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자기 가족 아플 때 보낼 곳 없는 나라
2살배기 아이가 13군데 병원에서 치료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교통사고를 당한 2세 남자아이의 수술을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사망한 것이다. 의사도 자기 가족이 아플 때 보낼 병원이 없는 나라다. 겉보기에는 소아외과 의사가 부족해서 일어난 사건으로 보이지만 본질은 다르다.
한 아이가 사고로 유명을 달리 한 이런 안타까운 상황은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앞두고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본질은 우리나라 의료보건체계의 사회주의화에 있다.
우선 교통사고 외상은 즉시 적극적이고도 적합한 치료가 진행되어야 한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위중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응할 의료체계가 전무하다. 소아외과의의 명맥이 끊긴 탓이지만 그 원인은 의사라도 아무런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의노이기에 그렇다.
불철주야 외상 환자를 수술하는 의사들은 밤낮 예고 없이 일을 하는 가운데 수술대에서 환자를 살리거나 잃는다. 그들은 보호자나 환자에게 싫은 소리 듣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막무가내로 멱살을 잡히기도 한다. 의사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업이라고들 치부하지만 21세기 한국에 히포크라테스는 존재할 수 없다.
소아 중증 교통사고 수술은 당직 내과, 신경과, 정신과, 이비인후과 의사가 아무리 많아도 소아외과 의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중증 외상환자를 살려내지 못하면 수억 대 소송에 휘말리는 것이 다반사다. 모든 것이 의사 탓이다? 의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이 외상외과의 현실이다.
병원 입장에서 금방 죽을 것 같은 환자는 맡지 않고 전원 시키는 게 무조건 이익이다. 데리고서 정성껏 치료하면 손해이기 때문이다. 환자를 살려봤자 적자고 환자가 죽게 되면 온갖 법적 책임을 뒤집어쓴다. 사명감과 양심으로 하더라도 환자로부터 온갖 도둑놈에 살인자 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나라 민도의 현실이다.
보건복지부와 심평원, 건강보험공단은 거두어들인 세금과 의료보험금으로 성과급 잔치를 하는 등 엉뚱한 데 돈을 허비하며 흑자 재정이라고 자랑할 때가 아니다.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삽시간에 죽어나가는 응급실과 산부인과 등 열악한 과에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사진=연합뉴스
더욱 심각한 문제의 본질은 우리나라 보건체계가 의료사회주의라는 것에 있다.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은 사람 살리는 가격을 정해놓았다. 이 때문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외상외과는 지난 수년 간 축소되어 왔다. 보건복지부와 심평원 공무원들은 이러한 예고 살인을 방치해 왔다. 병원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가격을 묶어놓았다.
병원의 경영자도 한 가정의 가장이다. 적자 보는 의료행위는 줄일 수밖에 없다. 당연한 선택이다. 응급실 인원들은 교대근무를 해야 하고 통상적인 병원보다 사람 수도 많아야 하며 초과근무수당도 더욱 줘야 한다. 과별로 교수나 펠로우, 전문의급은 아니더라도 응급 조치를 취할 인원이 필요하다. 응급실 운영은 돈 먹는 하마인 셈이다.
보건복지부와 심평원, 건강보험공단은 거두어들인 세금과 의료보험금으로 성과급 잔치를 하는 등 엉뚱한 데 돈을 허비하며 흑자 재정이라고 자랑할 때가 아니다.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삽시간에 죽어나가는 응급실과 산부인과 등 열악한 과에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돈이 없다면 사람 목숨이 오고 가는 위중한 현장에서 속절없이 죽어나간다. 응급실은 환자가 없어도 24시간 돌아가야 한다. 사용하지 않아 유통기한 지나 버릴 의약품도 언제나 구비해야 한다. 넓은 공간과 소독 및 관리인력 또한 필수다.
의사들은 수년 전부터 계속해서 이런 사태를 예견했고 목소리를 내 왔다. 이제는 시민 모두가 이런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부에게 요구할 때다. 곳곳에 죽음의 위협이 널려 있다. 의료사회주의化로 야기되는 더 이상의 예고살인을 거부해야 한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연구위원
교통사고 외상은 즉시 적극적이고도 적합한 치료가 진행되어야 한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위중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응할 의료체계가 전무하다./사진=보건복지부
[김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