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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트렁크 시신’ 김일곤, 1급 아닌 2급 살인범죄?

2015-09-21 15:5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성시완 범죄심리학자·범죄학 박사
김일곤. 그는 지난 9일 오후 충남 아산에 있는 대형 마트 지하 주차장에서 주모 여성을 흉기로 위협한 뒤 살해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범행흔적을 없애기 위해 시신을 훼손하고 차량을 방화하는 등 그 수법이 잔인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을 때만 해도 김일곤의 죄명은 강도살인. 당시 경찰이 파악한 혐의는 차량을 빼앗기 위해 강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주씨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장 발부 이후 여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김일곤은 올해 5월경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K씨와 시비가 붙어 쌍방폭행 혐의로 벌금 50만원을 받게 되었다. 김일곤은 지난달 초까지 7차례에 걸쳐 K씨의 집과 근무처를 찾아가 벌금 대납을 강요하는 등 K씨를 수차례 위협하기도 했다고 한다.

전과 22범의 김일곤은 이 사건으로 자신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판사와 형사, 간호사, 식당주인 등 28명의 살생부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이들 모두를 살해하겠다는 의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쌍방폭행의 당사자인 K씨를 살해하기 위한 준비를 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해 수사가 집중되고 있다. K씨 역시 살생부에 기재된 사람이었다.

현재까지 경찰조사에 따르면, 김일곤은 납치한 주씨를 이용하여 노래방 도우미인 척 가장해 노래방에서 일하는 K씨를 유인하려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K씨에 대한 살해 준비과정에서 주씨를 납치하였으나 반항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계획에 없던 살인범죄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까지 정리된 혐의에 적용가능한 죄명은 주모씨에 대한 강도살인죄와 K씨에 대한 살인예비죄.

형법은 범죄자에 대한 형량을 함에 있어 ①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② 피해자에 대한 관계, ③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④ 범행 후의 정황 등을 고려할 것을 명하고 있다. 살인죄에 대해 형사사법 실무는 범행 동기 조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범행의 동기가 없는 살인죄가 있을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도 하다. 범행의 동기가 희박한 우발적 살인이거나 사이코패스적 살인사건의 경우도 수사의 출발은 동기조사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김일곤 사건은 주씨 살인사건에 한해서만 본다면 동기 파악이 그리 쉽지 않다. 결국 찾아낸 것이 K씨를 살해하기 위한 도구로서 주씨를 납치하였으나 피해자 저항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살해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는 것. 김일곤은 “애초에 납치한 여성을 살해할 의도는 없었으나 계속 반항하고 차 안에서 창문을 두드리거나 살려달라고 소리쳐 목을 졸라 죽였다”고 주씨 살해 동기를 진술했다. 주씨 살인 사건과 관련한 동기 수사는 쉽지 않아 보인다.

   
▲ 1급 살인은 치밀한 의도를 가진 악의적 살인이라고 규정된다. 2급 살인은 의도적인 타인 살해를 특징으로 하지만 1급 살인과 같은 악의성, 계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김일곤 강도살인 사건은 어떨까. 2급 살인의 범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김일곤의 범행과정의 심리상태가 그랬다는 것일 뿐 범행의 수법 결과, 범행 후 정황을 볼 때 엄중 처벌은 불가피하다./사진=KBS 캡쳐
김일곤 살인사건 처리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범죄심리학적 접근도 있으니 참고 바란다.

첫 번째, 김일곤이 보여준 공격성의 근원은 어디인가.

김일곤의 종국적인 목표는 K씨를 만나 보복하거나 살해하는 것이었다. 주씨는 차량을 제공받고 K씨를 유인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였다. 처음부터 주씨를 살해하기 위한 의도는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예일대 교수 달라드(Dollard)는 ‘공격성은 항상 좌절의 결과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좌절하고 방해받거나 위협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들에게 공격성은 좌절 상황에 대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또는 거의 자동적인 즉자적 반응이라고 분석한다. 소위 “좌절-공격 가설”이라고 불리는 주장이다.

또 김일곤의 공격성을 분석하기에 적합한 이론으로 “대리적 공격이론”이 있다. 범죄심리학자 부시만(Bushman)의 연구에 따르면, ‘공격성은 공격의 표적 목표가 결백하고 무죄이지만 잘못된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 너무나 단순하게 대신 이뤄진다’고 한다. 예를 들기를, 핍박하는 직장 상사와 같은 분노의 원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 못하지만, 애완동물과 같이 전혀 화를 내지 못하는 천진난만한 대상에 대해서는 공격성의 제약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고 한다.

김일곤이 주씨를 납치하여 다른 살인범죄를 준비하다 이뤄진 강도살인 범죄는 위와 같은 “좌절-공격 가설”과 “대리적 공격이론”을 통해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K씨와 사이에 발생한 쌍방폭행사건, 그리고 연이은 형사처벌이라는 좌절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범죄도구로서 납치한 주씨. 그리고 김일곤이라는 악마의 돌발적 공격성 앞에 한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두 번째, 김일곤 사건은 치밀한 계획하에 이뤄진 1급 살인이라 볼 수 있는가. 아니면 미국식의 2급 살인범죄에 해당하는가.

김일곤은 최종적인 범죄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돌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고 이를 모면하기 위해, 또는 순간 우발적으로 한 사람을 살해하게 된다. 사전 계획하에 치밀하게 이뤄지는 살인범죄 만큼이나 충동적 살인범죄 역시 빈번하게 발생한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살인죄를 1급 살인과 2급 살인으로 구별하여 취급하고 있다. 1급 살인은 특히 치밀한 의도를 가진 악의적 살인이라고 규정된다. 2급 살인은 의도적인 타인 살해를 특징으로 하지만 1급 살인과 같은 악의성, 계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매우 난폭한 성행위 중에 여성을 목졸라 죽이는 남성의 경우, 그 사람은 특정한 상황에서 흥분한 끝에 자아통제력을 상실하여 살인죄를 범한 것이라 보고 2급 살인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지극히 미국적 법제도하에서 통용되는 것이라는 말씀.

김일곤 강도살인 사건은 어떨까. 2급 살인의 범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김일곤의 양형에 참작할 감경사유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범행과정의 심리상태가 그랬다는 것일 뿐 범행의 수법 결과, 범행 후 정황을 볼 때 엄중 처벌은 불가피하다. /성시완 범죄심리학자·범죄학 박사·죄와벌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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