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비 올 때 우산 뺏어간다는 말 들을 때가 가장 답답하죠." (은행 관계자)
"가장 힘들 때마다 돈줄 조이고 이자 올리는데 그런 얘기 안 나올 수 있나요?" (중소기업 경영자)
대기업 대출 회수에 따라 중소기업까지 자금 압박에 시달린다는 지적이지만 정작 은행권에서는 중소기업 대출이 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중소기업 대출의 절반은 소호대출에 몰려 있으며 중소기업에게 가산금리를 대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어 부담을 중소기업에게 부담시키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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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 대출 연체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은행권에 '여신 회수'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디어펜 자료 |
1일 금융권에 따르면, 통상 0%대~1%대 초반 구간에서 등락하던 대기업대출 연체율이 지난 6월 말 기준 2.17%까지 올라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불과 한 달 새 0.81%p 상승한 결과이자 2008년부터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고 수준이다.
이날 자료를 발표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STX조선해양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신규 연체가 발생한 점이 직격탄으로 작용했다"고 풀이했다. STX가 대기업 연체율에 미친 영향은 1.4%p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기업 연체율 상승에 따라 은행들은 앞다퉈 여신 회수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이 너무 급속하게 진행될 경우 시장 전체가 자금 경색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나아가 정상적인 기업들조차 유동성 위기에 내몰릴 수 있어 '금융'의 역할이 실종됐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에 은행권은 '중소기업 대출 증가'를 반례로 든다. 실제로 관련 통계를 보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은행들의 대출잔액은 대기업대출이 줄어드는 가운데서도 오히려 늘고 있는 추세다.
중소기업대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기업은행의 경우 이번에 발표한 상반기 실적에서 중소기업 대출 잔액을 132조 2000억 원으로 공시했다. 이는 작년 말 대비 6조 1000억 원이 증가한 수치로 한 달에 1조원 가량 중소기업 대출을 진행한 셈이다.
신한‧국민‧하나‧우리은행 등 4대 주요 시중은행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들 은행의 올해 6월말 기준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282조 4600억 원을 기록해 작년 말 대비 7조 9340억 원이 늘었다. 매월 2조원 가까이 불어난 수치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업황이 좋지 않은 대기업 대출보다는 탄탄한 중소기업에 대출하는 편이 회수율이나 건전성 측면에서 훨씬 좋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중소기업 종사자들의 입장에서 자금사정이 나아졌다는 체감을 하기는 아직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파주에서 건설업을 영위하고 있는 한 중소기업 경영자 A씨는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공사에서 발주를 받는 등 회사 경영사정에 긍정적 요인이 생겼는데도 시중은행 측이 추가대출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면서 "현장 사정은 통계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통계가 중소기업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올해 상반기 늘어난 중소기업 대출의 상당수가 자영업자 대상인 '소호대출'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국내 예금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인 17조 8000억 원 중 8조 6000억 원(48.3%)이 소호대출인 것으로 나타났다.
늘어난 중소기업 대출의 절반가량이 자영업자 대상이라는 의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호대출의 경우 주로 담보대출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안정성이 높은 편이라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소호대출 비중을 제외해도 중소기업 대출이 증가 추세에 있는 것은 맞지만 중소기업들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사상 최저수준의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평균 가산금리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은행들의 중소기업 신용대출 가산금리 평균치는 1월과 비교해 최소 0.01%p에서 많게는 0.35%p까지 상승했다.
은행별로 보면 기업은행이 1월 평균 4.26%에서 6월 4.27%, 우리은행 3.70%→3.76%, 농협은행 3.53%→3.65%, 부산은행 3.29%→3.58%, 대구은행 3.29%→3.48%, KEB하나은행 3.07%→3.38%, 수협은행 3.08%→3.26%, 신한은행 2.58%→2.75% 등이다.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상 대출을 늘리면서 가산금리를 함께 올리는 건 대기업 대출비중을 낮추면서 발생하는 이자이익 감소분을 중소기업 대출로 메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담도 함께 전가시키는 형국이라 '꼼수'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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