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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평화타령, 결국 한반도 재앙 낳는다

2016-09-07 09:23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요즘 한국사회의 가장 우려할만한 흐름은 평화운동이다. 가히 망국적 징후인데,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좌익세력이나 경북 주민들만이 그런 게 아니다. 공당(公黨) 정치인들도 평화 타령이다. 국회의장 정세균은 "가장 정의롭지 못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며 평화 지상주의를 역설해 논란을 빚었지만, 국민의당 박지원은 김대중(DJ)의 이름까지 팔았다.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 사드에 반대해야 한다는 DJ의 음성이 (내 귀에) 들려온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악은 중앙일보의 평화 캠페인이다. 7월 내내 평화협정 나팔수를 자처하던 이 신문은 후속으로 소설가 황석영-이문열 등 지식인을 동원해 이른바 '평화 오디세이'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평화, 명분 좋고 그럴싸하다고? 아니다. 삼류 정치인과 언론이 떠드는 가짜 평화론(pseudo pacifism)의 구조와 폐해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 평화 문제는 어느덧 대한민국 체제수호의 최전선으로 부각됐는데, 미디어펜은 이 구조를 점검하는 '중앙일보 평화 캠페인 왜 문제인가?' 3부작 연속칼럼을 싣는다. [편집자]

[연속칼럼 ②]-중앙일보 평화 캠페인 왜 문제인가?

조우석 주필

한국사회에서 평화 지상주의 이념을 정식화한 사람은 뜻밖에도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다. 그는 퇴임 이듬해인 2008년 말, 10·4 남북정상 선언 1주년 모임에서 오래 준비해온 원고 하나를 발표했는데, 거기에 담긴 평화주의 구상에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로선 반역정치인 노무현의 멘탈리티를 스캔해볼 기회인데, 포인트는 그의 종북 반미노선 등 이념 편향성을 감싸는 포장지가 우연치 않게도 평화 지상주의란 점이다. 흥미롭게도 지금 평화 캠페인에 몰두하고 있는 중앙일보를 포함해 그 매체에 참여한 헛똑똑이 지식인과 야당 정치인들의 논리 역시 노무현의 것과 거의 판박이다. 당시 노무현 말이 이랬다.

"승공통일의 사고를 넘어서야 합니다. 대결주의도 그만해야 합니다.… (남북통일 등) 통합을 위해서는 (대한민국) 주권의 일부를 양도할 수 있고, 그게 항복도 이적행위도 아니라는 인식을 수용해야 합니다. 국가주의 사고를 넘어서야 합니다."

평화주의 이념을 정식화했던 노무현

무시무시하다. 이 정도면 헌법 4조가 명문화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몽땅 해체하자는 제안이다. 국가 주권까지 내놓자는 헛소리도 놀랍지만, 그동안 지켜온 가치를 국가주의-대결주의라며 대한민국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대담무쌍함은 또 뭔가? 당시 노무현은 <진보주의 연구>란 책을 구상했다는데, 불발된 그 책의 몸통이 평화 지상주의였으리라.

눈여겨 볼 것은 그게 중앙일보 '평화 오디세이' 연재물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일테면 전 국회의장 정의화와 소설가 황석영 등이 "(남북간) 흡수통일 대신 합수(合水)통일로 가야한다"며 의기투합을 했다는데 그게 노무현의 발가벗은 평화 지상주의와 닮았다.

북한의 SLBM(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성공에도 평화협정 나팔수를 자처하던 중앙일보가 소설가 황석영-이문열 등 지식인을 동원해 '평화 오디세이'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이게 무얼 말해줄까? 평화 지상주의란 정상적 사고를 막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무장해제시키는 원흉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을 더 내딛으면 국가보안법 철폐가 나오고, 주한미군 철수 내지 위상(位相) 변경 그리고 한미연합사 해체 내지 전작권 환수로 줄달음친다.

이 모두가 노무현이 추진했고, 그 직전 김대중이 건드렸던 아이템들이다. 또 내년 대선 승리 이후 이른바 '2018년 체제' 국면에서 써먹을 카드라는 점에서 가슴 철렁하다. 그게 아니면 경북 성주-김천 주민처럼 무작정 한반도 사드 반대 구호를 외치니 한국사회에 최악의 재앙을 몰고 올 것이 너무도 분명한 움직임이다.

그 흐름은 일조일석에 된 게 아니다. 시작은 민간부문이 아니고 햇볕정책의 김대중과, 포용정책을 앞세운 노무현의 두 좌익정부다. 국제사회가 반(反)인도적 범죄집단으로 규정한 평양 앞에 "노!" 대신 입에 발린 평화를 앞세워 저들과 야합을 했던 기만적 정부가 그들이니까.

