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위탁업무 수행시 '공무수행' 분류…보험업도 적용 가능
[미디어펜=이원우 기자]"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죠. 애매할 경우 무조건 조심해야 하는 건 맞지만 이러다가 '본업'도 지장 받을까 걱정이 됩니다."

은행원도 '김영란법'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은행권이 '패닉'에 빠졌다. 국민권익위원회마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아 현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당초 우려됐던 내수 위축에 이어 '은행업 위축'이 우려된다. 보험업계 역시 김영란법 적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 외환거래‧국고금 수납 등을 처리하는 은행원도 '김영란법'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은행권이 '패닉'에 빠졌다. /미디어펜


30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28일부터 시행된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적용 대상에 은행원들도 포함돼야 한다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 근거는 김영란법 11조 1항 2호다. 내용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위임하거나 위탁한 업무를 수행하는 법인이나 개인을 공무수행사인으로 규정'하면서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문제는 은행원들이 공공기관 위탁업무를 상당수 수행한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금융당국이 주도해 출시한 중금리 대출상품 '사잇돌대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건 경우에 따라 '공공업무'가 될 수 있다. 외환거래나 공과금 수납 업무 등도 마찬가지다. 

군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나라사랑카드' 발급 역시 국방부가 군인공제회에 위탁한 사업을 은행들이 전개하는 대표적 사례다. 군인들이 '나라사랑카드'를 발급 받은 은행과 전역 후까지 거래하는 경우가 많아 은행 간 경쟁이 치열하다. 문제는 이 업무를 취급하는 순간 '공공위탁업무'를 수행하는 셈이 되어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업무들은 특정 은행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사발령에 따라 돌아가면서 누구나 담당할 수 있는 것들이라 결국 약 10만 명에 해당하는 모든 은행원들이 '공무수행사인'이 될 수 있다. 언론계 종사자나 교육자 등에만 해당되는 줄 알았던 김영란법이 은행원들에게도 적용될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현장 혼란이 가중될 것을 우려한 은행연합회는 이미 국민권익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 때 그 때 다르다'였다. 권익위 관계자는 "해당 공공기관이 은행에 업무를 위임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법적 근거에 의거했는지를 보고 판단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은행원도 김영란법 대상이 될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의외의 전개에 은행들은 당황한 눈치다. 다수 은행에는 '몸조심' 주의보가 이미 내려졌다. 시중은행 관계자 A씨는 "골프 약속 등의 취소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법 시행 초기인 만큼 지금은 무조건 조심하는 게 상책이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단, 이 관계자는 "따지고 들어가면 애매한 상황이 너무 많기 때문에 결국 은행업권 전체적으로 위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미 은행들은 오랫동안 발행해 온 계간지를 폐간하거나 우회발행 하는 조치를 취했다. 정기간행물을 발간하는 기업의 경우 언론사로 분류돼 더 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공무수행사인' 논란의 경우 피해갈 방법이 사실상 없어 더욱 난처한 상황이다. 

만약 은행원들이 김영란법 적용 대상으로 공식 분류되면 다음은 보험업일 가능성이 높다. 보험상품 중에도 국토교통부가 위탁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사업' 등 국가의 위탁을 받은 업무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되는 업권이 점점 많아지다 보면 당초 우려됐던 '내수 위축'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게 전개될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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