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박철희 주일 한국대사는 25일 “80여년 전 사도광산에 강제로 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지쳐 스러져간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영령에 머리숙여 깊은 애도를 표한다. 삼가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우리정부는 이날 오전 일본을 방문한 사도광산 피해 노동자 유가족 9명과 함께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였던 ‘제4상애료’ 터에서 별도의 추도식을 열었다. 이는 전날 일본측의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가 연 행사와 별개로 열렸다.
당초 일본측 행사에 참석하려던 우리정부는 일본 중앙정부 대표자 교체 및 추모와 반성을 담은 추도사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24일 행사에 불참한다고 통보했다. 세차례씩 연기된 추도식 준비 과정에서 여러모로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던 일본측이 추도사를 맡을 중앙정부 대표로 2022년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전력이 있는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을 선정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우리 자체 추도 행사를 열기로 한 것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측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우리정부의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라면서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한일 양국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해나가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한국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2024.11.25./사진=연합뉴스
한국측의 별도 행사에서 박 대사는 “오늘 우리는 이곳 사도광산에서 고통을 겪다 돌아가신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넋을 기리고자 이 자리에 모였다”며 “사도광산에서 고생하는 가족을 그리며 고통과 슬픔의 나날을 견뎌내신 유가족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고향으로부터 800㎞ 넘게 떨어진 곳, 말도 통하지 않고 사방이 바다로 가로막혀 있는 섬에서 땅속 깊은 곳의 열기와 돌가루에 휩싸여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셨을지,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 땅을 그리워하며 반드시 돌아가리라는 희망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고자 얼마나 많은 밤을 힘들게 버텨내셨을지, 저희로서는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다”고 추모했다.
또 “생전 고국의 땅을 밟지 못한 채 영영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한스러운 마음, 그리고 해방 후 귀국하셨지만 사고 후유증과 진폐증 등으로 여전히 힘든 삶을 이어가야만 했던 분들에게는 그 어떤 말도 온전한 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24일 오후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서쪽에 있는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모식'에 빈자리가 보이고 있다. 이쿠이나 정무관이 과거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논란이 되면서 한국 정부는 전날 행사 불참을 선언했다. 2024.11.24./사진=연합뉴스
그러면서 “사도광산의 역사 뒤에는 이 같은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며 “오늘 이 하루가 가혹한 환경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신 모든 한국인 노동자들을 기억하는 진정한 추모의 날이 되고, 이 추도식이 돌아가신 한국인 노동자분들과 유가족분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대사는 “80여년 전의 아픈 역사가 계속 기억될 수 있도록 한일 양국이 진심을 다해 노력해 나가야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날 일본측이 연 행사는 ‘사도섬의 금산 추모식’이라는 이름으로 열렸지만 일본 중앙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은 인사말에서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강제성을 인정하면서 사과를 표하는 내용은 없었다. 식순에도 묵념, 인사말, 헌화만 기재됐다.
이쿠아나 정무관은 인사말에서 “사도광산 노동자들 가운데 전시정책에 따라 한반도에서 건너온 분들이 포함돼 있다”면서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위험하고 가혹한 갱도 내 환경 아래에서 힘든 노동에 종사했다”고 했다. 이어 “앞 세대의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며 돌아가신 모든 분들께 다시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