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나광호 기자]전기차배터리 영업비밀침해 소송전을 치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갈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이명영 SK이노베이션 이사는 지난 26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배터리 사업경쟁력을 낮추고 미국 사업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드는 경쟁사의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영업비밀이 무엇인지 분명하지는 않다는 점을 인정했음에도 문서관리 미흡을 이유로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사실관계는 판단하지 않은채 경쟁사의 모호한 주장을 인용한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간 합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과 다르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지금까지 자사의 배터리가 화재사고를 입지 않는 등 안정성·품질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브라이언 캠프 조지아 주지사에 이어 샐리 예이츠 미국 전 법무부 차관이 ITC 판결과 관련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부권(VETO) 행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번 판결이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예이츠 전 차관은 최근 SK이노베이션 미국사업 고문으로 영입된 인물로, 오바마 행정부에서 법무차관을 맡은 바 있다. 그는 SK 배터리를 구매하기로 한 포드·폭스바겐(VW)이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하게 된다고 설파했다.
서울 광화문 SK서린빌딩(왼쪽)·여의도 LG트윈타워/사진=각 사
LG에너지솔루션도 현재 양사 대리인들만 확인 가능한 영업비밀 리스트를 직접 확인하자고 제안하는 등 강경한 대응에 나섰다.
ITC가 판결문을 통해 SK 고위층의 지시로 증거인멸이 자행됐으며, 자료수집 및 파기가 만연했다는 점을 언급했음에도 소모적 논쟁이 이어지는 것을 끝내자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2개 항목에 대한 침해가 이뤄졌다는 ITC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SK가 구체적인 사실관계도 호도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한 자사의 입증 능력이 미국 법원이 기존 사건에서 요구한 입증 수준을 상회했다는 점도 언급했으며, 전세계적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기조 속에서 영업비밀 등 지식재산권을 존중하는 것은 기업 운영의 기본이라고 설파했다.
현지 주의회도 방향을 트는 모양새다.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던 조지아주 상원이 SK 배터리 공장이 폐쇄되면 일자리 보존이 어렵다는 이유로 합의를 종용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거부권 행사 데드라인이 다가오면서 공방전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면서 "양사 모두 전기차배터리에 사활을 걸고 있고, 화재사고 등 외부 변수가 발생한 탓에 쉽사리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