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다시 만날 것이라고 밝히면서 청와대는 ‘협상 재개’, ‘톱다운’, ‘제재의 틀 유지’라는 세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최종 상태와 로드맵에 대해 한미 간 입장이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를 볼 때 문 대통령의 이번 워싱턴 방문은 3차 북미정상회담의 조기 개최를 설득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청와대는 톱다운 방식을 강조하면서 대북제재 유지에서 미국과 이견이 없음을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에 나서기에 앞서 미 외교안보 라인으로 꼽히는 ‘핵심 3인방’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면담한 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따로 만난다.
3차 북미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도 이번에 함께 조율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5월 말 나루히토 일왕 즉위와 6월 28~29일 오사카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두달 연속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 따라서 청와대는 이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방문은 물론 판문점에서 3차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계획이 성사될 경우 4월11일 한미정상회담, 4월 말 판문점선언 1주년 계기 4차 남북정상회담, 5월 말 판문점 3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빅 이벤트도 예상해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1월30일 오후(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코스타 살게로 센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청와대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문 대통령에게 미국의 ‘빅딜’과 북한의 ‘스몰딜’ 중 어느 한쪽을 포기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다. 하노이회담에서 ‘노딜’을 기록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이어가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그 조건 또한 만만치 않아졌기 때문이다.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빅딜’ 문건을 건네면서 비핵화 대상에 생·화학무기를 포함시켜 모든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북한은 일단 영변 핵시설 폐기만 이행할 수 있으며, 그 대가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일부 해제해달라고 주장했다.
이런 북미 사이에서 촉진자로 나선 문 대통령에게 미국정부의 빅딜 주장을 포기시킬 카드가 준비돼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앞서 청와대는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좋은 합의)’을 언급하며 ‘연속적 조기 수확’(early harvest)을 제시한 바 있지만 이는 그동안 정부가 주장해온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과 다르지 않다. 다만 앞에 ‘연속적’이라는 말을 붙였으므로 조기 수확을 가능하게 하려면 ‘비핵화 로드맵’부터 도출하는 것이 순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크리스토퍼 힐 전 6자회담 미측 수석대표는 8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미북은 먼저 최종 결과에 대한 ‘프레임 워크’(framework·기본틀)에 합의해야 한다”고 말해 ‘포괄적 목표’에 대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접점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정책조정관도 같은 방송에서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향한 포괄적 로드맵을 마련하고 첫번째 조치로 북한의 핵동결이 필요하다”며 “한국은 북한에게 미국과 실무협상에 나서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난 하노이회담을 계기로 양측의 패가 다 공개된 상황인데다 북미정상회담 결렬은 트럼프행정부의 집단적 사고의 결과라는 점에서 청와대가 준비한 ‘톱다운 식 대화 이어가기’를 미국정부가 선뜻 수용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재 미국이나 북한 모두 대화를 유지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미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도 미국정부는 ‘FFVD를 달성할 때까지 대북제재를 통한 최대한 압박’을 예고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9일(현지시간) “대북외교를 통해 미국 정부가 얻고자 하는 목표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며 “FFVD가 이뤄질 때까지 제재를 통한 최대한의 경제적 압박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는 북미대화의 동력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정상간 대화, 즉 톱다운 식 회담이 이어지는 와중에 어느 한쪽이라도 통 큰 합의를 수용하거나 북미가 대화를 지속하는 가운데 상대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노이회담 전후로 미국에서 나온 발언을 볼 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개념 합의 및 로드맵 도출이 선결 과제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개념에 대한 합의하는 방법은 북한의 모든 핵‧미사일 프로그램 동결로 시작되어야 한다. 북한의 이 같은 조치가 확인된 이후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조치와 정부가 말하는 ‘조기 수확’ 적용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미국정부를 먼저 설득하러 나선 문 대통령이 12일 밤 귀국한 뒤 북한과도 연쇄접촉 하는 추진력을 얻어올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의 다음 수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회담을 갖거나 대북특사 파견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