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소동으로 본 좌파의 여론선동 전술
이념지형에서 문화예술 분야는 언제나 전선이다. 문자나 영상, 선율이나 이미지는 창의성과 아름다움을 앞세우며 사람들을 감동시키지만 그것이 도구로 바뀌면 치명적인 흉기가 될 수 있다.
항우와 유방이 중원 쟁탈을 할 때 등장하는 ‘사면초가’의 고사나 서동이 선화공주를 유혹할 때 서동요를 퍼트려 선화공주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처신까지 꼼짝없이 올가미를 씌워버린 서동요 조작사건‘, 조선 중종 시대 나뭇잎에 ‘주초위왕’을 새겨 조광조의 역모사건으로 몰고갔던 기묘사화 같은 사례들은 역사 속에 등장하는 문화예술이 선동과 공작에 동원된 경우에 든다.
나치스 집권시대에 괴벨스가 라디오를 이용해 국민선동을 한 것이나 공산혁명 이후 레닌이 영화제작을 국유화하며 정책적 지원을 한 것도 라디오나 영화를 교육과 선전, 선동의 유효한 수단으로 인식하며 활용하 사례들이다.
인터넷상의 수많은 다큐멘타리, 패러디, 블로그 등등은 현 시대의 전장에서 유통되는 무기들이다. 최근 벌어진 ‘문화예술인블랙리스트’ 소동은 문화,예술이라는 외피를 쓴 좌파 선동 전술이 횡행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이른바 ‘문화예술인블랙리스트’
지난 10월 1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와대와 문화부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예술위원회 심사 및 심사위원 선정에 개입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문화예술계’는 벌집을 건드린 듯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그동안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에서 이유 없이 탈락했다”는 증언들이 줄을 잇듯 이어졌고 정부를 비난하는 주장들도 여기저기서 나왔다.
문화부는 공식적으로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지만 행동에 나선 ‘문화예술인’들은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며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문화연대와 민족예술단체총연합(민예총), 작가회의 등 몇몇 단체들은 기다렸다는 듯 ‘책임자 처벌과 예술 검열반대 예술행동’이라는 임시 조직을 만들어 시위에 나서는 순발력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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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명단의 실체라는 것이 모호하고, 이름이 올라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어떤 차별이나 피해를 입었는지 확인된 바 없다./자료사진=연합뉴스 |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문화계블랙리스트’ 소동은 전략적으로 기획된 행동이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든다. 누군가, 어디선가 일련의 사례들을 수집하고 정리해 특정한 자료로 만들고, 국회의원의 발언으로 계기화하고 그것을 빌미로 행동에 나서는 과정이 이전의 여러 시위과정과 흡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럴듯한 발언을 하고 관련된 행동을 보이면 매체를 통해 뉴스로 포장되어 일반적인 여론인 것처럼 가공된다. 그 기사는 다시 SNS를 통해 여기저기로 퍼진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관련 내용들이 주루룩 뜬다. 대부분은 현 정부나 정권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벽보처럼 바뀌어 있다.
이런 내용들은 다시 자료화되거나 고발의 증거처럼 인용되어 또 다른 논란의 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 문화예술 분야의 지원 시비가 정권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도종환 의원의 발언은 며칠 후 같은 당 소속 이훈 의원의 “인권위원회가 직권조사하라”는 요구로 이어졌다. 이훈 의원은 국회운영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에게 “블랙리스트는 청와대를 통해 작성되어 문화체육관광부로 보내진 문서라면 명백히 공권력을 이용한 문화계 탄압”이라는 취지로 발언하며 위원회가 직권조사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성호 인권위원장은 “직권조사는 위원회의 결정이 필요하다”며 즉답을 피하는 대신 “실태 파악을 위한 기초조사를 하겠다”는 것으로 정리했다.
위원장이 국정감사 자리에서 기초조사를 하겠다는 대답을 했으니 그 결과에 대한 보고는 해야 한다. 조사를 해서 사실이라고 밝혀지면 논란을 구체적인 사실로 확정하는 것이고, 그런 사실이 없다고 보고하면 정부 편을 들어 숨기는 것이 아니냐며 다그치거나 무능하게 할 일을 못한다며 몰아댈 수도 있다. 엉뚱하게 인권위원회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이래저래 논란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다.
