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공정거래위원회가 오는 8월 26일까지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404만2758주 전량을 처분하라고 요구한 가운데 과거와 달라진 공정위의 잣대가 도마 위에 올랐다. 또 기업의 사적 재산인 지분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공정위는 지난 26일 ‘삼성’에 ‘합병 관련 순환출자 금지 규정 해석지침’의 유권해석 변경 결과를 통보, 이를 준수할 수 있도록 6개월의 유예기간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삼성SDI는 “유예기간 내에 처분하는 방침을 고민하겠다”고 발표했지만 5417억원에 이르는 주식을 어떻게 처분해야 될지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공정위와 업계에 따르면 앞서 공정위는 지난 2015년,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삼성SDI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확보한 삼성물산 주식 904만주를 순환출자 ‘강화(지분증가)’로 판단했다.
당시에는 순환출자 고리 내 소멸법인인 삼성물산과 고리 밖 존속법인 제일모직이 합병되면서 기존 ‘삼성SDI→옛 삼성물산→삼성전자’의 순환 고리가 ‘삼성SDI→통합된 삼성물산→삼성전자’로 바뀐 것에 대한 순환출자를 ‘지분 강화’로 볼지, ‘신규 형성’으로 판단할지에 대한 논란이 분분했다.
합병에 의한 계열출자 발생 경로./사진=공정거래위원회 제공
‘강화’로 판단되면 삼성 SDI는 합병으로 늘어난 삼성물산 지분만 매각하면 되지만, ‘신규 형성’이 될 경우 삼성물산 지분 전체를 매각해야 했다.
당초 공정위는 이를 ‘강화’로 판단, 삼성SDI가 추가로 확보하게 된 삼성물산 지분 2.6%를 처분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삼성SDI는 지난 2016년 삼성물산 지분 2.6%인 500만주를 처분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김상조 공정위원장의 공정위는 돌연 입장을 번복해 ‘강화’가 아닌 ‘형성’으로 판단을 바꿨다. 그리고 나머지 404만주도 8월 말까지 처분하라는 통보를 내렸다. 이는 지난 23일 종가 기준 5417억원에 이르는 금액이다.
삼성 SDI가 유예기간 내에 삼성물산 주식을 매각하지 않으면 과징금을 내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회사 간 합병이 발생하는 경우 이번 예규에 따라 공정거래법을 집행할 계획”이라며 “합병이 예정된 기업집단은 예규를 충분히 숙지해 법 위반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정위의 판단 번복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순환출자와 관련한 공정위의 잣대가 과거와 달라졌다”며 “삼성은 지난 정부에서 내린 지침대로 이행을 했는데, 한번 결정한 것을 또 바꾸는 것은 신의원칙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일관된 행정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모범적인 지배구조는 없다”며 “때문에 이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삼성물산 지분을 당장 어떻게 처분할지도 걱정이고, 그 과정에서 삼성물산의 주가가 폭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조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정책이 기업의 성장에 도움이 되냐는 것인데, 삼성SDI가 삼성물산 주식을 판다고 해서 경영성과가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나설 이유가 없다”며 “지분에 대해선 ‘사적자치’를 보장해주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