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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이낙연의 악수', 2022년 다시 정권 주고 싶어질까?

2020-11-05 16:23 | 이석원 부장 | che112582@gmail.com

이석원 정치사회부장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1982년 26살의 나이에 처음 스웨덴 국회의원이 된 모나 살린(Mona Sahlin)은 사회민주노동당(이하 사민당) 정권 아래서 승승장구하다가 노동부 장관을 거쳐 1994년 잉바르 칼손 총리가 두 번째 집권했을 때 부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38살 나이에 부총리를 맡은 모나 살린은 평소 정직하고 투명한 정치인을 표방했고, 실제 스웨덴 사람들은 총리인 잉바르 칼손과 더불어 모나 살린에 대해 ‘정직함과 올곧음의 표본’으로 생각하곤 했다. 평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나 대중 연설을 통해서도 모나 살린은 “수완이 좋은 것보다 정직한 것이 정치인의 덕목”이라고 말해오곤 했다.

그런데 1995년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Svenska Dagbladet)나 다겐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 등 스웨덴의 유력 일간지에 느닷없이 모나 살린의 사퇴 소식이 들렸다. 차기 총리도 바라볼 수 있는 유력 정치인이 갑자기 사퇴라니? 스웨덴 시민들은 놀랐다. 게다가 모나 살린의 사퇴 이유는 스스로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엄마이기도 했던 모나 살린은 휴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 공원에 갔다. 아이들이 군것질거리를 사달라고 좋라대는 통에 그는 토블론이라는 초콜릿 하나를 샀다. 그런데 아뿔싸! 지갑이 없었다. 집까지 갔다오기에는 거리가 좀 멀고, 모나 살린은 주머니를 뒤적이는데 신용카드 하나가 잡혔다. 부총리실에서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모나 살린은 잠시 고민을 했지만, 그 사이 이미 아이가 초콜릿 포장을 뜯었다. 어쩔 수 없이 모나 살린은 업무용 카드로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챙겼다. 월요일 출근하는대로 바로 처리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월요일이 되고 내각 일로 정신이 없었던 모나 살린은 그만 업무용 카드 사용을 잊었다. 

그리고 사민당 행정 직원에 의해 한 달 후 그 사실이 알려졌고, 모 일간지 기자가 그 사실을 모나 살린에게 확인하면서 그는 사퇴를 결심한 것이다. 평소 자신이 그렇게도 강조했던 '정직과 투명'에 완전히 배치되는 일을 했고, 이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퇴를 만류하는 잉바르 칼손 총리나 다른 정치인들의 설득도 소용없었다. 그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이 자신을 믿었던 시민들에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1개에 20크로나, 우리 돈 2600원짜리 막대 초콜릿 2개가 한 나라 부총리를 내려오게 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전당원 투표라는 절차를 거쳐 내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한 모양이다. 자기 당의 문제로 보궐 선거가 생길 경우 후보를 내지 않겠다던 문재인 전 대표의 약속을 뒤엎은 것이다.  

8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는 민주당 당원 중 4분의 1인 21만 명 정도가 투표에 참여했고, 이 중 18만 명 남짓한 당원이 사실상 서울과 부산시장 후보를 내자는데 찬성한 모양이다. 결국 80만 명이 넘는 당원 중 18만 명 정도의 당원이 지금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자, 과거 이런 당헌을 만든 주역인 문재인 전 대표의 ‘책임 정치’를 뒤집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에 대해 이낙연 대표는 “선거로 심판을 받겠다는 게 당원들의 의지”라는 취지의 입장을 냈다. 궁색하다 못해 비겁하기까지 한 한 마디다.

민주당은 현재 대한민국의 집권 여당이다. 즉 정서적으로 민주당의 당헌은 단지 80만 민주당원들만의 것이 아니다. 사실상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당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게 집권 여당의 ‘책임의 무게’다. 그런데 겨우 18만 명 남짓한 ‘열성 당원’이 “까짓것 선거로 심판받으면 되지, 왜 후보를 안내. 그것도 서울과 부산인데”라고 하는 말에 5000만 국민을 기민한 셈이 됐다. 개인적인 신념도 아니고 집권당의 당헌으로 명시한 것을 단지 ‘당원들의 뜻’이라는 미명으로 헌신짝 버리듯 버린 셈인데, 그리고는 후보를 내 심판받는 것이 책임 정치라고 말하는 건 후안무치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 사안이 문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소환할 것이라는 것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2015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재선거하는데 예산만 수십억 됩니다. 그랬으면 새누리당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책임집니까? 후보내지 말아야죠.”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이번 재보선에서 우리 당 귀책사유로 치러지게 된 그 지역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았습니다. 우리 당이 책임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책임 정치’와 이낙연 대표의 ‘책임 정치’가 다른지는 모르겠다.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 아니고, 서로 자기의 정치를 하니. 하지만 도대체 18여만 명의 열혈 민주당원이 아니고서야 5년 전 문재인의 ‘책임 정치’가 그르고, 지금 이낙연의 ‘책임 정치’가 옳다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이건 자칫 '권력 의지 부재'라는 오해까지 살 일이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정권재창출을 꿈꾼다면 고작 1년짜리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에 이런 식으로 연연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제 아무리 정치공학적으로 그게 중요한 자리라고 해도, 자신을 기만해가며, 시민들의 믿음을 저버려가며 행할 모험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스웨덴 사민당 모나 살린 전 당수/사진=연합뉴스


민주당에서 전당원 투표 얘기가 나오기 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 공천을 두고 왈가불가할 때 만났던 한 민주당 소속 서울시 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민주당에서 후보를 안내 국민의힘이 서울시장을 한다 해도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이 그것 하나 제대로 요리 못하겠나? 국민의힘 서울시장, 그래봐야 2022년 지방선거에서 전혀 힘 못쓴다.”

현재 서울시의회 의원 110명 중 민주당 소속이 101명이다. 부산시의회도 전체 47명 중 40명이 민주당이다. 두 곳 모두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시정을 시장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견제할 수 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의회에 막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면 누가 시장이든 그 다음 정식 선거에서 힘을 쓰지 못할 것은 뻔하다. 민주당은 그런 무기를 지니고도 당과 시민을 기만하는 어처구니 없는 악수를 둔 것이다. 

정치인이 가장 가변게 여기는 것이 시민들과의 약속이라지만, 그래도 시민들이 가장 깊이 기억하는 것은 정치인의 약속이라는 것을 이낙연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은 방기했거나 망각한 것이다.

앞서 스웨덴의 부총리였던 모나 살린은, 자신이 스스로한 이야기를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부총리에서 사퇴한 후 텔레비전 리포터로 활동하고 회사를 경영하면서 정계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를 시민들은 기억했다. 결국 1998년 그는 무임소 장관으로 정계에 복귀했고, 산업부 장관을 거쳐 2006년에는 역사상 최초로 사민당의 여성 당수가 됐다.

비록 당시 사민당이 온건당에게 정권을 내줘 모나 살린은 총리가 되지는 못했지만, 스웨덴 사람들의 기억 속에 ‘투명하고 정직할 뿐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으로 기억됐다.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과연 2022년 대선의 국면에서 이낙연과 민주당을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과 정당’으로 기억하고 그들에게 다시 정권을 줄까?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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