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지난해 말, 요리연구가 겸 유명 방송인 백종원씨가 생방송 도중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의 전화를 받은 것은 정용진 신세계 그룹 회장. 정 회장은 백씨의 요청을 받아들여, 버려질 위기에 처한 강원도 농가의 '못난이' 감자 30톤을 이마트 매장을 통해 팔아치웠다.
올해 4월에는 전남 해남산 못난이 고구마 300톤을 이마트와 계열사를 통해 일주일 만에 완판했다.
[미펜TV] 골목식당 백종원이 양반인 이유 [사진=미디어펜]
최근 유통업계에 '못난이 농산물 신드롬'이 불고 있다.
티몬은 못난이 과일을 20~30% 저렴하게 판매했고, 11번가는 전문 브랜드 '어글리러블리'를 출시했다. 태풍에 따른 낙과 과일을 할인 판매하는 것은 일상 다반사가 됐다.
못난이 농산물은 비규격품으로, 외관에 흠이 있거나 모양 또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지는 농산물로, 과거에는 그냥 버려지거나 헐값에 가공식품 제조에 활용되곤 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1.7%가 못난이 농산물이 시장에서 판매되는 것을 알고 있고, 구매에 긍정적인 답변도 72%였다.
못난이 농산물은 2017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의 농식품 소비 트렌드'로 선정하기도 했다.
못난이 농산물은 품질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 후생을 증가시키고,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하며, 농산물 폐기물을 줄이는 '착한 소비'로 '윈-윈'한다는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농업계 일각에서는 정상적인 고품질 친환경 농산물의 가격을 낮추는 부정적 효과가 있는, '양날의 칼'로 평가하고 있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상기후로 못난이 농산물의 발생 가능성이 증가하고, 소비자의 인식 변화와 유통업계의 적극성, 정부의 정책 지원으로 부작용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
고려대 양승룡 교수는 최근 못난이 농산물의 시장 영향을 사과와 당근의 사례를 통해 시나리오 분석을 해, 그 결과를 농식품정책학회에 발표했다.
연구 결과, 모든 시나리오에서 일반 농산물의 가격이 하락하고, 사회 전체 후생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과 가격은 평균 19%, 대체재가 거의 없는 당근은 44%나 급락했으며, 못난이 농산물 판매자의 소득과 소비자 후생은 증가했으나, 정상 농산물의 소득과 소비자 후생은 더 많이 감소, 전체적으로는 후생이 줄어들었다.
양 교수는 "못난이 농산물은 전체 농가에 양날의 칼이 틀림 없으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판촉 지원은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며 "하당 농산물 가격을 하향 압박할 뿐 아니라, 대체효과를 통해 다른 품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못난이 농산물 소비확대 정책은 정부의 고품질 농산물 생산정책과도 상충된다"면서 "소비자에게 못난이 농산물이 친환경농산물로 오인될 수 있어, 우리 농업에 큰 혼란이 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