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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파리올림픽 반전드라마 쓴 안세영, '해피엔딩'은 어른들 몫

2024-08-19 06:48 | 석명 부국장 | yoonbbada@hanmail.net

석명 연에스포츠팀장

[미디어펜=석명 연예스포츠팀장] 2024 파리올림픽이 끝났다. 인상적인 순간들이 많았던 올림픽이었다. 그 중에서도 현재 배드민턴 여자 세계 최고 선수 안세영이 반전드라마를 썼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파리올림픽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최소규모 선수단이 출전해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대회였는데, 성과는 놀라웠다.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로 총 32개의 메달을 획득해 종합 8위의 성적을 내고 돌아왔다. 대회 전만 해도 금메달 5개, 종합 순위 15위 정도를 예상했으니 목표를 한참 초과 달성했다.

13개의 값진 금메달 가운데 하나를 안세영이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따냈다. 안세영은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계랭킹 1위에 걸맞게 무난하게 우승했다. 부상까지 당하며 악전고투 끝에 금메달을 땄던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보다는 오히려 파리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 더 쉬워 보이기까지 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방수현 이후 28년 만에 나온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 그런데 감동을 넘어서는 반전은 따로 있었다. 금메달 획득 직후 안세영이 '작심 발언'을 한 것이 파리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최고의 반전드라마였다.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을 따낸 안세영이 배드민턴협회와 대표팀에 대한 '작심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이 됐다. /사진=대한배드민턴협회 홈페이지



안세영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부상 당한 이후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대한배드민턴협회, 대표팀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고 토로하며 가슴에 담아뒀던 말로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점을 직격했다. 대표팀과 계속 함께하기 힘들다며 대표팀 은퇴를 시사하는 발언까지 했다.

이후 안세영이 공식 기자회견이나 매체 인터뷰, SNS 게시글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그가 주장하는 불합리했던 점들은 대체로 배드민턴협회와 대표팀의 선수 관리 미흡, 구시대적 훈련 방식과 소통 부족, 개인 스폰서 제약과 선수들의 낮은 보수 문제 등으로 요약된다.

안세영의 작심발언이 불러일으킨 논란과 파장은 엄청났다. 배드민턴 협회와 대표팀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계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우선, 스포츠 팬들의 여론이 좋을 리 없었다. 피 땀 눈물 흘려가며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금메달을 딴 안세영을 협회와 대표팀에서 얼마나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부당한 대우를 했기에 이런 작심발언을 했겠느냐며 대한배드민턴협회를 향한 비판과 비난이 들끓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안세영 논란과 관련해 진상 조사에 나섰다. 그동안 배드민턴협회 및 대표팀의 운영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코너로 몰린 배드민턴협회는 안세영이 올림픽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당일 안세영의 주장들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10쪽짜리 방대한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또한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내부 점검을 하고, 안세영과 만나 대화도 나눌 예정이다.

안세영 작심 발언 논란을 지켜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안세영이 금메달을 따고 귀국했을 당시 '작심 발언'과 관련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더팩트 제공


안세영은 선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생의 목표였을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고도 그 기쁨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한 선수들은 다양한 환영을 받고, 방송 출연을 해 소감을 밝히고 올림픽 당시 감동을 전하고 있다. 몇몇 메달리스트들은 다수의 광고 모델 출연 제의를 받기도 했다.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은 이런 축제 분위기에서 홀로 예외다. 안세영은 문체부와 체육회의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협회 및 대표팀과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자기가 특출난 선수라는 점을 앞세워 특혜를 요구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올림픽 출전과 금메달 획득의 감동을 전할 기회 대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SNS에 올리느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작심 발언 이후 대외 활동이나 매체 접촉을 자제하고 있는 안세영은 두 차례 개인 SNS를 통해 심경과 하고 싶은 말을 전한 바 있다. 자신의 발언으로 논란이 커지기 시작했던 당일 밤 짧게 심경글을 올렸고, 문체부와 체육회의 조사가 시작된 후인 지난 16일 장문의 입장문을 올렸다.

안세영이 주장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누구와 싸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 불합리한 점들이 '관습'이라는 이름 하에 계속되고 있는 것은 문제이며, 잘못된 제도와 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 △ 원활한 소통을 위해 선수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면 좋겠다.

안세영이 작심 발언으로 쏘아올린 공이 워낙 크고 무겁기에 흐지부지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 대한민국 체육계를 총괄하는 체육회와 정부 부처인 문체부까지 진상 조사에 나섰다. 스포츠 팬들은 매서운 눈으로 어떻게 결론이 나며 무엇이 바뀔 것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관계자들이나 관련 기관에서 이번 논란에 대해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잘 살피고, 문제점이 있다면 해결책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꼭 그렇게 돼야 한다. 안세영이 금메달의 기쁨과 영광을 누릴 자격을 내려놓고 작심 발언을 한 이유를 헤아려야 하기 때문이다.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확정짓는 순간 안세영이 포효하고 있다. /사진=대한배드민턴협회 홈페이지



안세영은 첫 번째 SNS 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제가 하고픈 이야기들에 대해 한번은 고민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봅니다."

안세영은 '어른'의 도움을 간절히 바랐다. 어른은 많다. 문체부에도, 체육회에도, 배드민턴 협회에도, 대표팀에도, 언론에도, 팬들에도 어른은 있다. 도움 요청을 받은 '어른들'은 마땅히 도움을 줘야 할 것이다.

안세영은 장문의 입장문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앞으로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고 자칫하면 배드민턴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무섭게 밀려듭니다."

배드민턴 하나만 보고 달려온 안세영이다. 문제 제기 방식이 성급하고 서투는 점이 있다고 해서, 문제 자체를 없다고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이 낳은 '배드민턴 여제'가 22살의 나이에 라켓을 놓는 상황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어른들'이 더욱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안세영이 '7년간의 분노'로 쓴 반전드라마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지, 이제 어른들의 몫이 됐다.

[미디어펜=석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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