자신이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개인, 그들이 소속되거나 연결되어 있는 단체들이 주장하는 차별의 실체는 심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장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것도 이름과 숫자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디에서 누가 만든 것인지도 알 수 없고 더 근본적으로는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논란대로라면 문화예술 분야의 지원 심사를 하는 곳에서는 명단을 열람하며 리스트에 있는지 없는지 일일이 대조하고 이름이 보이면 내용에 상관없이 탈락시킨다는 것이다. 어느 심사가 그렇게 진행될 수 있는가? 심사위원들은 아무런 판단력이나 양식이 없는 기계들인가? 만약 누군가를 리스트 여부에 따라 무조건 탈락시키는 경우라면 심사위원 개별의 의사가 아니라 그보다 더 윗선의 지시가 있어야 하고 심사위원들은 무조건 그 지시대로 따라야 가능한 일일터이지만 어느 누가 그대로 따를 수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심사위원 중 누군가가 그런 일을 거부하고, 대외적으로 밝힌다면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원이 특정 분야에만 쏠리고 특정인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현상이 보이기만 하면 이전에 벌써 시비가 불거졌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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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오른쪽)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에게 질의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
억울한 피해자로 위장하며 선동조작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영화나 콘텐츠 분야를 제외한 예술분야 전반을 대상으로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장르별 사업 뿐만 아니라 단체, 창작공간 둥에 대해서도 지원사업을 한다.
연극분야의 경우 일반과 어린이.청소년 부문으로 구분해 시범공연 지원, 우수작품 제작 지원, 우수작품 재공연 지원 등으로 다시 세분한다, 이런 방식은 무용, 음악, 오페라 등의 다른 분야에도 적용하는 방식이다. 예정 사업까지 합치면 45개 단위 부문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다.
지원금이 활동의 실질적 자금 역할을 하는 현실에서 지원금의 향방은 대다수 예술인들에게는 중요한 관심사인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지원금은 말 그대로 지원금 성격이기 때문에 일단 지원을 받고 적당히 내역을 맞춰 사용하면 그만이다. 상환의 책임이 없기 때문에 지원금은 소진성 일방통행을 한다.
물론 이 같은 지원이라고 하여 무조건, 무제한으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원 자격과 선정기준 등을 가린다. 허위로 내용을 조작하거나 지원을 받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등 지원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는 제재나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자력으로 활동을 하는 것이 충분하거나 다른 기관.단체 등에서 이미 지원을 받아 2중 지원이 되는 경우에도 제한될 수 있다.
어떤 사유에 적용되는지는 위원회 사무국의 행정조사와 심사위원들의 판단 등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제출한 내용이 다른 대상들에 비해 현격하게 조악해 보인다면 지원 대상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지원자가 적어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지원에서 탈락했다면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여러 심사위원들이 종합한 판단으로 결정 되는 일이다. 대부분 여러 명으로 심사위원단을 구성하는 것은 특정심사위원의 정치적 성향의 편향을 조정하고 독단으로 결정이 이뤄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구조적으로 모든 종류의 지원사업은 당선자와 탈락자로 나뉠 수밖에 없다. 지원율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5% 내외의 당선자를 정하면 나머지 95%는 탈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지원 대상자가 되면 당연히 받을 것을 받았다고 여기면서 말이 없지만, 탈락한 경우는 온갖 이유를 붙여 불이익을 받았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블랙리스트’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명단의 실체라는 것이 모호하고, 이름이 올라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어떤 차별이나 피해를 입었는지 확인된 바가 없는 상태다.
인터넷에 떠도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문재인 지지선언 문화예술인 가운데 경남 869명, 전북 115명, 부산 423명의 문화예술인과 서울연극협회 1000명의 명단은 빠졌고, 박원순 지지선언 문화예술인 가운데 여성 문화예술인 628명과 추가로 지지한 71명의 명단은 빠지는 등, 정부가 작성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엉성하다는 평가다. 그나마 더욱 가관인 것은 문화부나 한국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은 경우도 허다하다는 점이다. 지원을 받고서도 억울한 피해를 당한 것처럼 허위로 위장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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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념지형에서 문화예술 분야는 언제나 전선이다. 문자나 영상, 선율이나 이미지는 창의성과 아름다움을 앞세우며 사람들을 감동시키지만 그것이 도구로 바뀌면 치명적인 흉기가 될 수 있다. 사진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자료사진=광주광역시 제공 |
목적을 위해서라면 거짓도 동원
염동열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속칭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된(인터넷 등에 돌아다니는) 다수의 예술인이 정부(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기금 아르코창작기금 지원에서 탈락하자, ‘정치검열’을 주장하며 논란을 촉발했던 이윤택 감독(작가 겸 연출가)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TV 찬조 연설을 했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지원에서 탈락시킨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2015년에도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모 극단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시장 활성화 지원사업(2015년, 문예위) 대상자로 선정돼 2900만 원을 지원받았으며, 한 국립극단 작품의 연출료로 15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 책임을 맡은 한 축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역대표공연예술제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어 1억 원을 보조받기도 했다.
