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년 8월 23일자 ‘한마디’란에 실린 독자 투고가 있었다. 제목은 “고1 학생, 주말만이라도 자유로웠으면”이었다. 제목만 보고 공감이 갔다.
지금 29세가 된 내 딸도 고등학교 때 설날과 추석 정도만 쉬고 1년에 360일 이상 등교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도 ‘이게 인간의 삶인가’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 아이는 일류 대학 안 가도 좋으니 휴일에 학교 안 보내고 야간 자율 학습 안 시키겠다고 해도 교사들은 막무가내였다. 한 명을 빼주면 다른 아이들까지 동요하여 너도나도 빠져서 자율 학습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니 자더라도 교실에 나와서 자라는 것이었다.
아직도 그런 학교가 있나 하는 생각으로 기사를 읽어봤다. 그러나 그 기사의 내용은 내 딸의 경우와는 좀 달랐다. 간추리면 이런 내용이다.
자사고 1학년 남학생을 둔 학부모인데 주말을 이용해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뵐 계획이었다. 학교에서 토요일마다 성적 우수 학생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생활기록부에 기록하기 때문에 빠질 수 없다며 아들이 난색을 표한다. 평소 야간 자율 학습이다 학원이다 해서 잠도 못 자고 피곤해하는 아이가 늘 안쓰러웠다.
그나마 주말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친구들과 농구도 하면서 밀린 과제를 하고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것에 위안을 삼았는데 그런 주말이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때문에 없어질 상황이다. 자원자에 한한다고 하지만 생활기록부에 기재한다니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을 없다. 대학 입시에 필수적인 생활기록부가 아이들과 가족의 기본적인 생활권을 빼앗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관할 교육청은 학교들의 이런 실태를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글을 읽고 참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글을 신문에 투고를 했으며 조선일보는 무슨 생각으로 지면을 할애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글을 보면 모든 게 자유 의지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고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우수 학생 프로그램에 안 들어갈 수 있다. 평일에 학원에 안 다니면 운동도 하고 잠도 푹 잘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아들이 난색을 표하는 것도 그 아이의 판단이다. 생활기록부를 택할 것인지 조부모 방문을 택할 것인지. 아이는 생활기록부를 택한 것이다.
교육에 관련된 사람으로는 학생, 교사, 학교 당국, 교육 당국, 학부모 등이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바뀌어야 할 사람은 학부모이다. 어떤 선진 교육 정책을 가져다 놓아도 학부모들은 어느 새 구태의연한 방식의 교육으로 바꿔버린다. 논술 교육이 필요하다 하면 논술학원에 보내고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 하면 인성 교육 학원에 보낸다./자료사진=서울대학교 홍보브로셔
성적 우수 학생 대상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를 생활기록부에 기록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대입에서 가산점으로 작용되는지도 알 수 없다. 가산점이 된다 해도 아주 미미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이 점은 생활기록부 중심 전형에 대해 관심 가져본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오히려 노인을 위한 봉사 활동이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동아리 활동이 더 큰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
자신의 자녀를 그 프로그램에서 빼면 될 것을 신문에 투고하고 교육청까지 들먹이며 그 프로그램을 없애달라고 하는 것은 다른 애들까지 공부를 못하게 막겠다는 심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가끔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해 개탄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교육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사교육 안 시키려고 자녀를 외국으로 보낸다는 사람도 있다. 사교육비 무서워 아이를 못 낳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교육은 철저히 자신의 선택에 의해 실시되는 교육이다. 그 누구도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라고 등 떠밀지 않는다. 심지어는 우리나라 교육 정책의 상당 부분은 사교육을 줄이는 쪽으로 맞춰져 있다. 또 사교육이 돈을 투자한 만큼 효과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실력과 품성이 검증되지 않은 교사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공간에 자녀를 맡기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교육에 지쳐버린 아이는 공교육 교실에 가서 엎드려 잔다. 교사들도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사교육을 시키면서 경제적으로 허덕이고 자녀들을 안쓰러워한다. 사교육 현장에 내둘리며 책가방 운전수 노릇을 하는 것보다 조부모나 부모와 시간을 더 보내는 것이, 친구들과 건전한 모임을 갖는 것이 교육적으로 더 필요한 일이다. 실제로 자기소개서를 쓰는 대입 전형에서도 그런 걸 원하고 있다.
그런데 왜 부모들은 그걸 모르고 자신에게, 자녀에게 어처구니없는 피해를 끼치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일단 아이가 어디선가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부모는 마음이 놓인다. 야간 자율 학습을 원하는 부모들도 그런 심리에서이다. 학교에서 놀던 학원에서 자던 상관없이 집에서 노는 꼴만 안 보면 맘에 놓인다는 것이다. 또 돈을 들이면 뭔가 부모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릇된 정보에 휩쓸리는 경우도 많다. 오전 시간 브런치를 즐기며 아이들 친구 엄마들끼리 나누는 정보 중에 진짜 아이한테 도움이 되는 것은 많지 않다.
사교육은 철저히 자신의 선택에 의해 실시되는 교육이다. 그 누구도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라고 등 떠밀지 않는다. 심지어는 우리나라 교육 정책의 상당 부분은 사교육을 줄이는 쪽으로 맞춰져 있다. 또 사교육이 돈을 투자한 만큼 효과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사진=미디어펜
교육에 관련된 사람으로는 학생, 교사, 학교 당국, 교육 당국, 학부모 등이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바뀌어야 할 사람은 학부모이다. 어떤 선진 교육 정책을 가져다 놓아도 학부모들은 어느 새 구태의연한 방식의 교육으로 바꿔버린다. 논술 교육이 필요하다 하면 논술학원에 보내고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 하면 인성 교육 학원에 보낸다. 체육 교육이 필요하다 하면 농구나 축구는 물론 줄넘기까지 학원에 보내서 해결한다. 그리곤 사교육비에 등골이 휜다하고 그것이 정부와 사회의 잘못이라고 투정한다.
자녀 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싶은 학부모라면 남의 탓하고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사교육이나 학교의 특별 프로그램에 보내고 싶으면 아무 말 없이 보내면 된다. 또 보내기 싫으면 안 보내면 된다.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이다. 아이들과 가족의 기본적인 생활권을 빼앗는 생활기록부나 대입은 없다는 얘기다. /황인희 두루마리역사교육연구소 대표
(이 글은 자유경제원 자유북소리 '교육고발'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황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