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 걸면 코걸이 선고, '대통령 사면' 여지 남겨"
경영권 승계 재판, 이제 시작 '산 넘어 산' 전망도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받고 끝내 법정구속됐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송영승 강상욱)는 이날 오후 2시 5분 뇌물 공여 등 혐의를 받는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를 통해 "실형은 불가피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심에서 뇌물·횡령액 89억원으로 판단되어 징역 5년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가, 항소심에서 36억만 인정되면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되어 석방된 바 있다.

3차례 재판을 거쳐 이 부회장에 대한 유무죄 판단은 이날 사실상 종결됐다. 이 부회장은 앞서 수감된 353일을 제외하고 이번 선고로 1년 6개월 여의 수감 생활을 가져야 한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12월 2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법조계는 이 부회장 양형 판단 등 이번 선고와 관련해 대체적으로 안타까워하고 있다. 삼성조차 정치에 좌우되는 그간의 기업 풍토를 벗어나기 힘들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직 부장판사는 이날 선고에 대해 "재판부 판결문을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하여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다고 판시했다"면서 "묵시적 부정 청탁을 인정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본보의 취재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어 왔던 삼성 최고 경영진이 가담한 뇌물 횡령죄의 연장선상에 있기도 하다'라고 했는데, 그게 맞는 말인지 되묻고 싶다"고 탄식했다.

특히 그는 "재계에서 그나마 끝까지 기대하고 바랐던 것은 준법감시위의 실효성 인정과 양형에서의 정상 참작이었지만 오늘 판결문을 보면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서 이를 인정치 않은 것"이라며 "결국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맞춤형 선고로 볼 수 있다. 2년 6개월 실형을 매긴 건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지 전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기업인 사면을 바라볼 여지를 남긴 것으로도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사건의 핵심은 기업이 경영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당한 것인데, 재판부는 형량을 정하면서 양형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건 다소 부당하다면서 이 점을 이미 고려했다고 밝히면서 빠져나갔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번 선고만이 아니다.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재판이 다음달 초 2차 공판준비기일을 갖고 정식 재판에 돌입할 예정인데, 이 재판에서도 이 부회장이 실형을 받는다면 수감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와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이 부회장 등 총 11명을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을 불법적으로 계획했다고 보고 있는데, 이에 대해 삼성 측은 "경영상 필요에 의해 이뤄진 합법적인 경영 활동"이라는 입장이다.

대형 로펌에서 합병 전문 파트너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H모 변호사(48)는 이날 본보 취재에 "이번 판결은 지난 201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 판결의 취지를 따랐다고는 하지만 삼성 입장에서 준법감시위원회까지 대대적으로 활성화했는데도 불구하고 매우 애석하게 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삼성 준법감시위가 거둔 성과를 감안하면 재판부 판단은 매우 주관적이고 협소하다"며 "늦게라도 제대로 만들었고 파격적인 방안을 발표해서 실행에 옮기고 있지만 결국 재판부가 일부 여론이나 '살아있는 권력'을 눈치본게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삼성이라는 이유로, 후계자라는 명분 때문에 이 부회장은 국내외 사업장을 찾아 현장 경영을 하는 날보다 법정에 선 날이 더 많았다"며 "지난 4년 반 가까이 삼성은 전례를 찾기 힘든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가 이어지면서 정상 경영이 힘겨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 시작하는 경영권 승계 사건은 이 부회장 수감 생활이 끝날 때까지 결론나기 힘든게 사실"이라며 "1년 반은 법원 재판 시각에서 보면 매우 짧다. 삼성의 사법 리스크는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삼성은 50여 차례 압수수색을 당했고, 전현직 임직원 110여 명이 430여 차례 소환 조사를 받았다.

삼성물산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은 앞서의 전직 대통령 뇌물 공여 사건과 비교하면 사안이 더 복잡하고 증거기록도 방대하다.

합병 및 분식회계 사건을 심리할 재판부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수감생활로 인한 이 부회장의 공백이 삼성에 어느 정도의 악영향을 끼칠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