또 소설 분야의 박모 작가는 ‘블랙리스트’에 명단이 있었음에도 문체부 관련 사업에 참여해 2500만 원의 지원을 받는 한편, 세종시에 있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드림콘서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스스로 앞장서 문화예술인을 적으로 돌리는 시대착오적인 자들을 일꾼으로 거느린 대통령이 불쌍하다”며 맹비난한 바도 있다.
또 해당 리스트에 등장하는 손모 씨는 최근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장으로 임명되는가 하면, 문화예술위원회 반대 시위에 참여한 바 있는 극단 대표 김모 씨는 최근 3년 간 6개 사업에서 총 1억 원 이상의 지원을 받기도 했고, 인기 작가 윤모 씨는 콘텐츠지원사업에서 1억6000만 원을 지원받고 해외 행사에 한국대표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던 것으로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염 의원에 따르면 지난 10월 12일 일부 매체에서 보도한 명단은 성명만 기재돼 있고 특정인을 확인할 약력이나 출생 연도 등이 표기돼 있지 않아 동명이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문체부가 1일 간 약식으로 2015년과 2016년 지원 내역을 조사한 자료에는 이미 116명의 예술인에게 195건의 예산 지원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전수조사가 아니라 지명도 있는 예술인 대상 1일 간 약식 조사만 해도 지원 실적이 상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지원이 부당하게 진행된다거나 특정인물의 명단을 만들어 의도적으로 배제시키는 일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악의적인 음모론으로 몰아 정부와 정권을 비난하는 일련의 액션 사이클은 문화예술을 운동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좌파문화운동의 전술전략과 그대로 겹친다. 일종의 자해공갈적 행동이지만 허위사실까지 덧붙여 자신을 억을한 피해자인 것처럼 코스프레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머지않은 시점에서 국정감사라는 합법적 공간을 통해 이슈로 떠올리고 ‘문화예술인’들이 되받아 여론몰이를 하는 과정은 문화예술을 수단으로 동원하려는 행위는 몇몇 개인의 돌발적 움직임이 아니라 조직적인 기획에 따라 연출되고 있는 타격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예술은 미술 작품이나 음악의 선율 속에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치의 선봉에서도 전선을 이룬다. ‘문화예술인블랙리스트’ 논란을 단순한 사건이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선의적 시도가 아니라 좌파 세력의 전략전술적 선동이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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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가운데)은 10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종합감사에 출석해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보고받았다"며 명단에 포함된 예술인에 대한 정부 지원사례가 "총 100건이 넘는다"고 밝혔다./사진=미디어펜 |
우파의 대응은 미약
이번 ‘블랙리스트’ 소동에서 좌파들은 압도적 우세를 유지했다. 도종환 의원이 문제제기를 한 후 좌파들의 동조 활동은 즉각적으로 확산되었지만, 그것이 실체가 없는 조작이며 여론 선동을 위한 기획 이벤트였다는 것을 직시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염동열의원이 문화부 자료를 제출받아 ‘블랙리스트’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밝혔지만 국정감사장에서 발언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좌파의 조직적 선동전술에 따라 벌어지고 있는 이벤트라는 사실을 부각시키지 못한 채 떠도는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만을 지적했을 뿐이다. 그나마 유일한 대응이다시피 했지만 더 이상 확산되지 못했다. 미디어나 SNS로 연결되지 못한 탓이다.
결과적으로 좌파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한판 소동을 벌인 것에 비해 우파는 주도권을 잡기는 고사하고 그것이 전술적 액션인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여론전에서 밀려버린 모양새다. 이런 일은 반복되고 있다. 광우병파동은 허위로 조작한 소를 인간 광우병의 진원인 것처럼 선동한 것에서 시작되었고,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운동도 정부가 자동차산업을 지키기 위해 영화 분야를 희생양으로 내던지려한다는 괴담에 휘둘린 결과였다.
우파 진영은 여러 번의 치명상을 당하고도 체계적인 대응조직을 갖추거나 저변을 넓히는 작업을 하지 못했다. 경제나 정치분야에 전력이 집중되고 있는데 비해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이해나 대응은 현저하게 취약하다. ‘블랙리스트’소동은 좌파의 선동조직과 행동력이 탁월하다는 점과 우파의 대응역량은 현저하게 취약하다는 문화예술계의 이념 지형을 고스란히 드러낸 경우로 기록해야 한다.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위원·영화평론가
(이 글은 지난 11월 29일 자유경제원이 DMZ 생태관광지원센터 교육장에서 개최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이념전쟁에서 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패널로 나선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위원이 발표한 발제문 전문이다.)
[조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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