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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협상 타결, 우리가 썩 잘한게 아니라 북한이 자멸했다

2015-08-25 15:08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조우석 문화평론가

19년 전인 1996년 말 강릉 잠수함 사건을 기억하실 것이다. 잠수함을 탄 26명의 인민무력부 소속 무장공비들이 내륙으로 침투해 두 달 가깝게 아군과 교전을 벌였을 때 한국은 전군 경계령을 선포했다. 그런 군사충돌 꼭 1년 뒤에 대통령선거가 벌어졌는데,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당시 한국민은 김대중을 당선시켰다. 경제위기란 요인도 컸지만, 남북관계 악화란 요소도 무시 못했다. 영화 ‘연평해전’의 소재가 됐던 제2차 연평해전이 벌어진 2002년, 그 사건 몇 달 뒤 대선에서 한국민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다시 뽑았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자명하다.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경우 물러터진 정부당국은 허둥대고, 안보를 우습게 보는 좌익이 평화 지상주의를 귓전에 속삭인다. 전쟁공포증의 확산 속에 국민의 선택은 뜻밖에도 좌파정권 쪽이다. 북한과 사이좋은 그들을 뽑아주면, 극한대결이란 상황은 좀 막아주겠거니 하는 어설픈 패배주의적 집단정서가 그때 막 형성됐다.

이 고약한 공식을 요즘 북한이 너끈히 꿰고 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직후 지방선거가 어떻게 나타났던가? 여당이 참패를 했다. 그래서 저들은 8개월 뒤 연평도 포격을 감행했다. 한 번 더 한국사회를 흔들어놓으면 2012년 대선에서 좌파정권 탄생을 볼 수 있다고 잔머리를 굴렸던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오후 경기도 용인의 3군 사령부를 방문, 우리 군의 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김정은의 북한을 상대로 한 업어치기 한판승

하지만 세상은 공식대로만 전개되는 게 아닌데, 당시 대한민국의 선택은 박근혜 정부였다. 그리고 3년 뒤 오늘 이 정부가 평양 김정은에게 제대로 본때를 보여줬다. 그게 25일 새벽 극적으로 타결된 남북공동발표문의 포괄적인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뢰와 포격 도발을 감행해온 저들을 상대해 업어치기 한판승을 거둬낸 것은 물론 종래 남북간 협상의 틀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는 점에서 이번 남북 고위급 협상은 의미가 크다. ‘업어치기 한판승’이란 표현은 결코 과한 게 아니다. 공동발표문에 지뢰 폭발 유감 유감을 명기한 것은 사과 표명과 진배없다.

유감은 이해관계 없는 제3자가 남의 불행에 걱정이 된다고 하는 인사치례이고, 때문에 자기 잘못에 대한 반성을 뜻하는 사과에는 미흡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도발 주체인 북한이 주어(主語)로 된 유감 표명이란 현실적으로 지금 뽑아낼 수 있는 큰 소득이 분명하다.

당초 우리가 요구했던 재발방지가 명시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쉬움이 왜 없겠느냐만,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말대로 제3항의 “비정상적인 사태”란 표현에 많은 게 함축됐다. 때문에 이번 타결은 100%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이만하면 종래의 남북관계 패턴을 바꿔놓은 완승(完勝)에 가깝다.

무엇보다 남남갈등과 종북세력의 북한 비호 등의 악순환의 연결고리까지 이번엔 거의 없었다. ‘미디어오늘’과, 성남 시장 이재명 등 좌파매체와 좌파 정치인 몇몇이 음모론을 제기했지만, 거의 맥을 못 췄다. 거꾸로 신(新)애국세대의 분발이 감격스러웠다.

자발적인 전역(轉役) 연기 신청의 물결, 그리고 2030 예비군들이 “나라를 지킬 것”,“명령 대기중. 충성! ”이란 SNS 글을 줄줄이 올리는 것은 전에 없던 변화다. 북한 도발 이후 물러터진 정부 대응, 좌익들의 평화지상주의 유포, 전쟁공포증 확산이란 패턴을 송두리째 끊어버린 것이다.

