%)보다 우리나라(3.50%) 금리가 낮은 것도 부적절한데, 주택담보대출 금리하단도 연 4%대에 불과한 까닭이다.

그러면서 "고객민원에 쩔쩔 매고 큰 소리도 못 내는 게 은행원인데, 독과점·갑질·종노릇 등의 발언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이기려는 감성적 발언"이라며 "횡포를 부린다는 마녀사냥식의 발언을 삼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지난 문재인 정부부터 코로나를 핑계로 부실 차주(대출자)까지 대출로 연명하게 해놓고 상환도 계속 연기하지 않았느냐"며 "부실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상황인데 갑질하고 종 노릇한다는 발언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금융노조도 윤 대통령의 발언에 작심 비판하고 나섰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지난 2일 성명서에서 "은행산업이 과점체제가 아니라 완전경쟁체제인 국가는 없다. 은행업에 대한 철저한 몰이해다"고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는 말은 '이자마진이 높다'는 주장으로 보이지만 역시 '은행 악마화' 선동에 불과하다"며 "한국의 전체 은행 자산 대비 5대 은행의 비중은 88%로 OECD 38개국 중 21번째로 낮은 수준이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의 순이자마진도 2021년 기준 1.6%로 OECD 38개국 중 18번째로 낮은 중위권 수준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통령으로서 고금리로 고통 받은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다"면서도 "소상공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조금이라도 도움 줄 의사가 있다면 대통령으로서 지역화폐 예산 증액 등 적극적 재정정책을 펴야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은행권, 상생금융 이어 '서민금융' 고려

정부의 강도 높은 비판에 은행권에서는 대출금리를 인하해주는 상생금융 대신 신용도가 낮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금융을 지원하는 서민금융을 강화할 방침이다. 

대표적으로 하나은행은 이날 30만 8500명의 개인사업자를 타깃으로 1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개인사업자 고객에게 △이자 캐시백(11만명, 약 665억원) △서민금융 공급 확대 △에너지생활비·통신비 및 경영 컨설팅 지원(19만명, 약 335억원) 등을 제공하는 게 주 내용이다.

하나은행의 행보에 발맞춰 타 시중은행도 직접적인 대출금리 인하 대신 비슷한 내용의 서민금융 지원책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은행 관계자는 "올해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인하해준 상생금융은 가계대출 증가를 부추긴 터라 오히려 억제하는 추세"라며 "(하나은행과 비슷한 내용의)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또 당국에서 은행권 공통으로 서민금융용 자금을 추가 조성하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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