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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봉호 뱃길 연 文정부…대북제재 빗장 풀며 북미대화 추진 '무리수'

2018-02-06 16:06 | 김소정 부장 | sojung510@gmail.com
[미디어펜=김소정 기자]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한에서 공연할 북측 예술단이 만경봉-92호로 6일 오후 5시쯤 강원 묵호항으로 입항했다. 정부가 양양에서 원산을 잇는 하늘길을 연 이후 남북을 잇는 뱃길마저 열면서 대북제재 무력화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 예술단 140명을 태운 만경봉-92호의 입항은 지난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정부가 단행한 5.24 대북제재 조치인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전면금지’를 위배한다.

앞서 아시아나 전세기의 북한 원산 갈마비행장 이용도 미국 정부가 대통령 행정명령 형식으로 마련한 독자 대북제재 중 ‘외국인이 이해관계가 있는 항공기는 북한에서 이륙한지 180일 안에 미국에 착륙할 수 없다’는 조항을 위배했다.

정부는 이번 만경봉-92호 입항과 관련해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예외를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남한 내 일각과 미국 정부에서도 대북제재 빗장을 쉽게 풀어선 안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평창올림픽이 북한의 참가를 계기로 평화올림픽으로 개최되고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이번에 북한의 일방적인 통보 등 오만한 태도와 거기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우리 정부의 대처가 오히려 ‘장단 맞추기’라는 비판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먼저 예술단 방남 경로를 볼 때 북한은 당초 판문점 통과를 제안했다가 다시 경의선 육로를 제안했고, 결국 만경봉-92호에 태워 동해 뱃길을 통해 내려보냈다. 이미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왕래한 경의선 육로나 동해 뱃길은 우리측 독자제재의 일환인 개성공단 폐쇄와 5.24 조치로 인해 끊어졌던 길이다.

특히 이번 만경봉-92호 입항은 5.24 대북제재 조치를 무력화시키는 상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5.24 조치의 경우 북한의 다른 도발과 달리 천안함 폭침사건에 따른 것으로 북한은 아직까지 이를 자신들의 소행으로 시인하고, 사과나 재발방지를 약속한 바 없다.

정부는 예술단이 머무는 동안 난방과 선박의 귀환에 필요한 유류를 만경봉 92호에 공급키로 했다. 우리측에서 식자재를 제공하는 것은 지난달 15일 남북 예술단 실무접촉에서 “남측은 북측 예술단의 안전과 편의를 최대한 보장한다”고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유엔이 대북 정유제품 제공 상한을 제안한 조치의 ‘힘 빼기’ 일환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예술단 본진이 6일 만경봉 92호를 이용해 방남할 예정이라고 5일 오전 통일부가 발표했다. 사진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측 응원단이 이용한 만경봉호의 입항 모습./사진=연합뉴스



이런 과정에서 북한은 일방적으로 약속된 일정을 취소하는 등 주도권 잡기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것도 밤 늦은 시간에 느닷없이 통보해서 우리 정부가 이를 그대로 언론에 전파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현송월의 방남도 이런 식으로 하루 연기됐고, 금강산 남북 합동문화공연도 전격 취소됐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포함된 북측 고위단 방남 통보도 마찬가지였다. 

현송월의 방남이 하루 연기됐을 때 정부는 다음날 ‘이유를 밝혀달라’는 전통문을 북측에 보냈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북한의 답변을 받은 바 없다. 

특히 정부는 6일 당일까지도 방남하는 만경봉-92호에 승선한 인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날 통일부는 “북한예술단 114명을 포함해 추가되는 지원인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지만, 승선 인원과 명단은 물론 이 배가 어느 항에 얼마간 정박할지 혹은 곧바로 북으로 돌아갈지 등도 파악하지 못한 채 “입항하면 확인 절차를 거칠 것”이라고만 답했다.

북한예술단의 공연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보인다. 이들을 이끄는 현송월 단장은 이미 2015년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체제 선전 영상 문제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공연 3시간여 전에 취소한 사건의 인물이다. 하지만 정부는 북한에 미리 물어보거나 확인하지도 못한 채 밤늦게라도 통보가 오면 그저 받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달 31일~이달 1일 남측 선수들이 마식령스키장을 오가기 위해 동해 직항로가 처음 열린 이후 북한 예술단이 경의선 육로와 동시에 만경봉-92호로 입항한 것이 금강산관광 중단과 5.24조치, 개성공단 폐쇄 등 우리의 독자 대북제재의 빗장을 하나씩 풀겠다는 의도로 보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 국제관계국장은 5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만경봉-92호를 한국 항구에 입항시키는 것에 대해 북한의 주된 목적에 대해 “5.24 조치를 위반하는 선례를 만들려는 데 있다”면서 “한국의 대북 독자제재 해제에 초점을 맞추고 더 나아가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 대표단 단장 자격으로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할 예정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방한 중 경기 평택 천안함기념관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게다가 펜스 부통령은 개회식에 북한에서 억류됐다가 식물인간 상태로 풀여난 직후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도 초청했다.

5일(현지시간) 페루를 방문 중인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펜스 부통령을 비롯한 미 관리들이 평창에서 북한 대표단 인사들과 만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냥 지켜보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봐야 한다”고 답한 것을 볼 때 미국은 이번 평창올림픽 계기로 한국에서 벌어질 북미대화에 큰 기대를 갖지 않은 모습이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이용해 자신들에게 취해진 대북제재 조치들을 하나씩 무력화시키는 제스처를 취하는 데도 정부가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면 향후 ‘한반도 문제 운전석’을 북한에 내줄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지금까지 정부는 북한의 의사를 언론과 미국에 전달하는 ‘중재자’ 역할에 충실했을 뿐으로 결국 ‘포스트 평창’은 북미대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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