평화주의의 맹점 지적한 니버의 경고

이후 20년 내외, 평화지상주의 허상에 오염된 좌익-야당과 위선적 리버럴리스트들이 왕창 세를 불렸고, 중앙일보는 뒤늦게 거기에 묻어가는 중이다. 이제 본론이다. 차제에 얼치기 평화주의(pseudo pacifism)의 철학적 뿌리는 대체 무얼까? 전투적 자유주민주의자 '올인코리아' 발행인 조영환(60)이 필자에게 직접 들려준 말이 핵심을 찌른다.

"현대 정치윤리사상사에서 평화주의 문제를 가장 많이 고민한 사람이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다. 그는 젊은 시절 평화주의를 신봉했지만 히틀러와 공산주의를 경험한 뒤 바뀌었다. 인간과 사회에는 악성-잔인성이 분명 존재하는데 그것에 눈감는 건 거짓된 낙관주의에 불과하다는 발견이다."

니버가 볼 때 평화 지상주의는 진정한 평화 구축에 항상 실패한다. 왜? 관념놀이에 빠져 인간과 사회를 낭만적 낙관주의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위선과 허세가 전매특허인 좌익의 멘탈리티가 본래 그렇다. 마르크스를 포함한 좌익은 유토피아적 낙관을 전제로 '완전개조'와 '무한실험'을 꿈꾸지 않았던가? 그게 끝내 재앙을 낳는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일테면 마오쩌둥처럼 눈이 뒤집혀 문화혁명을 감행하고, 중앙일보처럼 평화 타령의 나팔수를 자처한다. 본래 우익은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현실주의(realism) 노선을 걷기 마련인데, 보수주의 철학의 아버지인 에드먼드 버크가 그러하지 않았던가? 좌익의 논리는 그것과 전혀 다르다.

평화지상주의가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도 넘은 평화타령은 자유민주주의를 무장해제 시키는 원흉이다. /사진=연합뉴스


'제2의 쭝딘쥬'는 한국에도 있다

이렇게 보면 요즘 중앙일보는 좌익 매체로 전향한 게 맞긴 맞다. 오너 홍석현을 포함한 구성원의 멘탈이 모두 바뀌었고, 필자의 구색도 완전히 그쪽이다. 일테면 중앙일보의 색깔은 (사)한반도평화포럼와 썩 잘 어울린다. 물론 그곳 인사들이 몽땅 좌익으로 득실댄다. 공동이사장엔 DJ 시절 장관을 지낸 임동원, 원탁회의의 좌장인 전 서울대 교수 백낙청이 포진했다.

그 아래엔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과 이종석 그리고 연세대 교수 문정인 등이 보이는데, 모두 좌익정부 시절 키워진 평화타령론자들이다. 중앙일보가 그들과 잘 노는 걸 필자가 굳이 방해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게 중앙일보의 정체성을 까먹는 정치적 자살골에 불과하다는 당초의 경고를 재확인해둘 뿐이다.

그리고 조언을 해줄 게 하나 더 있다. 요즘 나는 이 모든 평화 지상주의 드라이브를 뒤에서 좌지우지하는 그 회사 오너 홍석현과 이미지가 썩 잘 매치되는 역사 속의 인물 하나를 찾아냈다. 패망 직전 월남의 대선 후보이자 인권변호사였던 쭝딘쥬(張廷裕)다.

그는 1967년 대선에서 2위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스스로 민족주의자에 불교도 그리고 평화주의자로 포장했다. 그리곤 떠들어댔다."우리 민족은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외세마저 끌어들여 동족의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월맹과 대화를 통해 평화를 가져오겠습니다."

그의 평화타령은 위력이 컸다. 키신저-레툭토 사이에 1973년 파리평화협정이 맺어진 것도 쭝딘쥬가 바람을 잡은 탓이다. 당시 월남은 형편없는 거지군대를 가진 공산 월맹 따위를  무시한 채 평화의 신기루에 취해있었고, 그런 게 쭝딘쥬 같은 위선적 평화 지상주의자들이 불어넣은 헛바람 탓임을 물론이고, 2016년 대한민국이 꼭 그걸 닮아가고 있다.

자, 월남 패망은 그렇게 해서 찾아든 최악의 디스토피아였던 셈인데, 놀라운 사실 하나가 있다. 그가 거물급 비밀 공산 프락치였다는 사실이 탄로났다. 월남 패망 이후인 1978년 미 FBI는 쭝딘쥬를 간첩 혐의로 미국에서 체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중앙일보 평화 캠패인의 총지휘자인 홍석현 회장으로선 자신이 제2의 쭝딘쥬로 비유되니 썩 유쾌하지 않겠지만,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를 잘 유념해보길 권할 뿐이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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