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怪談)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남들이 모두 YES라고 말할 때 홀로 NO를 말하는 사람들은 으레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선 정의의 사도들이다. 괴담은 현실 속의 우리로 하여금 바로 그런 ‘용기 있는 반대자’가 된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모든 괴담과 음모론이 언제나 맞는 건 당연히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실은 문학작품과 달라서 음모론이 늘 들어맞는 구조로 진행되지 않는다. 특히 21세기 대한민국과 같이 거의 모든 정보가 개방되고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상황에서 모든 정보를 장악한 빅 브라더가 대중들을 우롱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대한민국은 음모론의 수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북한과 관련된 대형사건이 터졌을 때 교묘하게 북한을 면책해 주는 음모론이 횡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 음모론과 괴담에 속절없이 휘청거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이는 음모론이 원래 가지고 있는 묘한 매력과 맞물려 한국 사회로 하여금 값비싼 비용을 치르도록 만들고 있다.
▲ 괴담을 확실하게 퇴치하는 경험을 꾸준히 쌓아나가지 못한다면, 괴담소설과 현실을 합리적으로 구분해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속절없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
대표적인 인물이 통합진보당 전 대표를 지낸 이정희 전 의원의 남편인 심재환 변호사다. 그는 아직도 김현희에 대해 ‘가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지자 김현희가 직접 TV에 나와 “내가 테러를 저질렀다”고 고백하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김현희는 시작일 뿐이었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 또한 오랫동안 기승을 부리며 국민들을 괴롭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괴담은 또 어땠나. 이제 괴담론자, 음모론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핫이슈가 되는 모든 소재에 대해 마수를 뻗치고 있다. 특히 북한이 관련된 이슈에서 이와 같은 움직임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목함지뢰에 대한 괴담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논리는 판에 박은 듯 똑같다. 지난 4일 발생한 지뢰폭발사고는 북한의 소행이 아니며 우리 정부가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SNS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고 있으며 괴담을 현실로 믿는 사람들도 상당수 생겨나고 있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지자 군 또한 대응에 나섰다. 국방부가 폭발영상을 공개한 것이 비근한 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북한이 괴담론에 편승했다. 14일 북한은 목함지뢰가 자신들 소행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며 국방부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급기야 “북한의 주장이 우리 정부 주장보다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는 일부 네티즌들의 주장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군 수색대원 2명을 크게 다치게 한 이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간 천안함 때의 길고 지루한 논쟁을 반복해야 할 판이다. 천안함 폭침이 북의 소행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해 정부는 각국 전문가들을 한국으로 불러 합동조사단을 꾸렸고, 긴 시간에 걸쳐 정밀조사를 실시했으며 그 결과 또한 만천하에 공개를 했다. 그랬는데도 음모론자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닐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괴담의 마력이란 그토록 강력한 것이다.
목함지뢰 사건이 이 전철을 밟도록 둬선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정부의 발 빠른 대응과 언론의 합리적인 취재다. 정부로서는 일단 할 수 있는 대응을 재빠르게 진행하며 괴담 진화에 나서고 있다. 아마도 근래 몇 년 간 고생한 경험이 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언론이다. 현재 대한민국 언론에게 괴담과 음모론은 퇴치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흥행을 위한 좋은 ‘기회’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북한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주장을 마구 옮겨대며 국민들을 혼란의 수렁 속으로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정부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괴담은 잡힐 수가 없다. 언론의 자정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괴담을 확실하게 퇴치하는 경험을 꾸준히 쌓아나가지 못한다면, 괴담소설과 현실을 합리적으로 구분해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속절없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미디어펜=이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