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우 기자 |
감성에서 온 남자 이원우
“사실은, 내가 더 내고 싶어”
더치(Dutch)는 네덜란드 사람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더 유명한 건 ‘더치페이’라는 말.
더치페이라는 말이 유래한 배경에는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의 뿌리 깊은 식민지 갈등 문제가 있다.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을 뜻하는 더치(Dutch)를 비하적인 표현으로 사용했고 영국인들이 ‘각자 돈 내는 찌질한 지불방식은 네덜란드 놈들이나 하는 거’라는 뉘앙스로 “Go Dutch”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의 오랜 갈등을 방불케 하는 더치페이 논쟁이 긴 시간동안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 문제가 남혐-여혐 문제와 엮이면서 전선은 말도 안 되게 복잡해졌다.
더치페이 논쟁의 화룡점정은 결혼이다. 남자는 집을 해오고 여자는 혼수를 해오고. 근데 남자한테 집 해올 돈이 어디 있지? 너무 당연한 것처럼 얘기하니까 처음엔 부담스럽다가 같은 부담을 안고 있는 남자들이 더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반가움을 느끼고, 그렇게 연합전선이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 만들어지다 보니 ‘남자 vs 여자’의 팽팽한 대결구도가 고착돼 버린 것이다.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건 2030 사이에서 남녀 간의 수입 차이가 거의 제로로 수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취직하기 힘들고 먹고 살기 어려운 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남녀 간의 임금격차가 크다는 점은 통계적인 진실이지만 2030 레벨에서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아니 근데 왜 내(남자)가 더 많이 내는 게 당연한 문화인 거지? 이건 좀 이상하잖아?
이 대결구도의 한가운데에서 하나 짚어볼만한 포인트가 있다. 현재의 2030들은 남녀평등이 어느 정도 구현된 삶을 살았지만 부모 세대들은 별로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바깥에서 남녀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목도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남아선호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공간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 벌이에 관계없이 남자가 조금이라도 더 내는 게 맞다는 생각. 남자 쪽에서 더 비싼 걸 계산하고 여자는 커피 값 정도를 부담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생각. 어떻게 여자한테 돈을 쓰게 할 수 있겠냐는 생각. 이런 생각들이 통용되는 관계에서 성별에 대해 균형 있는 인식이 존재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일러스트=대학생신문 바이트 |
그리고 그 잠재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남녀가 평등하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어쨌든 여자친구보다 많이 벌어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큰소리도 치고 싶은 게 2015년 대다수 한국 남성들의 어쩔 수 없는 속마음일 거라는 얘기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의 남자들이 진짜로 원하는 건 더치페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멋지게 더 내고 싶지만, 그래서 우위에 서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스스로의 초라함이 본심도 아닌 더치페이 논쟁으로 흘러가버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은 씁쓸해지기도 한다.
▲ 정소담 칼럼니스트 |
이성에서 온 여자 정소담
“니가 다 낸다고 꼬시지 말아줘”
더치페이에 관한 온라인상의 낭자한 선혈이 무색할 만큼 실생활에서 더치페이에 호의적이지 않은 건 오히려 남자 쪽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내겠다고 하면 “됐어 그냥 내가 살게”라든지 “아니야 넌 커피나 사”라든지.
보통은 그래 그러렴, 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누군가 내 책임을 덜어가 주는 건 종종 편한 일이 되기도 하니까. 더구나 연인 사이는 엄격한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 관계이니 남자 쪽에서 책임을 가져가 주면 그냥 쓱 따라가곤 했던 일이 많았다.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한 건 엄마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대학시절. 나도 이제 다 컸다고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고 대들어봤자 부모님 집에서 부모님 돈으로 살고 있다면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아, ‘무조껀’의 상징인 부모-자식 간에도 그러한데 남녀관계는 오죽할까.
경제적 의존이 발언권의 축소를 의미한다는 건 대부분 진리다. 그리고 “나한테 의존해도 돼”라고 말하는 남성의 호의, 그 유혹은 너무나 달콤하며 동시에 강력하다. 그러나 그 호의에 취해 내가 지는 책임이 작아지는 만큼 나의 권리도 함께 쪼그라진다고 생각하면 뇌내가 다 서늘하다.
연인사이의 계산 문제는 기본적으로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영역이다. 더치페이가 철저한 5:5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10:0이든 5:5든 각자의 형편과 상황에 따라 두 사람이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부분에 있어 “어느 한쪽에서 짊어지거나 혹은 한 쪽이 더 많이 부담하는 것이 맞다”는 명제 자체에 동의하는 것은 위험하다.
벌이에 관계없이 남자가 조금이라도 더 내는 게 맞다는 생각. 남자 쪽에서 더 비싼 걸 계산하고 여자는 커피 값 정도를 부담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생각. 여자에게 밥을 사게 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는 생각. 어떻게 여자한테 돈을 쓰게 할 수 있겠냐는 생각. 이런 생각들이 통용되는 관계에서 성별에 대해 균형 있는 인식이 존재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입에 풀칠 할 책임을 한쪽만이 지는 관계에서 서로가 동등한 인간으로 마주선다는 것은 어렵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남자가 돈 벌어와 여자 입에 밥 넣어 주는 게 우리가 그렇게 타파하고 싶은 가부장제의 본질이다. 당당한 자세로 양성평등에 대해 말하려거든 결코 나의 책임을 축소하지 않겠다는 그 팽팽한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실생활에서 더치페이에 호의적이지 않은 남자는 여전히 매우 많다. 모름지기 남자는 여자를 책임지고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귀여운 마초들의 호의를 어떻게 비난하겠는가. 그러나 나에게 모든 걸 기대라고 말하는 그 강력한 유혹을 주의하는 건 여성들의 몫이다. 그에게 기대어 있는 동안 나의 전투력이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지 않는가. /정소담 칼럼니스트, 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