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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주 사태와 정쟁에 빠진 위기의 공영방송

2015-10-19 13:59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황근 선문대 교수
미디어는 마치 야누스와 같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장사꾼’의 얼굴과 ‘정치인’의 얼굴이다. 때문에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돈벌이 수단으로 때로는 권력을 쟁취·유지하는 수단이 되어 왔다. 심지어 많은 경우에 방송은 막강한 권력과 엄청난 부를 동시에 검어지게 하는 몬스터가 되기도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라디오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장 먼저 착안한 사람들은 역시 눈치 빠른 정치인들이었다. 러시아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의 선전·선동 중심에는 신문과 라디오가 있었다. 이런 레닌의 미디어정치는 히틀러시대에 들어 꽃을 피우게 된다. 성격은 다르지만 루즈벨트의 라디오연설 ‘노변방담(fireside chat)’은 ‘뉴딜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적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미디어를 이용한 대부분의 대중설득기법들이 이때 등장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처럼 정치권력이 방송을 지배하게 되면서 그 위험성에 대한 사람들의 우려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공영방송은 이러한 배경에서 유럽 국가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상업적 이해와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된 공익을 지향하는 방송’이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야 한다는 공영방송의 목표는 역설적으로 공영방송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아이콘처럼 인식되고 있는 영국의 BBC도 심심치 않게 정치적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곤 한다. 최근 BBC의 구조개혁을 노동당이 강하게 반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수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프랑스의 TF1은 1987년 우파 시랔 대통령시절 민영화되기도 하였다. 또 2008년에 추진되었던 사르코지 대통령의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정책은 보수신문을 지원하기 위한 음모라는 좌파의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 공영방송 이사회의 정쟁도 공영방송을 위한 것이어야지 공영방송을 지배하기 위한 정쟁이어서 안 될 것이다. 더구나 KBS/MBC는 새로운 미디어들의 공세로 벼랑 끝에 서있는 너무나 위태로운 상황이다./사진=jtbc캡쳐
때문에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은 특정 정치세력이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이해집단 간 균형에 초점을 두고 있다. 비록 집권정당이 전권을 쥐고 있지만 영국의 BBC트러스트는 구성과정에서 정치·사회·문화·지역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다. 독일의 공영방송위원회는 다양한 정치·사회단체들의 대표들로 구성하도록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역시 공영방송으로 인식되고 있는(공영방송이라는 법적 근거가 없지만) KBS와 MBC방송문화진흥회 이사구성에 있어 안배원칙에 따라 정치적 독립성을 도모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당과 야당이 7:4 그리고 6:3으로 나누어 이사를 추천하고 있다. 너무 노골적인 정파간 나누어먹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정치적 균형이외에 다른 방법이 쉽지 않은 한국사회가 가진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바로 이 때문에 KBS와 MBC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태생적으로 정쟁화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처럼 정치적 갈등이 첨예하게 되면 더욱 그렇다. 그러다보니 여·야할 것 없이 점점 더 강력한 인사들을 추천하는 ‘전투력의 나선(spiral of fighting)’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이력이나 과거 발언들을 두고 이사회뿐 아니라 정치권까지 그야말로 끝을 모를 정쟁을 벌이고 있다. 물론 현 제도아래서 이런 갈등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이 전체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성향 문제를 제기하게 되면 정도의 차이일 뿐 정파의 추천을 받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공영방송 이사회의 정쟁도 공영방송을 위한 것이어야지 공영방송을 지배하기 위한 정쟁이어서 안 될 것이다. 더구나 KBS/MBC는 새로운 미디어들의 공세로 벼랑 끝에 서있는 너무나 위태로운 상황이다. 정쟁으로 시간을 낭비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황근 선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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