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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원장 고전특강(77)-광복절에 다시 생각하는 ‘신(新) 조선책략’

2015-08-15 07:49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77) 열강 속 한국의 생존전략을 찾아라
황준헌(1848~1905)의 <조선책략>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 나라의 외교 전략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특히 주변 강국들에 둘러싸인 분단된 한반도의 경우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런 까닭에 한반도를 둘러싸고, 각국 사이에 국운을 건 치열한 외교전이 상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외교 전략을 점검해 보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는 국제 사회에서의 생존 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가는 한편, 한민족의 통일을 이룩해야 할 역사적 소명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美·日·中 사이에 낀 작금의 우리 현실이, 마치 19세기말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위기 속에서 주변국가의 눈치를 보면서 국가 존망을 고민해야 했던 조선왕조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19세기 조선의 상황은 암울했다. 1876년에 일본의 강압에 의해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된다.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한 발 앞선 일본은 자신들이 겪은 미국과의 굴욕적인 개항 조약의 경험을 조선에 똑같은 방식으로 강요했다.

무력을 앞세운 일본은 치외법권과 측량문제 등 불평등 항목을 조약에 담아 조선 침탈의 기반을 다졌다. 청나라는 일본에 의해 조선에 대한 종주권이 부인되자, 조선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을 견제해야 했다. 또 한편으론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막기 위해 부심했다.

<조선책략>은 이러한 어지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조선이 취해야 할 외교 전략의 일환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 조선의 외교 전략 교과서는 조선의 작품이 아니었다. 청나라의 일본주재 외교관이었던 참찬관 황준헌의 작품이다. 황준헌은 청국의 외교를 총괄하던 직례총독(直隸總督) 겸 북양 대신(北洋大臣) 리홍장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는 <조선책략>이 사실상 청국의 외교 전략의 일환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내가 보는 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라는 소책자를 지어 당시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던 김홍집에게 전달했다. <조선책략>은 청국이 조선에 주는 외교적 훈수이자 지침이었던 셈이다. 1880년의 일이다.

이 책에는 <조선책략> 뿐만 아니라, 김홍집과 주일 청국 공사인 하여장 및 참찬관 황준헌과의 필담이 실렸다. 이들의 필담에서 우리는 당시 조선 조정의 상황과 사대부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중국 외교관들이 <조선책략>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는지 그 정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들이 많다.

필담의 내용을 보면, 김홍집 등 조선의 사대부들이 외국의 사정에 얼마나 눈이 어두웠는지, 특히 만국공법과 통상과 세법 등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그리고 서구의 실체와 개국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하여장과 황준헌은 서양 각국이 통상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냉혹한 현실을 일깨워주면서, ‘세력균형’의 법칙에 따라 강국에 인접한 국가들이 연합하여 견제책을 강구하는 것이 외교의 통상적 방법임을 강조한다. 또한 만국과 더불어 통상교섭을 할 때, 관세 정책을 통해 수출과 수입을 적절히 규제함으로써 국익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훈수를 둔다. 이에 대해 김홍집은 “경학(經學)을 고수하는 것을 정도(正道)로” 여기는 조선 조야의 기풍을 언급하면서, 통상의 문호를 열지 못하고 있는 조선의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청국의 외교관들은 당시 세계정세와 외교 및 통상의 원리에 대해, 김홍집 등 조선의 고위 관리들에 비해 비교적 높은 안목과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핵심 관심사는 당연히 청국의 국익이었다. 필담의 곳곳에서 이들은 러시아가 중국과 조선을 압박하는 사단을 일으킬지 않을까 우려를 표명하면서, 러시아 견제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조선이 미국과 외교관계를 맺어 견제하는 것이 치국의 방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도 청국의 국익이 숨겨져 있었다.

이러한 청국의 외교적 전략이 보다 구체적으로 담긴 게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이다. 형식상으로는 ‘사의(私擬)’라는 두 글자가 붙어 황준헌 개인의 의견인 것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청조의 전통적 외교 전략인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을 품고 있다. 황준헌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조선이 취해야 할 외교 전략으로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협약을 맺으며, 미국과 연대함으로써 ‘자강(自强)’을 도모하는 길”을 제시했다.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親中國, 結日本, 聯美國)’의 9자 전략이다.

한마디로 朝·中·日·美 4개국이 연대하여 러시아에 대항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전략이 오로지 조선의 국익을 걱정해서 나온 책략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청국으로서는 연해주를 이미 러시아에 빼앗겼고, 만주마저 넘보는 러시아에 대한 위협이 높아가던 상황에서, 더 이상 러시아가 남진하지 못하도록 저지하기 위한 세력균형을 위한 전략의 의미가 더 강했다.

