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외교안보팀장]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토니 블링컨의 첫 외교 행보가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에 이어 19일(현지시간) 최대 경쟁국인 중국과 각각 벌인 2+2회의로 마무리됐다. 일본과 한국에서 대 중국 경고에 시동을 걸고 미국 영토에서 중국과 직접 맞붙은 것을 볼 때 치열한 외교전이 예상된다.
특히 바이든 정부의 외교전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란 가치를 내세워 중국과 북한을 압박하는데 집중됐다. 이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에서 상이한 공동성명이 채택되면서 문재인정부와 바이든 정부의 다른 시각차도 드러났다.
문재인정부로선 중국의 신장 지역에서 위구르족 탄압과 홍콩 민주화 시위 탄압 등에 반대 입장을 갖고 있어도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을 압박하는 대열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해서 남북 교류를 이어가기 위해선 이제 와서 그동안 금기시했던 북한의 인권 문제 비난에도 동조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18일 한미 2+2 외교·국방장관회의를 마친 뒤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의 우리의 유일한 동맹국이고 중국은 최대 교역 상대국”이라며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러한 접근법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과 중국이 우리한테 그런 요구를 해온 적도 없다. 우리는 미중 간 어떠한 방향이든지 소통 노력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격화할수록 한국정부에 대해 미국은 중국 견제 안보협의체인 쿼드에 동참하라고 더욱 압박할 것으로 보이고, 이로 인해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교류는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바이든 정부 초기 미중 갈등은 최고점을 찍을 전망이어서 문재인정부 남은 임기 동안 외교력은 이 문제에 집중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의 2+2 외교전을 지켜본 북·중·러는 즉각 밀착 행보에 나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구두친서를 주고받으며 긴밀한 협력을 다짐했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중국을 거쳐 한국을 방문한다. 중·러는 미국과 유럽을 겨냥해 “내정간섭을 말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동맹인 한국과 일본을 규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중국도 북한과 러시아와 긴밀하게 움직이며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를 재현시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러 양국은 한국을 약한 고리로 인식하는 듯 문재인정부 흔들기를 본격화할 조짐이다. 미중 간 소통을 지지한다는 우리정부로선 달갑지 않은 양상으로 흘러가고만 있다.
왼쪽부터 정의용 외교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홍소영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사진=연합뉴스
앞으로 문재인정부가 미중 간 벌어질 거대한 싸움 속에서 동맹국과 이웃국가, 또 같은 민족이자 분단국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숙제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일단 문재인정부는 23~24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이 예상되는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9년부터 정부는 ‘한반도 정세 등 제반 상황’을 이유로 공동제안국에서 빠져왔고, 이번에도 같은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는 북한·중국 인권 문제뿐 아니라 한국의 인권 문제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국무부가 발표한 ‘2020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한국의 ‘표현의 자유’ 문제로 대북전단 불법화와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징역8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던 언론인 우종창 씨, ‘부패 문제’로 조국 전 장관과 아내·가족에 대한 부패 수사, 위안부 피해자 지원사업을 해왔던 윤미향 국회의원이 준사기‧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및 자살 등이 포함됐다.
이번에 한미 2+2회의에서 한미는 동맹 강화에 한목소리를 냈고, 대북정책에서 완벽한 조율을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이 전쟁을 벌일 상대국에 대한 한국의 다른 입장, 미국이 손에 쥔 무기를 한국이 나눠 쓰길 원하지 않는 입장차만 확인된 셈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깨닫는 순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2018년 1차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북한에 억류돼있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을 귀환시킨 사실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이 3차례 이뤄지는 동안 북한에 억류된 6명의 국민에 대해선 논의 사실조차 전해지지 않았던 사실이 떠올랐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 정부도 ‘세기의 담판’을 앞두고 억류 미국인 석방이란 인권보호를 우선 과제로 삼았고, 4가지 조항을 담은 싱가포르 선언엔 미군 유해발굴을 포함시켰다. 바이든 정부로선 모든 협상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일본정부와 북한 억류 국민 문제를 논의조차 하지 못한 한국정부를 비교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미국정부의 생각을 차치하고 한국국민으로서도 문재인정부의 대 중국 입장은 안타깝고, 대북 입장은 참 아쉽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