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은 지난 2년6개월 동안 1심 54회, 2심 18회 등 72차례 법정 출석을 했다. 재판 준비, 청문회 등으로 허비한 시간까지 더하면 사실상 하루하루를 법의 칼날 위에 서 있는 나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국정 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또다시 이재용 회장은 경영과 법정을 오가는 기구한 신세가 됐다.
삼성은 그동안 사법 리스크에 발목을 잡히면서 미래먹거리를 찾는 사업이 무산되거나 많은 기회를 놓쳤다. 오너 리스크로 인해 하루하루가 전쟁터인 글로벌 경쟁에서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이 부회장은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후 총력을 다해 뛰었다. 공격적인 투자와 경영활동에 전념하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다시 뛰는 이 부회장의 발목을 다시 사법부가 잡았다. 불확실성이 더해가는 글로벌 경제 위기 극복의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그동안 홀로 선전하던 반도체는 불황의 터널로 접어들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2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2분기보다 70% 급락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달 29일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을 깨고 파기환송했다./사진 자료=연합뉴스
미·중 무역전쟁은 트럼프와 시진핑의 패권싸움 양상으로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후유증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제재에 이어 화이트리스트 제외라는 초유의 경제보복을 가하고 있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소득주도성장이 부른 역설로 성장률은 최악을 향해 급전직하하고 있다. 고용은 절벽이고 양극화는 확대되고 기업과 자영업자는 최저임금과 근로시간단축으로 아우성이다.
그 어느 때보다 큰 위기 상황이다. 그야말로 퍼펙트 스톰이 다가온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위기극복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삼성과 이부회장이 또다시 사법리스크로 발목이 잡혔다. 이는 삼성과 이 부회장의 문제가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경제가 큰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대한민국 모든 기업인들을 움츠리게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묵시적 청탁'과 '포괄적 뇌물'을 폭넓게 인정하는 판례를 제시했다. 2심에서 무죄가 됐던 묵시적 청탁을 대법원은 1심과 같은 판단으로 파기환송했다. 그야말로 기업인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못박은 것이나 다름없다.
대법원은 최순실 씨가 소유한 영재센터에 삼성이 16억 원을 지원한 것을 경영권 승계에서 도움을 받으려는 묵시적 청탁으로 봤다.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이심전심으로 '마음속 청탁'을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법정증거주의나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 그야말로 법관 '마음대로'다.
말 세 마리도 뇌물로 인정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정경유착에 대한 철퇴라고들 떠든다. 과연 그런가? 한국의 정치권력의 특성을 깡그리 무시한 태도다. 정치권력과 기업은 상생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갑을 관계였다. 어느 기업인이 대통령의 요구를 묵살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 기업인들을 들러리 세운 적이 어디 한 두 번인가? 김정은과 만나는 대북사업에 동원됐다. 반일을 내건 정부의 대일 대책에도 불려갔다. 일자리와 투자 확대도 요청했다.
청와대의 요청을 받아들이면 묵시적 청탁이고 거부하면 찍힌다. 대법의 기준이라면 그렇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거부할 기업은 없다. 요청을 받아들이면 '묵시적 청탁'이니 대법원의 판단대로라면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자가당착이다.
삼성의 '흑역사'는 3년째 이어지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삼성전자 노조 와해, 다스 소송비용 대납 등 여러 혐의를 받으며 수년째 동시다발적으로 수사·재판을 받고 있다. 이번 대법 판결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는 '본류'보다 경영권 승계 의혹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는 "지난 3년간 이 부회장의 잦은 법정 출석으로 삼성 내부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안다"며 "일본발 경제보복의 핵심 타깃이 된 데다, 이를 극복할 주축인 삼성이 흔들리면 국내 경제 위기 극복은 그야말로 난망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 앞으로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해 4만 명을 직접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4월에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연구와 생산에 13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이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 컨트롤타워도 없이 그룹의 미래를 책임지는 결정을 누가 내릴 수 있을까?
삼성은 일본과 경제전쟁의 선봉장이다. 그 최일선에 이재용 삼성부회장이 서 있다. 경제전쟁의 사령탑이 싸움을 진두지휘하기는커녕 또다시 법정에서 시간을 보내고 최악의 경우 감옥까지 감수해야 할 판이다. 삼성을 흔드는 이들이 대신 이 모든 걸 감당할텐가? '코드 판결'의 댓가는 혹독하다. 사법부의 신뢰와 함께 대한한국 경제의 기둥마저 뒤흔들고 있다.
[미디어펜=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