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통합이 가시화 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과 학계가 독과점과 소비자 피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시장 원리에 따라 급격한 운임 인상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국내 항공업계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M&A 일러스트./사진=연합뉴스
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대한항공-아시아나 인수·합병(M&A)에 따라 미주 5개 노선에 대한 독과점이 발생해 대한항공이 가격결정권을 갖게 될 것으로 우려했다.
한국산업조직학회장을 맡고 있는 신일순 인하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또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대 항공사 기업 결합심사 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 편익 증진 차원에서 경쟁 제한성이 우려되는 일부 노선에 대해 매각 명령 등 구조적 시정조치를 지시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박 의원과 신 교수 모두 국내 항공시장이 '통합 대한항공'을 중심으로 재편돼 독과점 폐해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운송 네트워크 산업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비전문적 단견이라는 지적이다.
대한항공과 양대 항공사 주채권자이자 M&A를 주도하는 한국산업은행은 독과점과 소비자 편익 훼손 논란에 펄쩍 뛰고 있다. 글로벌 시장 관점에서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양사의 점유율이 높지 않으며 외항사들과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 인상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양사가 통합해도 독과점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은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는 1개의 FSC(풀 서비스 캐리어)만 존재한다는 점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 KLM이나 콜롬비아 아비앙카는 1919년에 설립돼 유서 깊은 항공사들이다. 항공산업이 태동하던 당시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내셔널 프레스티지' 또는 '내셔널 캐리어'로 급성장했다.
에어프랑스-KLM 항공그룹·루프트한자항공그룹 로고./사진=각 사
시시각각 변하는 시황에 따라 국제 항공업계는 무수한 재편을 겪었고 그 결과 각국에 대표 항공사가 1개씩만 남게 됐다. 유럽에서는 국가간 대표 항공사끼리 M&A를 함으로써 에어프랑스-KLM 항공그룹·루프트한자항공그룹과 같은 거대 기업들이 탄생했다.
국내에서 역시 공기업 대한항공공사가 적자에 시달리자 한진상사가 인수해 대한항공을 대한민국 대표 항공사로 일궈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노태우 정부는 호남 지역 챙기기 등 정치적 차원에서 금호그룹에 항공사업면허를 내줬고, 이는 기업 경영과 경제논리와는 달리 복수의 FSC가 존재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남겼다.
국외 복수의 FSC가 존재하는 경우는 미국·일본·중국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항공사 간 끊임 없는 M&A를 통해 덩치를 불려온 점에 기인한다. 일본에서는 일본항공(JAL)이 국제선을, 전일본공수(ANA)가 국내선을 맡다 JAL의 파산으로 인해 ANA가 양대 FSC로 떠오르게 됐다. 최근에는 양 사 모두 경영 상태가 나빠져 통합론이 대두되고 있다. 중국 민용항공총국(CAAC)은 중국민항을 중국남방항공·중국동방항공·중국국제항공 등으로 분할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1국 복수 FSC 체제에 대해 경쟁력 하락을 이유로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국내에서 보기에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은 통합 시 시장 독과점 사업자의 지위를 남용할 것 같지만 국제 노선에서는 외항사와 혈전을 벌여서다. 이는 곧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큰 틀에서 보면 주된 경쟁 상대가 아니라는 말과도 궤를 같이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교수는 "인천에서 유럽 지역으로 갈 때 에티하드항공·에미레이트항공·카타르항공 등 중동 항공3사를 이용할 경우 항공권을 국적기의 70~80%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이와 같이 소비자 선택의 폭은 넓은 만큼 아시아나항공과 M&A를 하더라도 외항사들과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충분한 대체제 역할을 해줘 대한항공의 독주는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최근 사모펀드에 팔린 에어프레미아도 중장거리 기재인 B787-9를 적극 도입해 항공 사업 진출의 뜻을 천명한 만큼 대한항공 독과점 논란은 사그라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곧 시장에 경쟁자가 하나 더 늘어 대한항공의 운신의 폭이 다소 넓어질 것이라는 것과도 일치한다.
20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질의응답하는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사진=미디어펜
이와 관련,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지난해 11월 20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천국제공항 슬롯 점유율은 40%에 불과하고 이는 화물기를 포함한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실례로 브리티시 에어웨이즈의 런던 히스로 공항 슬롯 점유율은 50%가 넘고 미국 항공사들은 공항에 따라 90%를 넘나드는 경우도 다반사다.
일각에서는 통합을 마친 이후의 대한항공이 델타항공과 체결한 조인트 벤처(JV) 제휴에 따라 일부 노선을 독점하게 될 것을 지적한다. 실제 인천-시애틀·애틀랜타를 뺀 인천-뉴욕·LA·시카고 3개 노선은 양 항공사의 점유율이 각각 64%, 36%씩 도합 100%여서 사실상 독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자유시장경제체제를 가장 지지하는 미국 정부 역시 기업들의 독점 이슈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미국 법무부(DOJ)는 '반독점법(Antitrust)'을 통해 △보잉-유나이티드항공 △스탠다드 오일 △JP모건 등 산업 독점 사례가 발생했을 경우 공중분해의 칼을 빼들었다.
대한항공-델타항공 조인트 벤처(JV) 로고./사진=대한항공
한편 미국 교통부(DOT)는 2002년 "두 기업 간 협정이 공익을 해치지 않고 경쟁을 막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에 반독점면제권을 부여한 바 있다. 독과점으로 인한 소비자 편익이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이후 2019년 12월 두 회사는 JV 본계약을 맺으며 항공권 가격 인하와 마일리지 공유도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승객 편익 증대를 언급하기도 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반대하는 이들은 진에어 등 LCC들의 일원화 역시 부정적으로 본다. 같은 한진그룹 아래 초거대 항공사가 둘이나 생길 것이라서다.
항공업계 한 전문가는 "대한항공의 국내 노선 중 이익이 나는 건 사실상 제주 노선 밖에 없어 나머지는 진에어에 몰아줄 수도 있다"고 봤다. 이어 "에어프레미아를 인수하기로 한 JC파트너스가 에어부산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며 "세간 인식만큼 통합 대한항공과 진에어의 심각한 시장 독과점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희영 교수는 "항공산업은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일으키기 어려운 중후장대한 분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살아날 수 있다"며 "남미 1·2위 라탐항공과 아비앙카, 태국 타이항공, 이탈리아 알리탈리아 등 지역 대표 항공사들이 코로나19로 도산한 이후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은 이런 점에서 더욱 절실하다"고 설파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