이런 게 가능했던 배경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박근혜 정부의 리더십이다. 위기 국면 며칠 동안 대북 초강수의 배짱을 보여주면서 이 정부는 위상을 충분히 끌어올렸다. 그 하이라이트는 21일 군복 차림으로 3군사령부를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다.

“정치적 고려 없이 대응하라”로 밝힌 직후 분위기는 우리 쪽으로 거의 넘어왔다. 일촉즉발 위기 국면에서 승기를 쥐었던 박 대통령은 2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다시 한 번 결기를 보여줬다. 그게 공동발표문을 이끌어낸 힘이고, 이번 국가적 위기 국면을 효과적으로 관리했던 핵심요인이다.

바라건대 이런 흐름이 국내정치로 이어지는 효과에 대한 기대를 품는다. 4대 개혁을 포함해 국정동력을 크게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두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첫째 이번의 완승은 우리가 정말 잘해서라기보다는 북한의 자멸에 힘입은 것이다.

   
▲ 일촉즉발의 최고조 위기 상황에서 진행되던 남북 최고위접촉이 25일 새벽 '무박 4일' 마라톤 협상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끝이 났다. 북한의 유감 표명을 포함한 남북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뚝심'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브레인'이 환상의 콤비를 이룬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사진=통일부 제공
완벽한 자유통일을 위해 남은 건 인내와 노력뿐

그걸 잘 복기해봐야 하는데, 저들은 먼저 대화를 제의했다. 유례가 드문 일인데, 대한민국 국호도 사용했고, 회담장소도 우리의 제안을 순순히 따랐다. 그게 우연만은 아니다. ‘김정은의 평양’은 그의 애비가 통치하던 ‘김정일의 북한’과 또 달라졌고, 엄청 취약해졌다는 걸 보여주는 명백한 징후다.

즉 지금의 북한은 전면전(全面戰)을 감당할 능력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지금의 동원태세를 지탱할 국력조차 없다. 현재의 준전시 동원 상태가 오래 지속될 경우 북측은 스스로 내부 붕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좀더 압박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은 그 때문이지만, 어쨌거나 ‘완승 그 이후’의 효율적인 상황 관리가 중요한 시점이다.

유념해야 할 점 두 번째가 이 사안이다. 즉 공동발표문 제6항에 명시한 민간교류 활성화가 문제인데, 유화적 국면에 들어간 직후 국내 여론도 자칫 무분별한 교류와 퍼주기에 무원칙한 찬성을 할 수 있고, 종북세력이 발호할 것도 내심 우려된다.

걱정은 이게 5.24조치 해제 요구로 작용해선 결코 안된다는 점이다. 그건 자칫 죽어가는 북한정권에 또 한 번의 햇볕정책으로 이어질까 걱정이다. 섣부르게 우리의 승리를 자축하는 샴페인을 터트리기 전에 기억할 점은 저들의 절박한 상황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라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 1951년 개성 봉래장에서 정전회담을 이끌며 공산주의자들의 협상수법을 충분히 파악했던 유엔군 측 수석대표 터너 조이 제독의 말을 떠올려야 한다.

“적이 정전(이나 협상)을 청할 때 압박을 늦추지 말라. 외려 압박을 증가시켜라. 공산주의자들이 알아듣는 논리는 오직 힘뿐이다.” “오직 협상이 자유에 공헌할 수 있을 때만 협상장에 들어가라. 적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협상을 해선 안 된다.”

남북고위급회담은 일단 종결됐지만, 한반도의 큰 게임은 지금부터다. 완벽한 자유통일, 그리고 우남 이승만 박사가 내걸었던 빛나는 구호인 승공통일을 위한 위대한 여정의 남북간 빅게임은 지금 이 순간부터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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