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해 최후변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탄핵심판 최종변론(24일) 일정이 잡혔고, 이에 따라 3월13일 이전 선고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 대통령의 헌재 최후변론 출석 여부가 막바지 변수로 부상했다.
청와대는 지금 출석 여부에 따른 이해득실과 상황 변화를 검토 중인데, 분명한 것은 이 문제가 박영수 특검팀의 대면조사(다음 주초로 예정)와 함께 탄핵 선고와 특검수사에 최종 고비란 점이다. 다음 주를 '운명의 일주일'라고 부르는 건 과장이 아니다. 이중 상대적으로 특검 대면조사는 심플하게 정리된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뇌물수수 혐의를 설득력있고 논리적으로 부인하면 된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그걸 도와주라고 지시한 적 없으며, 미르·K스포츠 재단 역시 문화융성 정책 차원임을 강조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헌재 최종변론 여부는 확정해진 게 없다.
대통령의 입으로 진실을 재확인하라
지난 주말(16일) 헌재에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대통령이 직접 출석하는 카드를 언급하자, 헌재가 그 경우 국회 측과 재판부의 질문을 받아야 한다고 말을 주고받은 게 전부다. 참고로 한 달 전 정규재TV와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헌재 출석 여부는 검토된 바 없다"고 했지만, 지금 상황은 유동적이다.
차제에 필자의 견해를 제시하자면,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해 최종변론을 박근혜 정치인생의 승부수로 삼으라는 쪽이다. 그 자리는 사실관계를 따지는 것 이상의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만에 하나 탄핵이 인용될 경우를 가상해보자.
최순실 게이트란 고영태 일당의 기획폭로라는 인식이 높아졌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본질은 고영태 일당 기획폭로를 계기로 검찰-언론-민노총-야당 등이 합작한 정치쿠데타에 가깝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은 헌재 최종변론에 출석해 당당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탄핵 인용 때 그 헌재 최종변론 자리는 대통령이 국민 앞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마지막 무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자리에서 소신을 당당하게 드러낼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순 없다. 그건 법률적 이해득실의 차원을 넘어선다. 자연인 박근혜, 정치인 박근혜의 속마음과 올곧음을 당당하면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이미 절반의 성공이다.
지금 당신이 무엇이 두려운가? 만에 하나 탄핵 인용 선고가 내려지는 시나리오? 지난 몇 개월 수모와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그리 두려운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대통령직을 수락할 때의 그 기개로 자신의 국정 4년이 한 치의 흩트러짐이 없었고,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으로 일관됐음을 밝히면 더욱 좋다.
물론 탄핵 사유의 일부는 인정할 수도 있고, 국민들의 마음고생을 시키고 국정혼란을 가져온 것에 대한 진솔한 유감의 뜻도 밝히면 좋다. 아무리 생각해도 헌재 출석과 최후변론은 대통령으로서 회피할 이유가 없는데, 더욱이 지난 1개월 새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점점 세를 더해가는 태극기 집회를 보라. MBC-한경 등 용감한 매체의 잇단 보도에 힘입어 최순실 사태의 개념규정 자체도 바뀌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란 고영태 일당의 기획폭로라는 인식이 높아졌다. 대통령 탄핵 사태 본질은 고영태 일당 기획폭로를 계기로 검찰-언론-민노총-야당 등이 합작한 정치쿠데타에 가깝다.
태극기 민심만이 그걸 가늠하는 게 아니다. 국가변란에 동조한 세력들인 검찰-언론-민노총-야당 등도 도둑이 제 발 저리고 있다. 다만 피해 당사자인 대통령이 공식적인 자리에 출석해 당신의 입을 열어 발언할 경우 보다 정당성을 얻게 되고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
달리 말해 한 달 전 1인 매체 정규재TV와의 인터뷰는 썩 좋았던 기회였지만, 한계도 없지 않았다. 당시 박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는 거짓말로 쌓아올린 산"이고, "엮어도 너무 엮은 것"이라고 밝힌 것 등은 분명 맞는 진단이고 공감도 낳았다. 아쉽게도 "그래보니 자기들끼리의 주고받는 얘기에 그친 게 아닌가?" 하는 일부 뒷말을 낳았다.
2월18일 13차 태극기 집회에서 "국정농단 조작 고영태…숨긴 검찰은 내란죄"라는 피켓이 등장했다. /사진=미디어펜
"박근혜의 뒷심을 보여달라"
때문에 앞으로 제3의 대중집회를 선택해 대통령이 나서 연설을 한다고 해도 그 역시 정치적 선동의 하나로 치부되며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에 비해 헌재 출석과 최종변론은 최상의 무대다. 지금의 국내 정치상황에서 가장 보편성과 법적 정당성을 확보한 자리다. 이점 논란의 여지가 없다.
"태극기 집회 다녀왔습니다. 오늘 제가 느낀 점을 말씀드리면,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 자리라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리를 거두는 것 역시 하늘의 뜻입니다. 대통령은 담대해야합니다. '역사는 나를 정당하고 바른 지도자로 인정할 것'이라는 신념이 대통령에게 있어야 합니다."
어제 오후 후배가 보내온 문자메시지인데, 그게 울림이 컸다. 태극기 집회에 다녀온 뒤 교회에 가서 기도를 올리면서 그런 생각을 다시 했다는 전갈이다. 나에게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 자리"라는, 다분히 봉건적 발상조차도 가슴에 와 닿았다.
양형(量刑)을 전공한 40대 법학박사인 그도, 60대 저널리스트인 나도 소용돌이치는 한국정치의 이 놀라운 변칙적 상황 전개를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잠시 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절절한 내용을 담은 그의 문자메시지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주문하는 뒷부분에 악센트가 있다, 그걸 오늘 이 칼럼의 마무리로 삼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거리에서 정치를 시작한 분입니다. 헌재 최종변론에서 서릿발 눈빛으로 헌재 재판관 8명 앞에서 최종변론을 하셔야 합니다. '나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대통령이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어야 2주간의 헌재 평의(評議)에서 재판관들이 이 역사적 재판의 엄중함을 새삼 인식할 것입니다. 부디 하늘이 허락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