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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상봉 종료...“65년 전 핏덩이 잃었다고 그렇게 말했었잖아, 엄마”

2015-10-26 13:58 | 김소정 부장 | sojung510@gmail.com

[금강산 공동취재단=미디어펜 김소정 기자]치매를 앓고 있는 93세 김월순 할머니는 이번 이산가족상봉에서 1951년 1.4후퇴 때 북에 남겨두고 온 장남 주재은(72) 씨를 처음 만났고, 이내 슬픈 이별을 해야만 했다.

작별상봉 시간이 끝나가자 북 측 재은 씨는 남 측 동생 재희(71) 씨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건강하게 살아라”라고 말하고 와락 부둥켜안았다. 동생도 형을 부둥켜안은 채 “형, 마지막이 아니야. 이건 시작이야, 형”이라고 울먹였다.

형은 이번 작별 때만큼은 어머니가 타고 갈 휠체어를 손수 폈고, 어머니를 휠체어에 앉혔다. 이어 어머니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머니, 건강하십쇼. 통일 되면 제가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한동안 흐느꼈다.

재은 씨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어머니의 휠체어를 손수 밀었다. 이윽고 동생에게 휠체어를 넘겨준 뒤 다시 어머니를 가만히 응시하며 “어머니, 살아있으십쇼”라고 말하자 주변이 눈물바다가 됐다. 하지만 치매가 있는 김월순 할머니만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북 측 아들은 다시 어머니에게 “통일 되면 만납시다, 어머니”라고 말하면서 큰 눈물방울을 뚝 흘렸다. 그러자 남 측 아들이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핏덩이 버리고 왔다고 그렇게 얘기했잖아, 엄마”라며 오열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냥 멍한 표정으로 “나 데리고 집에 갈거지”라고 연신 반복했다.

김월순 할머니는 이날 작별상봉이 처음 시작될 오전시간 때만해도 잠시 정신이 돌아와서 북 측 아들을 알아보고 기뻐했다. 할머니는 왼쪽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아들 손에 쥐어줬다. 붉은색 알이 박힌 금반지로 며느리에게 주려고 끼고 있던 것이라고 한다. 아들은 극구 사양했지만 어머니는 “안 필요해도 내가 주고 싶어. 갖다 버리더라도 갖고가라”고 했다.

배양효(92) 할아버지와 남북에 각각 흩어져 살던 아들 상석(60), 상만(65) 씨와 딸 순옥(55) 씨, 그리고 상만 씨의 딸 은희(32) 씨도 마지막 작별상봉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상만 씨와 순옥 씨는 만나자마자 껴안고 엉엉 울었다.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운 탓에 입을 떼기도 힘든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고모 순옥 씨가 조카 은희 씨에게 금반지를 끼워주고 금목걸이를 걸어줬다. 처음 은희 씨는 “일 없습니다”라며 거절했지만 순옥 씨가 “고모가 너 다 주고 싶어. 엄마가 없다니까. 아빠 잘 모시고”라고 하자 은희 씨가 어쩔 수 없어하면서 받았다.

   
▲ 지난 2월 이후 8개월만에 다시 열린 제20차 남북 이산가족상봉이 26일로 모두 끝났다. 1회차 상봉에서 북 측 96가족과 이들이 찾은 남 측 가족 389명이 만났으며, 2회차 상봉에서 우리 측 90가족 254명과 이들이 찾은 북 측 가족 188명과 재회했다. 2회차 참가자 가운데에는 43년 전 오대양호 납북 사건으로 헤어졌던 두 가족도 포함됐다./사진=YTN 영상화면 캡처

이때 갑자기 상석 씨가 흥분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또) 만나게 해주세요! 서로 편지 주고받게 해주세요!” 상석 씨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니까 북 측 보장성원과 안내원 7~8명이 몰려들어 취재를 방해했다.

상봉 첫날 아버지 배양효 씨는 북에서 사는 아들 상만 씨에게 “너 오면 주려고 2000만원 들여서 깨끗이 청소해놨어”라고 말했었다. 아마 아버지는 평소에 북에 있는 아들을 그리워하면서 그 아들이 돌아온다면 살 집을 미리 장만해둔 모양이다. 그리고 이번 이산가족상봉을 앞두고 거금을 들여 보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2박3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긴 이별을 할 시간. 상봉장에 “작별상봉을 끝마치겠습니다”라는 북 측 안내방송이 울려퍼지자 가족들은 엉거주춤 일어나서 서로 껴안고 눈물 흘렸다.

상봉장을 떠나던 가족들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배양효 할아버지의 딸 순옥 씨는 오빠 상만 씨와 손을 놓지 못하고 계단 옆에서 통곡했다. 북 측 보장성원들이 달려와서 말렸지만 배 씨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내내 통곡했다.

순옥 씨는 버스에 올라서도 창밖으로 손을 내밀며 상만 씨의 손을 잡고 “오빠, 가지마”라며 오열했다. 남 측 가족들을 태운 버스가 꽤 높고, 창문도 맨 뒤쪽 한 자리밖에 열리지 않은 탓에 차 안에서 가족들은 창문을 두드리며 울었다. 맨 뒷자리로 달려와 창밖으로 팔을 뻗어본 한 할아버지가 미처 가족의 손을 잡지 못한 채 버스는 출발했다.

남 측 이봉진(82) 할아버지는 북 측의 조카 강현삼(66) 씨와 강인호(59) 씨와 만난 뒤 취재진에게 이렇게 소회를 풀었다. “마음의 빚을 갚은 것 같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 확인했으니 나중에 우리 아이들 통해서라도 도울 수 있잖아. 내 목표가 이제 끝나서 그런지 그렇게 슬프지는 않다.”

이봉진 할아버지는 “대화를 해보니 통일은 영원히 풀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 이야기를 하니까 조카들은 ‘유일신은 하나요’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종교는 여러 개’라고 했는데 수긍을 하지 않더라”라고 했다. 이어 “물질적인 통일은 이루더라도 정신적 통일은 요원하다. 이거 해결하려면 시간이 걸리겠다. 민족의 비극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지난 2월 이후 8개월만에 다시 열린 제20차 남북 이산가족상봉은 모두 끝났다. 1회차 상봉에서 북 측 96가족과 이들이 찾은 남 측 가족 389명이 만났으며, 2회차 상봉에서 우리 측 90가족 254명과 이들이 찾은 북 측 가족 188명과 재회했다. 2회차 참가자 가운데에는 43년 전 오대양호 납북 사건으로 헤어졌던 두 가족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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