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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와 깊은 인연'…발로 뛰는 '두산리더십' 기업인 든든한 조력자

2016-08-02 11:13 | 김세헌 기자 | betterman89@gmail.com
법정 경제단체로 전국 16만 상공인을 대변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경제단체인 상공회의소.  

상의는 중소기업만을 회원으로 하는 중소기업중앙회나 대기업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와는 달리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아우르는 국내 최대 종합경제단체다. 서울상의를 비롯한 전국 71개 지방 상공회의소를 대표하며 회원사가 14만개에 달한다.

지난 1984년 10월 정주영 전경련 회장(왼쪽 2번째), 이선기 무역협회 부회장(오른쪽), 정수창 대한상의 회장(오른쪽 2번째), 유기정 중소기협 중앙회장 등 4개 경제단체장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귀빈실에서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남북간 물자교역 및 경제협력방안에 관해 합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상의는 1884년 창립 이래 우리나라 상공업의 태동과 발전을 함께 한 상의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서부터 근대 역사의 질곡을 극복하고, 상공인의 권익 향상과 경쟁력 강화에 앞장서며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해온 경제동력으로 평가받는다. 

상의는 특히 상공인의 눈과 귀가 돼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의견을 파악해 경제계의 목소리에 객관성과 전문성을 높여 나가는 것은 물론, 우리 기업이 글로벌 경쟁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돕는 기업인의 허브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러한 상의와 두산그룹의 인연은 매우 뿌리가 깊다. 지난 2013년 7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관례로 겸임하는 서울상공회의소 회장으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선출됐는데, 그의 조부인 매헌 박승직은 빈농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민족의식이 강한 상인이었다.

포목 행상으로 전국을 떠돌며 기반을 닦아 1896년 종로에 '박승직상점'을 개업한 박승직은 서울지역 대표상인으로 활동하던 1906년 일본 상인의 횡포에 맞서 종로 육의전 상인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한성상업회의소'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 한성상업회의소가 바로 지금의 서울상공회의소다. 해방 직후 지방 상공회의소들이 연합해 '조선상공회의소'를 설립했으며 이후 대한상공회의소로 발전했다.

박승직은 한성상업회의소에 몸담고 있던 1907년 일본에서 얻은 차관을 갚고자 민족운동으로 전개됐던 국채보상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도 했다.



이처럼 남다른 상의와의 인연으로 해서 역대 두산그룹 총수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아우르는 국내 최대 상공인 대표단체인 상의에 누구보다 깊은 애정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 박용만 회장도 앞서 상의 부회장 시절 남달리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점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해 네 번째 상의 회장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덕분에 두산그룹은 박용만 회장을 포함해 4명의 상의 회장을 배출하게 됐다.

박 회장에 앞서 선친인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 전문경영인으로 두산그룹 총수가 된 고 정수창 전 회장, 형인 박용성 전 회장이 상의 회장으로 각각 활동했다.

박두병 전 회장은 1967∼1973년 6년간, 정수창 전 회장은 1980∼1988년 8년간 상의 회장을 역임했다.

박용성 전 회장은 2000년 상의 회장을 맡아 최근 중도 사퇴한 손경식 전 상의회장에 자리를 넘겨주기 전인 2005년 11월까지 5년 반 동안 상의를 이끌었다.

박용성 전 회장은 상의 회장 재직시절인 2001년 민족기업가였던 할아버지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 선생을 기리기 위한 '서상돈상'을 받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5월 나이로비 한 호텔에서 열린 한-케냐 비즈니스 포럼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두산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상의 수장으로서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박용만 회장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광고 카피를 직접 쓸 정도로 사람을 중시하는 '인재 경영', '소통 경영'으로 재계에 잘 알려졌다.

박용만 회장은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5남으로 경기고, 서울대학교, 보스턴대학교 MBA를 졸업하고 외환은행에 근무하다 1982년 두산건설 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두산음료, 동양맥주, ㈜두산 전략기획본부,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거쳐 30년 만인 2012년 3월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박용만 회장은 1990년 중반부터 강력한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로 소비재 중심이던 두산그룹을 글로벌 ISB(인프라지원사업) 기업으로 변화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통해 두산의 사업 방향을 전환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박용만 회장은 평소 적극적인 상의 활동으로 재계와 산업계의 신망도 두터운 편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두산그룹 회장에 몸담을 때에는 사내 임직원 등을 포함한 폭넓은 계층과 소통하기 위해 트위터 등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목을 받았는데, 종종 소박한 글을 트위터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디어펜=김세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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