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외교안보팀장]“독일에 존재하는 두 개의 국가는 서로 외국이 아니다. 두 국가는 단지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1969년 취임한 빌리 브란트 총리가 새 독일정책을 제시하면서 한 말이다. 서독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동독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제3국에 대해선 관계를 단절하는 이른바 할슈타인 원칙(Hallstein doktrin)을 외교 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대동독정책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베를린 장벽이 느슨해지더니 1990년 마침내 서독에 동독이 연방공화국으로 편입되는 독일통일을 이뤘다.
남북통일을 논할 때 독일통일이 곧잘 비교되면서도 당시 냉전이 종식된 세계정세와 지금 한반도 주변국 관계 상황은 다르므로 비교 대상이 안 된다는 주장도 공존한다. 하지만 한 민족의 분단이란 공통 과제를 해결한 독일의 ‘접근을 통한 변화’란 구상은 우리정부도 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바로 통일부가 담당해온 남북대화, 남북교류, 북한이탈주민 지원 등이다.
과거 서독도 동독을 향해 “동쪽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혐오스러운 정권”이란 말을 사용할 정도였고, 지금 북한 정권도 우리가 볼 때 다르지 않은 집단이다. 하지만 그런 정권이 70년 이상 유지되고 있고, 이젠 북한 정권의 붕괴를 바라는 것이 비현실적이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통일부가 해오던 역할을 다른 부처로 분산하자는 것은 마치 우리 헌법에서 통일 조항을 빼자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제기한 ‘통일부 폐지론’을 들으면서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20~30대의 생각일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 21일 TV토론에서 ‘흡수통일론’을 언급했고, 그의 통일부 폐지론은 보수 진영 일각에서 맹신하는 북한 붕괴론 또는 흡수통일론을 반영한 것으로 증명됐다. 그가 2019년 출간한 저서 ‘공정한 경쟁’에서 그런 주장들이 담겼다고 한다.
그러나 일방적 흡수통일론은 북한 정권 붕괴만큼이나 가능성이 없다. 첫째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고, 무력으로 북한을 공격하는 것도 상상할 수 없다. 더구나 미군이 주둔하는 남한에 북한이 흡수되는 상황을 막으려 하는 중국이 이웃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남북 분단의 배경처럼 남북통일도 주변국과의 관계 속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서독은 통일정책을 추진하면서 먼저 동독의 현상을 인정했다. 또 관계를 정상화하는 정책을 폈으며, 국경에서 자동기관총을 철거했고, 서독의 기자를 동독에 상주시켰다. 이후 문화협정을 체결했고, 정부의 은행차관 보증을 점차 늘려나가면서 인적교류와 물적교류를 확대시켰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 통일부도 해왔고, 앞으로 확대시켜나가야 할 정책 과제들이다.
지금까지 남북관계가 조금 풀리나 싶으면 얼마 못가 다시 경색되는 되풀이를 겪었다고 해서 통일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북한이란 존재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외국보다도 더 갈 수 없고, 한민족이지만 대화하기 힘들고, 우리에게 자주 막말로 호통치고, 때때로 혐오스러운 대상이다. 어쩌면 현재 한일관계보다 남북관계를 더 풀기 어렵고, 그만큼 꾸준하게 접근해야 할 대상이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결과 조 바이든 정부는 남북 간 협력 및 대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대북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통일부에게 창의적인 대북정책을 펼쳐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고 본다. 특히 현 상황에서 남북 문제를 풀기 위해 투트랙 전략을 펼칠 필요도 있고, 외교부와 조금 결을 달리하는 통일부를 잘 운용하면 오히려 정부의 운신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
다만 차제에 통일부가 앞으로 적극적으로 북한인권 문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물론 금강산관광 폐지에 개성공단까지 폐쇄돼 통일부가 쥘 수 있는 카드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반발만 키울 북한인권재단을 통일부가 안기에 큰 부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제에 있어서 ‘음지’와 ‘양지’ 모두 담당하는 것이 통일부의 숙명이 아닐까. 툭하면 나오는 폐지론을 불식시킬 방안이기도 하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