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0달러 지폐 얼굴의 주인공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해밀턴'으로 환생(還生)했다. 뮤지컬 '해밀턴'은 올해 '2016 그래미 상(Grammy Award)'과 '2016 퓰리처 상(Pulitzer Prize)' 수상에 이어 지난 6월 1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0회 '토니 상(Tony Awards)' 시상식에서도 뮤지컬부문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을 받으며 11관왕에 올랐다.
이 뮤지컬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의 한 사람이자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정부의 초대 재무부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1755/1757~1804)의 생을 다룬 작품이다. 유명 연예인이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무거운 주제인 역사를 소재로 한 뮤지컬 '해밀턴'이 단기간에 브로드웨이의 정상에 오른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 뮤지컬 전체가 힙합과 R&B, 랩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관람하면서 더욱 많은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뮤지컬의 인기의 중심에는 주인공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드라마틱한 인생 스토리가 있다. 미국 역사를 통틀어 '알렉산더 해밀턴'만큼 극적인 인생을 살았던 인물은 드물다.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가 '해밀턴'을 스코틀랜드 행상인의 사생아라고 부를 만큼 그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가장 낮은 신분 출신이었지만 탁월한 지혜와 담대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미국 정계의 거물로 나설 수 있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 장군 휘하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군인이었던 그는 탁월한 정치력을 가진 연방주의자(Federalist)의 영수(領袖)였으며, 명성 높은 언론인이자 변호사였다. 그러나 '해밀턴'은 그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애런 버'(Aaron Burr) 부통령과의 권총결투에서 총상을 입고 50세도 안 되는 나이로 드라마틱하게 인생을 마감했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으로서 그는 연방은행을 설립하고 독립전쟁으로 빚더미였던 미국의 재정을 회생시키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 재무부 앞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고, 대통령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10달러 지폐의 인물이 됐다. 대통령을 지내지 않은 인물로서 미국 달러에 얼굴을 올리게 된 사람은 '알렉산더 해밀턴'과 '벤저민 프랭클린'(100달러) 두 명뿐이다.
사드배치 문제로 온갖 괴담과 선동이 판을 치면서 후보지조차 확정 못한 채 세월만 보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 모인 경북 성주 군민들이 사드(THAAD) 배치 반대 상경 집회. /연합뉴스
2015년 6월 '잭 루'(Jack Lew) 미국 재무부장관은 오늘날 여성의 사회참여와 사회기여가 지대함에도 미국 화폐에 여성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이유로 10달러 지폐의 인물을 여성으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 금융제도의 초석을 세운 초대 재무부장관을 뺀다는 반대여론에 부딪쳐 10달러 지폐 대신 20달러 지폐 앞면에 있는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초상을 뒷면으로 보내고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흑인 여성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의 초상을 넣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인기 절정의 뮤지컬 '해밀턴'도 한몫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언론은 '알렉산더 해밀턴'을 대통령조차 이긴 인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해밀턴'의 명성 뒤에는 그의 정치철학과 신념이 녹아 있다. '해밀턴'은 1781년 7월 12일 「New York Packet」에서 발행한 'Continentalist No.1'에서 "지속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정부에서도 시민의 권리침해를 방지하려는 노력 못지않게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엄격하게 법을 제정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적절한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 과도한 권한은 독재로 치달을 수 있고 나약한 권한은 사회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이 모두 국민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고 주장했다.
연방주의자로서 1789년 미국 재무부장관으로 취임하면서 그는 신헌법에 의거해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경제정책을 수립하는데 진력했다. 민주주의란 국민의 변덕과 충동적인 분위기에 좌우될 수 있다고 우려한 그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향하는 자신의 신념과 연방헌법 비준을 관철시키기 위해 헌법을 옹호하는 논문 『Federalist(연방주의자)』를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1788년 3월 『Federalist No.70』에서 그는 정부(행정부)가 헌법의 테두리 속에서 현명하고 시의 적절한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치력이 필요함을 아래와 같이 역설했다.
"좋은 정부를 정의(定義)함에 있어서 지도자의 통치력이 최우선 요건이다. 그 통치력은 외세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보전하는 필수요소이며, 또한 안정적인 법 집행의 선결조건이자 정상적인 법치를 훼방하는 권력자들로부터 재산권을 보호하며, 야심, 파벌, 무질서에 의한 모험이나 협박으로부터 자유를 보장하는 선결조건이기도 하다…나약한 통치자는 정부를 무능하게 이끌어 간다. 무능한 통치는 잘못된 통치와 다름없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뭐라고 표현하던 잘못 통치되는 정부는 실제로는 나쁜 정부일 뿐이다." (Alexander Hamilton, Federalist No. 70, "The Executive Department Further Considered", New York Packet, March 18, 1788)
이와 같은 '해밀턴'의 신념이나 주장에 비추어 요즘 '사드' 배치와 관련한 우리 사회의 갈등과 정부의 대응책을 돌아보면 불안하고 암담하기 짝이 없다. 북한이 지난 8월 24일 새벽 SLBM(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해저에서 발사되는 SLBM은 발사 위치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 땅에서 북쪽을 향해 설치하게 될 '사드'로도 요격하기 어려운 위협적인 무기이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사드' 배치 위치 문제로 지역주민들의 눈치나 살피며 우왕좌왕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을 보면 과연 우리 정부에 '통치'의 기능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국방의 문제는 국가 존속에 관한 문제이고, 핵심 군사시설과 무기의 성능과 배치는 국가기밀사항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사드' 배치 위치를 만천하에 공개해 놓고 마치 복지시설이라도 건설하듯 이곳 저곳 주민의 양해와 동의를 구하러 다니는 꼴 아닌가?
우리 헌법도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제37조 2항). 북한의 위협이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벌이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정부의 우유부단한 대응을 보면서 혹시나 국민이 안심해도 좋을 어떤 비책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