이런 배경에서 청국은 조선이 미국과 수교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고한 것이다. 황준헌은 미국이 동서양을 휩쓸 만한 대국임에도 약소국을 돕고 공의(公義)를 지키는 나라인 만큼, 조선이 미국을 끌어들여 우방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설득했다. 나아가 미국과의 수교를 계기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와도 조약을 맺어 서로 견제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통해 서구 국가 간의 세력균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당시 서구 열강들의 통상을 위한 문호 개방 요구에 시달리던 조선으로서는 새겨들을 만한 점이 분명히 있었다. 특히 부국강병책으로 공업 등 산업의 진흥과 통상을 강조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황준헌이 조선과 일본이 연대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한 대목은 석연치 않다. 황준헌은 당시 일본이 이미 다른 나라를 도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하면서 조선에 대한 친화와 우호의 의지가 의심할 바가 없다고 변호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이 장기적으로 한반도를 독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전혀 노출하지 않았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는 당시만 해도 청국이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크지 않았던 점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청국이 일본의 조선 침략의 야욕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청국의 외교관들은 14년 후인 1894년에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청일전쟁으로 일본과 일전을 벌일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셈이 아닌가?

<조선책략>이 제시하는 외교 전략은 당시 조선의 국익에 딱 들어맞는 전략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외교의 지평을 넓혀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도모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일본의 한반도 침투 전략을 간파하지 못한 ‘결일본’의 권고는 일본에 대한 조선 조야의 경계심을 완화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왔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책략에서 제시된 전략의 실행은 당시까지 조선과 특별한 악연이 없었던 러시아에 대한 대항 전선에 조선이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조선이 중국과 일본의 한반도 독점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활용될 수도 있었던 러시아와의 연대 가능성을 상실시키는 카드이기도 했다.

이러한 <조선책략>이 조선 조야에 알려지자, 조선의 개화파 등 집권 관리들의 우호적 분위기와는 달리, 쇄국 보수의 척사론(斥邪論)에 젖은 유림(儒林) 측의 맹렬한 반대 상소가 빗발쳤다. 특히 1881년 영남 유생 이만손(李晩孫) 등은 고종에게 만인소(萬人疏)를 올려 ‘조선책략’의 부당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러시아, 미국, 일본 모두 같은 오랑캐라며 이들과의 교역으로 우리 재산을 빼앗기거나, 강토의 잠식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여기에는 서구와의 수교를 통해 밀려들 기독교에 대한 반감도 강하게 작용했다.

<조선책략>은 청나라의 알선으로 1882년 조·미수호조약을 체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한편으론 조선 조야에 개화와 척사 세력 간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그로 인해 조선의 외교 전략은 뚜렷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그 때 그 때의 정치적 사변과 시류에 따라 친청, 친일, 친러 정책으로 표류했다. 조선이 1884년에 청국이 막아내려 부심하던 러시아와 조․러통상조약을 맺게 된 것도 이런 상황을 짐작하게 해준다.

자국의 국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외교 연대 전략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자주적 국방력과 경제력을 갖추지 못했던 조선이 취할 수 있는 외교적 선택의 폭은 협소했을 것이다. <조선책략>을 받아 온 김홍집 자신도 친일과 친러를 반복하다 죽임을 당했다. 이 또한 주변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슬픈 운명의 한 단면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조선책략>을 손에 쥐고 좌고우면하던 19세기 조선 사대부에게서 어떤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인가. 작금의 현실도 19세기의 암담했던 상황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력은 비약적으로 신장되었지만, 주변국의 상대적 국력 역시 여전히 압도적이다. 더구나 19세기와 달리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주변 4강의 이해관계가 더 큰 변수로 작용하는 의존적 상황으로 고착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조중 동맹에 맞선 한미 동맹을 외교 전략의 기본 토대로 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는 밀월관계,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패권 경쟁 속의 협력관계, 중국과 일본은 영토분쟁 등으로 협력 속의 갈등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또 당시 청국은 조선에게 미국과 연대하라고 권고했었지만, 오늘날 미국은 한국의 가장 강력한 우방이 되어 있다.

19세기에 황준헌은 중국의 입장에서 朝·中·日·美의 연대의 우선순위를 두었다. 하지만 분단과 전쟁을 겪은 21세기의 한반도의 현실은 오랫동안 韓·美·日·中의 우선순위로 고착되었다. 게다가 러시아까지 가세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그 연대의 강도와 순위에 변동 내지 균열의 조짐이 보인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우경화, 미국의 아시아 회귀로 한국과 주변국의 연대의 우선순위는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와중에 우리의 외교적 스탠스는 북한을 매개변수로 시시각각 미묘하게 변하는 불안정한 변동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신조선책략’의 모색이 쉽지 않는 이유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우리의 당면과제는 분명하다. <조선책략>과 같이 타국의 이해와 관점에서 나온 전략이 아니라, 이제 우리 자신의 국익에 기초하여 주체적으로 성취해 나갈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점이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 추천도서: 『조선책략』, 황준헌 지음, 김승일 편역, 범우사(2011),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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