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3일 피의자신분으로 특검 조사를 받은 뒤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박근혜 대통령과 대기업의 뇌물수수 의혹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16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가운데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까지 뇌물의 범주에 포함함에 따라 다른 연루 대기업들도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고 있다.
기업들은 청와대의 압박으로 출연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강조해왔지만 특검은 주요 대기업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도 뇌물로 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삼성 외에도 SK와 롯데를 포함한 다수의 대기업에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문제는 특검의 '뇌물죄' 잣대가 적용되면 주요 대기업 상당수가 특검 수사의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17일 특검과 재계에 따르면 두 재단에 출연한 기업은 총 53곳으로, 출연금 규모는 미르재단 486억원, K스포츠재단 288억원이다. 삼성이 204억원으로 가장 많고 현대차 128억원, SK 111억원, LG 78억원, 포스코 49억원, 롯데 45억원, 한화 25억원 등이다.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해 11월 최씨 등을 기소하며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두 재단에 출연금을 낸 게 박 대통령의 부당한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따른 결과로 판단했다. 대기업들을 박 대통령의 직권남용 범죄의 피해자로 본 것이다.
하지만 특검팀은 삼성 수사 과정에서 얻은 새로운 증거를 중심으로 삼성이 두 재단에 낸 돈을 뇌물로 판단했다. 뇌물액은 최씨의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와 최씨 조카 장시호씨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등 430억원으로 집계됐다.
특검팀은 이 돈을 박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압력을 넣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해준 데 대한 대가로 보고 있다.
이를 두고 특검이 검찰과 다르게 판단한 것은 두 재단의 출연금을 포함해 삼성이 낸 돈과 삼성 계열사 합병의 연결고리를 찾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도 대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이 뇌물일 가능성에 주목했지만, 확실한 사실로 밝혀진 것만 공소장에 넣고자 뇌물 판단을 보류하고 수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기소한 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특검팀이 공소장 변경 등의 방식으로 검찰과는 다른 법적 판단을 반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검팀은 삼성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는대로 SK와 롯데 등 다른 대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특검팀은 SK는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당시 최태원 회장의 사면이 중요 현안이었고, 롯데는 면세점 인허가를 따내는 게 과제였다는 점에 비중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 재계는 삼성, SK, 롯데에 이어 다른 기업에까지 수사가 확대되면 과잉수사로 인해 주요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당분간 마비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글로벌 통상환경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확실한 가운데 우리 기업만 손발이 묶이게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이 범법행위를 했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받아야 할 것"이라면서도 "특검이 여론몰이에 밀려 현실과 동떨어진 결론을 낸다면 국가 경제에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특검팀은 재계를 중심으로 한 우려를 감안한 듯 입건 범위는 최소화하고 조사도 특검 수사 대상과 관련된 부분에 한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 부정한 청탁 여부, 금액 등을 두루 고려해 판단, 신중히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