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화를 낼 때마다 입이 거칠어지고 있다. 지난 3월 첫 담화에서 청와대를 향해 “저능하다” “겁 먹은 개” “세살 난 아이 같다”고 말해 거침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랬던 김 제1부부장은 5일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탈북민단체를 향해 “인간 추물” “글자나 겨우 뜯어볼가 말가 하는 바보” “똥개” “오물” 등 막말을 쏟아냈다.
외교관례를 언급할 것도 없이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 잃은 막말 담화에도 정부는 애써 대화를 위한 메시지로 받아들인 것 같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해 ‘무뢰한’이라고 쓴 대북전단에 북한이 발끈할 수 있다고 봤다. 통일부는 즉각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시킬 법률안 마련에 착수한 상태라고 공개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김여정 담화’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전제 조건을 제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북한은 다음날인 6일 또다시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를 내고 “김여정 제1부부장이 담화를 집행하기 위한 검토를 지시했다”며 첫 순서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철폐를 선언했다. 통전부는 “대결의 악순환 속에 갈데까지 가보자는 것이 우리의 결심이다”라고 밝혔다.
당초 ‘김여정 담화’가 나올 때 과연 대화의 신호인지, 대남 압박인지, 도발의 명분 쌓기인지 궁금증을 낳았다.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에 열중하던 북한이 오랜만에 내놓은 메시지인 만큼 대화의 지렛대로 삼고 싶어하는 속내를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통전부의 경고는 전날 김여정의 막말이 악의에 찬 비난이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통전부는 또 “적은 역시 적”이라고 했으니 김여정의 막말은 표현 그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탈북자를 향한 김여정의 막말은 남한당국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2019년 3월 2일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날 전문가들도 일제히 북한의 메시지에 대해 ‘대남 압박’과 ‘도발의 명분 쌓기’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는 김여정 담화에 대해 남한정부와 여당이 ‘대화 메시지’라고 해석하자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북한에 익숙한 ‘벼랑끝 전술’을 통해 미국의 제재를 약화시키고 돌파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북한이 노리는 것에 대해 ▲대북전단 살포 중지를 위한 법 제정 강압 ▲대미 공조와 국제사회 대북제재에서 이탈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의 즉각적인 재개 압박 ▲9.19 군사합의 파기 선언 등 한반도 긴장 고조로 미국 압박을 꼽았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또 한번 현재의 남북관계가 칼날 위의 평화를 누리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면서 “북한은 우리정부의 남북 정상간 합의 실행 능력이 크게 미약한 데 따른 인내의 한계, 누적된 실망감을 연속적으로 표출하고 있다”고 했다.
임 교수는 “당장 6월25일 탈북단체들의 대북전잔 살포를 막지 못할 경우 남북관계의 파국은 불가피하다”면서 “법을 만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전이라도 보다 단호하고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앙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과거에도 북한은 남북관계에 장애를 조성하기 위해 가장 첫 번째 조치로 연락기능을 중단시켰다”며 “이번 통전부 대변인 담화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를 언급했으므로 우리 내부의 여론 추이를 보다가 연락사무소 폐쇄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북한의 그 다음 수순이 협력사업 중단이나 군사도발이었다”면서 “개성공단 완전 폐쇄 혹은 대남 도발을 통한 군사합의 파기 수순으로 나갈 것”이라고 관측했다.
양 교수는 또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임팩트 있는 군사 도발을 준비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며 “지난 당 중앙군사위에서 핵 억제력 강화를 언급한 것도 그 맥락이다. 현재 여러모로 리더십 위기를 맞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을 최종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단계적 수순이 시작됐다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번에 ‘김여정 담화’가 새벽에 나왔고, 다음날 통전부 담화는 밤 11시에 나와 담화 발표 시간도 메시지를 더하고 있다.
김 제1부부장이 악의에 찬 담화를 쓰기 위해 밤새 준비했고, 통전부가 ‘김여정 담화’ 집행 준비를 위해 늦게까지 회의를 거듭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새벽 또는 한밤중 시간대는 워싱턴을 향한 메시지일 수 있어 남한과 미국을 동시에 겨냥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최근 들어 당을 총괄하고 대남사업 지도하는 것에 더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개인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악의에 찬 담화는 곧 김 위원장의 속내를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총괄하면서 한때 ‘북한의 이방카’로 불리며 씬스틸러(주연보다 돋보이는 조연)로 활약했던 그녀의 입이 세계의 이목에도 불구하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로 봐야 할 것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