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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융성, 문화를 '재배'하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2015-08-18 13:32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남정욱 교수
‘제국’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군사력이다. 얕볼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존재만으로도 위협적이어야 한다. 다음은 경제력이다. 교역에서 수많은 나라들을 감당해야 한다. 돈이 흐르는 전로(錢路)가 사방으로 뚫려 있어야 한다. 마지막이 문화력이다. 그 나라가 문화가 미치도록 좋고 심지어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을 정도여야 한다. 앞의 두 개가 충족되더라도 문화가 받쳐주지 않으면 ‘제국’에서 탈락이다(이 기준은 상당히 유용한데 가령 향후 중국은 제국이 될 수 있을까 같은 문제를 따져볼 때도 활용가능하다).

반대로 앞의 둘은 부실하더라도 문화가 튼튼하면 얼마든지 강국이나 제국이 될 수 있다. 문화 영토라는 말은 그래서 가능하다. 어떤 지역 사람들이 타국의 문화를 거부감 없이 수용하고 즐긴다면 그게 문화 영토다. 메이저 음반사인 SM이 ‘타운’을 내걸고 JYP가 ‘네이션’을 뒤에 붙인 것은 문화 영토에 대한 솔직한 욕심이다. 실제로 SM의 이수만은 미래에는 누구나 두 개의 시민권을 갖고 태어나는데 하나는 아날로그적인 출생국의 시민권이고 다른 하나는 버추얼 네이션이라는 가상 국가의 시민권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화는 문화 그 이상이다.

우리 민족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면 책 열심히 읽고 사색을 즐겼다는 얘기는 하나도 안 나온다. 대부분 먹고 놀기를 즐겼다는 기록뿐이다. 그렇다. 우리는 철학 민족이 아니라 유흥 민족이다. 시대가 바뀌면 가치가 달라진다. 전 세계가 산업화로 매진하던 시기에 식도락과 유흥은 절제와 경계의 처지였다. 지금은 아니다. 식도락과 유흥이 미덕인 세상이 되었다.

현재 한국은 전 세계에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의 나라이고 케이팝의 나라다. 매운 라면의 나라이고 드라마와 영화의 강국이다. 뭐가 하나 좋아지면 덩달아 다른 것까지 예뻐 보이는 게 문화의 특징이다. 그 나라 말이 좋아진다. 그 나라 옷이 좋아진다. 그 나라 제품이 좋아진다. 최종적으로는 그 나라 사람들이 좋아진다.

   
▲ 지난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0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에서 축하 공연이 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게 문화의 힘이고 문화가 산업과 결합되는 지점이자 주력해야 하는 이유다. 해서 대통령이 문화 융성을 기치로 내 건 것은 바람직을 넘어 국가 경영의 어젠다 설정이라는 축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물론 계획과 결과는 동일하지 않다. 가끔 그냥 내버려 두면 좋은 결과가 나올 일이 계획 때문에 틀어지기도 한다. ‘자생적 질서’라는 것은 시장경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계획이 등장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 열기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혹시 사그라지거나 외면당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별 생각 없이 던지는, 한류의 수명이 얼마 안 남았네, 끝이 보이네, 따위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그럴 필요 전혀 없다. 진입 장벽은 의외로 높고 견고하다. 동남아 각국에 우리나라 초기 걸 그룹형태의 가수들이 등장했지만 이들이 소녀시대를 티아라를 따라오려면 한참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비슷하게 흉내 냈더라도 모방 시비에 내내 시달리게 된다. 이니시어티브가 이미 우리에게 있다는 말이다. 초조할 이유 하나도 없다. 그대로 하던 대로 하면 된다.

문화 융성을 위한 배려와 지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외부용, 다른 하나는 내부용이다. 외부용은 기존의 것을 유지하면서 확대하는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지명은 ‘강남’과 ‘홍대’다(심지어 홍대라는 제목의 곡을 발표한 외국 밴드도 있다). 접목시키고 싶은 게 있으면 여기다 해야 한다. 다른 데 아무리 시설을 잘해 놓아도 절대 찾지 않는다. ‘강남’과 ‘홍대’는 외국인들의 마음속에 포지셔닝된 ‘그들의 한국’이다. 마음을 바꾸는 것은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렵다.

원래 예술가들이 모여 사람들이 몰리면 그 지역의 경제가 살고 임대료가 오르면서 예술가들은 인접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문화 거리의 생성방식이다. 알다시피 홍대는 합정동과 상수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바로 이런 쪽이다. 공간과 기회를 제공하고 교통의 편리를 반드시 지원해야 한다. 인간의 역사가 지리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처럼 도시는 사람들의 동선(動線)을 넘어서서는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밖으로 송출하는 문화만 신경 쓰고 정작 자국민의 문화가 가난한 것은 조화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문화 저해의 요인이 된다.

무엇보다 초중고에 예술교육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음악, 미술, 영화, 연극, 무용 등을 전공한 학생들은 극히 일부만 해당 현업이 편입되고 나머지는 사장된다. 이유는 그 학과에서 예술교육을 전문적으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재능이 예술적인 창작을 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학생들은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게 그 바닥 풍토다. 그 두려움에는 향후 펼쳐질 경제적 빈곤까지 포함된다. 그 인력들이 초중고에 배치되면 전공자와 학생들에게 나쁠 게 하나도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추진계획에 이 부분이 제대로 적혀있어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문화를 발흥시키는 방법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을 운용한 방식은 경쟁이었다. 성과 좋은 마을에 시멘트 한 포라도 더 주었다. 대학로에 가야면 연극을 볼 수 있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자기들은 천당 밑에 분당이라고 하지만 분당의 문화, 예술 수준은 참혹하다. 아프리카 난민 수준이다.

성남아트센터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성남아트센터는 중앙공원이나 율동공원 옆에 지었어야 했다. 그래야 공원에 놀러왔다가 미술과도 가고 연극 무대도 찾는다. 성남아트센터를 볼 때마다 포템킨 빌리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생기고 활성화되면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지역에서도 팔 걷어 부치고 나서게 된다.
 
‘에너지’보다 ‘너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문화 융성에 주력했더니 좌파 예술만 발흥하면 어쩔 거냐는 우려도 있다. 좌파 예술의 반대말은 우파 예술이 아니라 고급 예술이다. 영화 ‘프리티 우먼’의 줄리아 로버츠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오페라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기억하시는가. 고급문화의 힘이라는 건 그런 거다. 길어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남정욱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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