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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버무린 전통과 현대 '사랑애몽' 개막에 부쳐

2016-07-07 11:47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조윤서 거목 엔터테인먼트 대표

얼마 전 한 여성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클래식 발레 공연과 같은 문화를 얼마나 자주 즐기는가를 두고 회원들끼리 수다를 떠는 걸 본 기억이 난다. 그 중 꽤 인상적이었던 글이 있었다. 한 여대생이 공연을 보는데 자신이 아르바이트로 번 돈 절반을 쏟았지만 전혀 아깝지 않고 뿌듯했다는 클래식 공연 후기였다. 나 역시 문화계 종사자로서 대견한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조금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아, 저 젊은 열정이 향한 곳이 우리 전통문화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약간의 질투와 부러움이라고 할까?

요즘은 문화를 향유하는 정서가 확실히 과거와 달라졌다. 다수의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고급문화도 상당히 대중화됐다. 그래도 한계는 있다. 많이 보편화됐다지만 요즘도 괜찮은 공연은 헉 소리 나는 티켓 가격을 감수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국내 뮤지컬 공연조차 한 번 보려 해도 십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 서민들은 눈을 질끈 감아야만 한다. 한 달에 극장 한 번 찾기도 팍팍한 사람들에겐 그런 공연은 언감생심이다.

서구 취향이 휩쓰는 우리 공연문화계 끌려가는 관객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국내뮤지컬 '마타하리'는 개막 이후 최단기간 10만 명을 모아 흥행에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마케팅 비용 등을 포함해서 무려 250억 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제작사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겠지만 결국 비용은 관객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비단 '마타하리' 뿐만의 이야기 일까? 국내 대형뮤지컬 공연은 보통 제작비를 뽑기 위해 아이돌과 같은 스타마케팅에 치중하거나 지나친 상업성으로 흐르기 쉽다. 포장만 화려하고 정작 내용이 빈곤하기 짝이 없는 속빈 강정이 되는 것이다. 거액의 제작비 투입이 콘텐츠의 질과 완성도를 담보한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 대형 위주 제작풍토와 그에 따른 비용증가의 문제는 전문 뮤지컬배우들보다 인기 가수나 아이돌, 유명인 캐스팅에 치중하는 흐름도 만들어 내게 된다. 이런 부작용은 공연계의 발전에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부담은 결국 관객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국내 뮤지컬은 해외에 거액 라이센스를 지불하는 작품이나, 국내 창작품이나, 대부분 유럽과 영·미 등을 배경으로 한 서구풍이 주류를 이룬다. '모차르트' '팬텀' '엘리자벳' '몬테크리스토' '노트르담 드 파리' '지킬 앤 하이드' ‘맘마미아’ 등등 대부분이 그렇다. 내가 정말 안타까운 건 바로 이런 현실이다. 유명뮤지컬 한편쯤은 꼭 봐야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상한 정서, 잘못된 정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서양을 배경으로, 서양 악기들과 서양의 화려한 의상이 등장하는 서구식 뮤지컬이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의 보편적 문화 취향처럼 인식되어 졌을까? 가장 한국적인 콘텐츠가 세계에서 위력을 떨치는 게 현실이다. 음악과 드라마 영화와 같이 문화예술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한류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데, 왜 우리 공연계는 아직까지 서구만 바라보고 있을까? 우리의 것 중엔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문화의 원석이 무궁무진한데 왜 남의 것들을 흉내 내고 따라잡는 노력에만 머물러 있을까?

영화계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인디펜던스 데이:리써전스, 도리를 찾아서와 같은 헐리우드 영화가 흥행하고 기대를 받을 뿐 아니라 '곡성' '사냥'과 같은 한국영화들도 같이 경쟁하면서 관객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다. 어떤 작품은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고 상을 받기도 한다.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우리 실력과 경쟁력은 결코 세계에 뒤처지지 않는다.

김시습의 한문소설 '만포사저포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창작극 '사랑애몽'의 주인공 조윤서·여승호.


빛나는 원석 <만복사저포기>가 만든 창작극 '사랑애몽'

바로 이런 오래된 의문과 안타까운 마음이 내가 우리 고전소설을 바탕으로 한 창작극에 도전하게끔 한 원동력이 되었다. 곧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게 될 '사랑애몽'은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고 경쟁력 있는 우리 것, 우리의 문화가 무엇일까라는 고민에서 나온 결정체다. 서구의 어떤 유명 뮤지컬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독창적인 작품을 무대에 올려보자 여러 날을 고민하고 또 고민 했었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만난 게 김시습이란 조선의 천재 문인이 쓴 '만복사저포기'란 작품이었다.

만복사저포기는 서양 어떤 고전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훌륭한 사랑이야기다. 남원 고을 만복사에서 비루한 처지로 사는 노총각 양생과 왜구 난에 죽은 원혼인 여인의 지극한 사랑을 그렸다. 동양 철학과 남녀간의 사랑, 당대 정치현실에 대한 은유 등 무엇 하나 빠질 데가 없는 문화의 원석을 발견한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기에 우리 음악과 악기를 섞는다면? 서구의 어떤 뮤지컬보다도 재미있고 세계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작품이 되리라 확신했다.

내가 이 작품에 빠진 이유는 여럿이지만 그 중 한 가지가 만복사저포기에 등장하는 닭 울음이다. 좀 독특하다 할지 모르겠는데, 닭의 존재나 닭 울음은 동양적이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정신이 담긴 매력적인 소재의 하나다. 의미는 사뭇 다르지만 또 서양 정신과도 맞닿아 있기도 하다.

동양에서 닭 울음은 어둠을 걷어내고 새롭고 밝은 날을 맞는 영적 소리다. 닭이 울면 새벽이 오고 동이 트면 잡귀가 달아난다. 닭은 해로운 기운을 없애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특히 삼국유사의 혁거세와 김알지 건국신화에서 닭은 왕의 등극을 예견한다. 세상이 바뀌어 새 날이 열림을 뜻하는 것이다. 심청전에서 닭 울음은 심청에겐 아비와 이별해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시간을 알리는 존재다. 닭 울음은 또 귀신의 시간에서 사람의 시간으로 바뀜을 알린다. 만복사저포기에서 첫 밤을 보낸 양생과 여인이 이별하는 시간이 그렇다.

반면에 서양에서 닭은 인류를 깨우치는 각성의 존재다. 베드로는 닭이 두 번 울기 전 스승인 예수를 세 번 부인하고 만다. 닭이 울자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는 가슴을 치며 후회하고 각성하게 된다. 서양에서 닭의 울음은 하느님의 존재를 알리고 깨달음을 주어 인류를 구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랑애몽은 우리 문화콘텐츠에 대한 내 오랜 고민과 열정이 어렵사리 낳은 첫 자식이다. 아직 무대에 막이 오르기 전이고 관객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솔직히 두렵고 떨리기도 하다. 하지만 사랑애몽은 그만큼의 확신과 그만큼의 정성으로 빚었다고 감히 자부한다.

그렇게 나온 첫 창작극을 여러분께 소개하는 내 가슴은 설렘과 기쁨으로 가득하다. 더욱이 무르익지 못한 글 솜씨로 나서서 여러분께 이런 저런 생각들을 툭 털어놓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겐 굉장한 기회이자 영광이다. 나는 사랑애몽을 통해 내 인생의 복된 굿판을 질펀하게 벌이려고 한다. 무대에선 직접 관객과 함께, 또 이렇게 부끄러운 졸필로서 독자 여러분과 함께 만날 생각이다. 그 생각에 신명이 나고 복을 비는 굿판처럼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조윤서 거목 엔터테인먼트 대표

[조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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